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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임금체불·폭언·성추행…대학생 인턴은 ‘현대판 노예’

[취재파일] 임금체불·폭언·성추행…대학생 인턴은 ‘현대판 노예’
“저는 그나마 괜찮은 거예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보름 전 들었던 20대 여대생 인턴 경험자의 이 말은 제 가슴을 아프게 때렸습니다.

그 날은 고용노동부가 인턴들의 임금체불과 관련해 단속 자료를 배포해, 관련 리포트를 제작하기 위해 취재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렵게 대학생 인턴 경험자 22살 김 모양을 만났습니다. 김 양은 지난해 5월부터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서 8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하였습니다. 원단 판매부터 경리와 회계까지 상당히 고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9시간 씩 8개월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겨우 30만원이었습니다. 월급으로 치면 3만 7천 원에 불과한 겁니다. 대학생 산학 협력 프로그램으로 인턴 생활을 하게 된 거라, 학점을 주기 때문에 임금을 줄 필요 없다는 게 업주의 주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충분히 들은 뒤 저는 8시 뉴스 방송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출발할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그 때 김 양이 제게 주저주저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그나마 괜찮은 거에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서 잠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고되게 일하고 월급 3만 7천 원을 받은 사람이 ‘그나마 괜찮다’니요. 자기도 억울할 텐 데 다른 친구들을 살피는 그 마음이 애틋했고 한편으론 도대체 다른 학생들은 어떤 일을 겪고 있길래 저런 말을 하나 싶어 대학생 인턴과 관련해 추가 취재를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 뒤 김 양을 통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며칠에 걸쳐 취재를 시도했습니다. 김 양 친구들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현대판 노예’와 같았습니다.

인턴 경험자 A(21세) : 2016년 3월-12월까지 구로구에 있는 S라는 전통시장 관련 제안서 작성회사에서 일했음. 열 달 정도 일하면서 업체에서 받은 돈은 120-150만원 수준으로 월급으로 치면 한 달에 12만원 수준. 종종 야근을 시켰는데 야근 수당도 전혀 받지 못함. A양과 또다른 인턴들이 제안서를 작성해 업주는 4억원 상당의 사업을 수주했지만 인턴들에게는 전혀 수당을 지급하지 않음. 업주는 일을 잘 못한다며 폭언을 했음( ▶ "밥값만 축내는 식충이" 폭언…착취당하는 인턴들)

인턴 경험자 B(21세) : 7월-12월 서초구 소재 시장분석 보고서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 7-8월은 아예 돈을 못받았고 9월서부터 한 달에 20만 원정도 받음. 11월부터 울산, 전주, 대구 등 전국으로 출장을 갔지만 회사에서 출장비를 지급하지 않아 자기돈을 내고 KTX를 타고 다녔다고 함.

이들은 인턴, 즉 ‘수련생’ 신분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업무에 투입되면 상황이 다릅니다. 엄연한 근로자가 되는 것이고, 그 때부턴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인턴으로 가서 정식 근무를 했고, 교육 과정은 없었으며, 심한 경우는 자신들이 온 뒤 정식 근로를 하면서 그나마 있던 직원들이 해고되기도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당국의 조사가 뒤따라야겠지만,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이 겪었던 것은 심각한 ‘노동 착취’였던 셈입니다.

더욱 심각한 일은 여러 여대생 인턴들이 성추행에 노출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인턴 경험자 C(23세) : 인천에 있는 치아가공회사에서 3월-10월까지 근무. 업주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 경험하였음.

다음은 취재과정에 C양이 제게 했던 이야기의 녹취록입니다.

“이렇게 머리를 막 남자친구가 쓰다듬듯이 하고, 어깨를 계속 만지시거나 아니면 저 일하고 있는데 계속 옆에 오셔 가지고 뭐 쭈그려 앉아서 00씨 뭐하냐고 물어보시거나 그런 행위도 거의 9월부터 진짜 심각하게 했었고요. 의자를 완전 여기 바로 옆으로 끌고 오셔서 감시하는 것처럼 제가 뭐하는지 다 지켜보시고. 그냥 바로 옆에 딱. 몸이 닿는 경우도 많기는 하죠. (집에)가겠습니다 했는데 내가 데려다 주겠다 했는데 왜 그러냐. 엄청 권유하시면서 강요하신 적도 많으시고.

대표님이 계시면 정말 지옥이었고 대표님이 잠시 외근 나가시거나 출장 나가시면 그날은 되게 평화로운 날이었어요. 왜냐면 저희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회사 공용 메일이 있는데 저희가 유튜브 로그인을 하면 추천 영상 같은 게 뜨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 너무 다 야한 영상밖에 없는 거에요. 대표님의 행동도 솔직히 저희가 느끼기엔 그런 수치심으로 느껴지는 행위였고 하니까 너무 연관성이 되는 거예요.

(함께 일했던 인턴이 퇴사한 뒤) 저 혼자 일했던 일주일이 진짜 제 인생에서 최악의 지옥을 오갔던 그런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는 '아, 아프다 하고 그냥 가지말까 .그냥 학교를 자퇴할까. 휴학할까.'도 생각했었어요. 교수님한테 말씀을 드리니까 지도교수님은 '그냥 다른 회사로 나와라'고 하셨고 학과장님은 '참고 일해라'라고 하셨어요.“

C양은 함께 일했던 언니는 더 심한 성추행을 당했고, 견디다 못해 C양보다 앞서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말했습니다. C양도 결국 이 회사를 중간에 그만두었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다시 취업하기가 무서워 안정될 때까지 취업 시도를 하지 않을 거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들을 각 업체에 인턴으로 보낸 담당교수는 “학생들이 이야기하지 않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업체들에 확인해 봤지만, 업주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의 말은 다릅니다. 다수의 학생들이 교수에게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차후 학교 측에서 확인해 봐야 할 사안입니다.

학생들의 민원으로 인해 학교측은 자체 감사를 벌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감사 결과 일부 사실로 확인돼 담당 교수를 보직해임했고, 교원인사위원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담당자를 징계할 것이라고 하길래, 언제 징계위원회를 열 것이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제 제가 취재했을 시점에 학교측은 ‘대학생 인턴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폭언이나 성추행 등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감사가 상당히 부실했던 것입니다.

현재의 대학생 산학 협력 프로그램은 담당 교수는 업체를 선정하고, 업체는 학점을 부여하는 시스템입니다. 업체에서 인턴 등이 겪는 일에 대한 모니터는 전적으로 교수와 학교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교수와 업체에 밉보이면, 많게는 8학점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부모들이 나서서 항의를 하더라도 업체가 부인하고 교수가 도와주지 않으면 증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의 청소년근로지원센터가 이러한 신고를 받지만, 신고 접수하고 조사 나가고 하다보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그 사이 학점 불이익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담당교수와 학교가 제대로 모니터하지 않으면 인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가 제대로 드러날 수 없는 시스템인 셈입니다. 제가 비록 한 학교의 사례를 취재했지만, 이와 같은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여러 인턴을 취재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이야기는, 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자신들이 ‘노예 같았다’는 말입니다. 비서, 몸종, 하인 같았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언론을 통해 ‘염전 노예’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던 일 기억나십니까? 대학생 인턴을 취재하면서 제게 들었던 생각은, 염전 노예에 버금가는 ‘현대판 노예’는 그렇게 멀리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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