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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너무나 괴상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취재파일] 너무나 괴상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4팀이 한 조에 편성됐는데, 조별리그는 팀당 2경기씩만 하고, 토너먼트에 올라가면 각조 1위 팀끼리, 또 2위 팀끼리 맞붙는 희한한 규칙이 적용된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한국축구사에 첫 월드컵으로 기록돼 있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입니다.

갑자기 까마득한 63년전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국제축구연맹 FIFA가 2026년 월드컵부터 본선 출전국을 48개국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월드컵 출전국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1954년 월드컵에서 일어난 황당하기까지 한 규칙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규칙만 황당한 게 아닙니다. 경기 내용면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진귀한 장면과 진기록을 남긴 그야말로 좀 ‘괴상한 월드컵’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풀어가겠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 희한한 조 편성…4팀이 단 2경기씩

1954년 월드컵에는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 각조 1, 2위팀이 8강에 진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전혀 이상할 게 없죠? 그런데 조 편성과 경기 방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먼저 각 조 4팀 가운데 2팀에게 시드를 배정하는데, 당시에는 세계랭킹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시드를 배정했습니다. 그리고 시드를 배정받은 팀끼리, 또 시드를 배정받지 않은 팀끼리는 경기를 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조의 4팀은 팀당 2경기 씩만 치르게 된 겁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 대표팀
당시 우리가 속한 2조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조에는 헝가리와 터키가 추첨을 통해 시드를 배정받았고, 우리나라와 서독이 같은 조에 포함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시드 국가인 헝가리, 터키와 단 2경기의 조별리그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아시죠? 헝가리에 9대 0, 터키에 7대 0 패배. 이것이 우리의 소중한 월드컵 첫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미국 공군기를 얻어 타고 6일을 돌고 돌아 경기 하루 전에 경기장소인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던 열악했던 상황은 감안해야겠죠.

● 1위 팀끼리 맞붙고, 2위 팀끼리 맞붙는 ‘토너먼트의 함정’

조별리그에서 동률이 나오면 플레이오프를 치렀습니다. 당시에는 골득실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승점만 같으면 플레이오프를 치렀습니다. 공동 2위 팀들이 플레이오프까지 한 경기를 더 치를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했을까요? 8강 토너먼트는 각 조 1위 팀끼리 맞붙고,

각 조 2위 팀끼리 맞붙게 설계가 됐습니다. 무리하게 조 1위가 되기 보다 오히려 조 2위가 돼 다른 조의 2위와 붙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생각을 바로 우리와 같은 조인 서독이 헝가리를 상대로 실행에 옮깁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축구 금메달팀인 헝가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입니다. 현재 푸스카스상으로도 유명한 푸스카스와 콕시스라는 스타플레이어를 앞세워 1950년부터 4년째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터키를 4대 1로 가볍게 꺾은 서독은 헝가리를 상대로 주전들을 대거 배제한 채 2진급으로 거칠게 맞섰습니다.

결과는 8대 3 완패. 골득실이 적용됐다면 서독은 3위로 탈락했겠지만, 서독은 터키와 함께 1승1패로 공동 2위가 됩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터키를 7대 2로 크게 꺾고 8강에 진출합니다. 반면 헝가리는 서독의 거친 수비에 주포 푸스카스가 크게 다치는 악재를 맞이하게 됩니다. 토너먼트의 함정에 빠진 겁니다.

● 믿기 힘든 골 잔치…경기당 5.38골

스위스 월드컵은 역대 최다 골이 터진 대회로 기록돼 있습니다. 경기당 평균 5.38골이 터져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장 많은 골이 터진 경기는 오스트리아와 개최국 스위스의 8강전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홈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스위스에게 전반 23분까지 먼저 3골을 내주고 끌려갔지만, 이후 10분 동안 5골을 몰아넣는 만화같은 득점력으로 대세를 뒤집었고, 결국 7대 5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12골은 아직까지 월드컵 한 경기 최다 골로 남아있습니다.

● 헝가리를 망가뜨린 ‘베른의 전투’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역대 최악의 난투극’이 벌어졌던 대회로도 남아 있습니다. 그 희생양은 강력한 우승후보 헝가리였습니다. 서독과 조별리그에서 골잡이 푸스카스를 잃은 헝가리는 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베른에서 맞붙었습니다. 지금이야 브라질이 더 강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헝가리가 단연 한 수 위였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가운데 진흙탕이 된 경기장에서 브라질은 거친 수비로 헝가리에 맞섰고, 3번이나 경기가 중단될 정도로 난투극이 이어졌습니다. 브라질 선수 2명과 헝가리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한 가운데, 후반 10분 동안은 대부분의 선수가 다리를 절룩이며 뛰었다고 합니다. 경기가 4대 2, 헝가리의 승리로 끝난 뒤에도 브라질 선수들은 헝가리 선수단의 탈의실에 몰려가 뒷풀이(?) 난투극을 벌였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경기는 이후 ‘베른의 전투’라 불리며 오랫동안 입방아의 소재가 됐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우승한 서독이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서독의 반전…사상 첫 월드컵 우승

상처투성이가 된 헝가리는 4강에서 1차 대회 우승국 우루과이를 만나 다시 한 번 힘겨운 승부를 펼쳤고, 연장 혈투 끝에 4대 2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헝가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반면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게 사실상 고의패배를 당하며 체력을 비축한 서독은 승승장구했습니다. 8강에서 한 수 아래인 유고슬라비아를 2대 0으로 눌렀고, 준결승에서는 오스트리아를 6대 1로 꺾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결승에서 다시 헝가리와 만났습니다.

‘부상병동’이 된 헝가리는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푸스카스를 선발로 내세워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헝가리가 먼저 두 골을 뽑아내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서독도 2골을 뽑아내며 맞받아쳤습니다. 2대 2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하늘은 헝가리를 버렸습니다. 후반 헝가리의 슈팅 2개가 연이어 골대를 강타했습니다.

비에 전념하던 서독은 후반 39분 역습 한 번으로 3대 2, 승리를 거두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서독의 영리한 대회 운영과 헝가리의 계속된 불운으로 대회는 드라마틱하게 마무리됐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이렇게 많은 논란 속에 희한한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좌충우돌 대회를 거치면서 월드컵은 지금의 모양새를 조금씩 갖추게 됩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부터는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펼치는 방식이 도입됐고, 82년 스페인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이 24개국으로, 또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32개국으로 또 늘어나며 규모를 키웠습니다.

참가국이 늘면서 대회 판도는 조금씩 요동을 쳤습니다. 처음으로 24개국이 출전한 82년 대회에서는 알제리가 아프리카팀으로는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며 검은 돌풍을 시작했고, 32개국으로 또 늘어난 98년 월드컵 때는 나이지리아와 크로아티아 등이 이변을 연출하며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월드컵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 월드컵이었던 2002년 대회에서는 우리나라의 4강 신화와 일본의 16강 진출로 아시아 국가들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죠. 그리고 2026년 다시 48개국으로 대회 규모는 더 커졌습니다. “중국을 위한 FIFA의 돈놀이”라는 비판도 있고, “월드컵의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규모를 키우면서 축구열기와 재미를 끌어올렸던 과거를 되새겨보면 뭔가 새로운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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