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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터키-러시아의 밀월, 총탄 하나에 흔들리나?

[월드리포트] 터키-러시아의 밀월, 총탄 하나에 흔들리나?
안드로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피살됐습니다. 터키 수도 앙카라의 현대미술관 전시회에서 개막식 축하연설을 하던 도중 바로 뒤에 서 있다가 권총을 꺼내든 저격범에게 9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저격범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 라는 22살의 터키 경찰입니다. 범인은 총격직후 “알레포를 잊지 마라. 시리아를 잊지 마라. 우리의 도시를 위협하면 너희들 역시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경찰에 사살된 저격범에 대해서는 쿠데타 연계 혐의로 정직됐다가 최근 무혐의로 풀려나 복직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범행 동기나 배후 세력이 있는지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발언으로 볼 때는 러시아에 대한 보복 테러로 보여집니다. 러시아는 시리아 알 아사드 독재정권의 편에 서서 알레포와 이들리브 등 시리아 반군 지역을 무차별 폭격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끄는 건 터키인이 러시아인을 죽였다는 겁니다. 그것도 주재국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사가 숨진 겁니다. 총탄 하나가 과연 터키와 러시아의 새로운 밀월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세계의 시선이 쏠려있습니다.
피격 직전 연설중인 카를로프 터키주재 러시아 대사, 왼쪽 뒷편의 남성이 저격범인 알튼타시
● 개와 고양이 같던 터키와 러시아

터키와 러시아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흑해의 패권을 놓고 크림반도에서 6번이나 전쟁을 치른 역사적 악연을 지닌 나랍니다. 흑해는 오른쪽으로 러시아, 아래쪽으로 터키와 접해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술탄으로 대변되는 오스만왕국의 북상 정책과 동방정교회의 차르가 지배하는 슬라브 왕조의 남하 정책은 늘 흑해의 쟁탈권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현대의 동서 냉전시대에는 미국 등 서방은 구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NATO를 창설합니다. 나토엔 터키도 가입했습니다. 터키는 구 소련이 흑해에 진출하는 걸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터키와 러시아의 갈등은 시리아 내전에서도 불거졌습니다. 터키는 수니파국가입니다. 그리고, 친미 국갑니다. 당연히 미국이 지원하는 시리아 수니파 반군 편에 섰습니다. 시아파인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과는 척을 진 사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이 축출대상으로 삼은 시리아 정부를 위해 내전에 군사개입을 단행합니다.

더구나 러시아는 IS 격퇴 선봉의 쿠르드족을 은근히 감싸고 지지했습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 독립 투쟁을 벌이는 쿠르드족을 눈엣가시로 여깁니다.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이 세력을 확대하면서 자치구역을 확보하려고 하자 자기 멋대로 시리아 영토에 군대를 투입해 쿠르드족을 격퇴하기도 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과 러시아 차르황제로 묘사된 에르도안과 푸틴
이렇게 티격태격하던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는 지난해 11월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터키가 자신의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수호이 전폭기를 격추시킨 겁니다. 러시아는 발끈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비열한 군사범죄라며 터키의 사과를 요구하자 터키 에르도안은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격추시킬 거라고 맞섰습니다.

러시아가 IS산 원유의 최대 소비자가 터키라며 IS원유 트럭이 터키 국경을 넘어 들어가는 영상을 공개하며 터키를 공격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각종 경제관계 단절에 들어갔습니다. 자국민의 터키 여행 금지, 자국내 터키인의 근로계약 연장과 신규 고용 금지, 터키 농산물 수입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처럼 양국 관계는 벌어진 상황이었습니다.

● “내 소중한 친구 푸틴”

이렇게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던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가 지난 7월 터키 쿠데타 시도로 급변했습니다. 러시아가 터키 군의 비정상적인 이동 정보를 터키 정부에 전달하면서 에르도안 정권은 쿠데타 징조를 사전에 파악해 하룻밤 만에 군부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터키와 러시아 사이엔 급격한 화해무드가 조성됩니다. 급기야 지난 8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에르도안은 푸틴을 “내 소중한 친구”라고 세 번이나 지칭했습니다. 두 나라는 예전의 경제협력 관계 회복을 선언하고 새로운 밀월관계를 시작했습니다.

장기 집권 중이고 권위적이며 정적에 대한 무차별 숙청이라는 닮은 꼴의 두 지도자가 손을 맞잡은 데는 나름대로의 경제.정치.외교적인 속사정이 담겨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터키에게 러시아는 미워도 다시 한번 봐야 하는 필요악의 존재입니다. 터키에게 러시아는 독일 다음으로 가는 교역국입니다.

관광분야에서도 러시아는 큰 손입니다. 터키를 찾는 러시아 관광객은 독일 다음으로 많습니다. 두 나라의 연간 교역량은 300억 달럽니다. 그런데, 전폭기 격추사건 이후 양국의 교역량은 절반으로 급락했습니다. 러시아 관광객도 93%나 줄었습니다. 쿠데타 시도로 권좌를 위협받은 에르도안이 국민적 지지를 끌어 모으기 위해선 경제부흥만큼 훌륭한 재료는 없습니다.

러시아도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터키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독일 다음으로 많이 수입하는 나랍니다. 더구나 러시아는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으로 가는 가스 수송관이 막히면서 대안을 찾던 중이었습니다.여기에 러시아는 터키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약도 맺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무대에서 거진 왕따 수준인 러시아에게 터키는 몇 안 되는 경제적 친구였던 셈입니다.
서로 으르렁거리다 지난 7월 터키 쿠데타 시도로 급격히 가까워진 푸틴과 에르도안
정치적으로도 양국은 서로를 원했습니다. 터키는 쿠데타 배후로 미국에 망명한 이슬람학자인 귈렌을 지목했습니다. 미국(오바마 행정부)은 귈렌를 송환하라는 터키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은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정권의 무자비한 숙청작업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사형제 부활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EU는 사형제를 부활하면 EU에 들어올 생각을 말라고 으름장을 놨고, 터키는 수십 년을 기다려도 받아주지 않는 EU엔 더 이상 관심도 없다고 맞받아쳤습니다. 미국.유럽 관계가 틀어지면서 터키의 에르도안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새로운 지렛대가 필요해졌습니다. 그게 바로 러시아가 된 겁니다.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데는 중동에서 영향력 확대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는 중동의 동서축을 가로지릅니다. 시아파벨트를 친러로 끌어온다면 러시아는 중동세력권의 한 축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미국과 수니파 중심인 중동의 역학구도를 러시아와 시아파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동에서 시아파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적다는 겁니다. 이슬람에서 시아파는 15~20%정도로 수니파에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습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새로운 수니파 동지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터키입니다. 터키는 수니파지만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는 탓에 사우디.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 등 걸프의 수니파 왕정과는 사이가 매끄럽지 못 합니다. (예외적으로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친밀하긴 합니다.) 무슬림형제단은 아랍의 봄에서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사우디는 이런 무슬림형제단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걸 경계합니다. 체제 전복의 우려때문이죠. 걸프 주요국가에서 무슬림형제단은 불법단체입니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새나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러시아에게 이슬람 제국의 영광을 계승하고, 수니파의 한 축이면서도 친미일변도의 걸프 왕정국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터키가 눈에 쏙 들어왔을 겁니다. 중동을 지정학적으로 나누면 동서로 시아파, 남북으로 수니파 벨트가 형성되는 모양새인데 중동의 꼭짓점인 터키를 끌어들이면 수니파 벨트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포석도 깔려 있을 겁니다. 여기에 터키를 이용해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를 견제할 필요성도 생각했을 겁니다. NATO에 대한 러시아의 걱정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덜어주려고 노력중이지만…
러시아 대사 저격직후 권총을 겨눈 저격범
● 저격의 배후는 누구? IS-시리아반군-귈렌?

이런 점에서 터키와 러시아의 밀월은 상호 필요충분 조건을 갖췄다고 봐야 합니다. 시리아 내전에 있어서도 터키와 러시아는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집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반군이 철수하는 합의도 터키와 러시아가 반군과 시리아 정부를 대신해 이끌어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잘 알기에 이번 저격사건을 통해 양국 관계가 흔들리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터키는 이번 사건을 시리아 내전에 불만을 품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단순 테러로 몰고 가는 분위깁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에 갈등을 부추기려는 테러리스트들의 ‘미끼’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러시아 대사 피격은 대 터키 관계와 시리아 평화정착을 방해할 목적”이라며 “국제사회와 테러에 대한 싸움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터키와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이란과 3국 국방.외교장관 회담을 예정대로 개최하며 공조를 과시했습니다.

아직 저격범에 배후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 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해외언론들은 크게 배후가 있다면 크게 3가지의 가설을 제시합니다. 일부 신문은 범인이 “알라 아크바르”,-신(알라)은 위대하다, 를 외친 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배후설을 제기합니다. 사건 직후 IS와 알카에다의 추종자들이 환영논평을 내놓은 점도 이런 추정의 근거로 덧붙입니다.

“알레포를 잊지마라”고 발언한 점에서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였다가 최근 알카에다와 결별한 ‘파트 알샴’이 지목되기도합니다. ‘파트 알샴’은 알레포에서 반군의 주축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알레포가 시리아 평화협상의 휴전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그 동안 줄기차게 시리아정부와 러시아의 맹폭을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건 시리아 반군이 배후일 수도 있습니다. 시리아 반군은 지난해 중순까지만해도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으면서 내전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군인이 없어 못 싸울 정도라고 호소할 만큼 시리아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독재정권의 학살에 항거한 ‘정의의 승리’는 러시아의 개입으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시리아 정부군의 무자비한 통폭탄 만큼 러시아의 융탄폭격에 수많은 가족과 동지를 잃었습니다. “알레포를 잊지 마라. 시리아를 잊지 마라. 우리를 위협한 너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저격범의 말은 시리아 반군과 연계됐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에르도안의 동지에서 정적이 된 귈렌의 배후설입니다. 저격범은 쿠데타 연루 혐의로 직위 해제를 당했다가 한달 전에야 무혐의로 결론나 복직을 했습니다. 그의 형도 귈렌 계열의 학교에서 근무하다 직위 해제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친정부 성향의 터키 언론과 에르도안 지지자들은 이런 점에서 귈렌을 배후로 지목합니다.

어느 가설이 맞을지 모릅니다. 다만, 누가 배후에 있더라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터키인의 범행이라는 점입니다. 터키 내에서 그 동안 억눌려 왔든 가라앉아 있었든 반러시아 감정이 표출된 겁니다. 터키와 러시아가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오래 유지했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시아파 정권을 지원하고 시리아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러시아에 대한 터키 국민의 감정이 좋을 리 없습니다. 더구나, 터키엔 시리아 출신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시리아 난민은 3백만 명에 달합니다. 자연히 반 러시아 감정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한 러시아로선 터키를 바라보는 시선에 경계심을 담을 수 밖에 없겠죠.
동지에서 정적이 된 에르도안과 귈렌
● 에르도안의 시나리오는?

이런 상황에서 터키가 손에 쥔 시나리오는 3가지로 보입니다. 시리아 출생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단독범행으로 몰고 가며 조속히 사건을 마무리해 파장을 최소화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기엔 얼렁뚱땅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 쉽습니다. 범인이 경찰신분증을 이용해 권총을 차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전시회장에 경호원 같은 정장 차림으로 갈아입어 의심을 사지 않고 대사에 접근한 점에서 치밀한 사전 준비와 공범이나 배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런 궁금증이 해소가 안 됩니다.

시리아 반군이 배후에 있다면 터키는 큰 부담을 안게 됩니다. 지금이야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터키와 러시아는 물과 기름의 관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시리아 내전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터키는 시리아반군을 쿠르드족의 견제를 위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들이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이 대사피격의 배후에 있다면 터키로선 러시아에게 빚을 지게 되는 셈입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이 패퇴해 결국 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터키의 고민은 끝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쿠르드족의 처리가 남습니다. 러시아는 IS를 격퇴하겠다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반군을 집중 폭격하면서도 쿠르드족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도 IS를 견제할 목적으로 쿠르드족과 상호 불가침의 암묵적인 협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터키는 러시아에게 내가 반군을 포기했으니 쿠르드족의 독립을 저지해달라는 정치적 제의를 할 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러시아에 빚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제 열린 러시아와 터키,이란과 3자 회담에서 터키는 아사드 정권의 축출 요구를 포기했습니다. 이것도 어찌보면 러시아 대사 피격에 대한 책임과 양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르도안이 바라는 건 귈렌의 개입입니다. 이번 사건의 배후를 귈렌으로 몰고 가면 시리아 내전과 연관성을 끊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제 개헌을 통해 독재권력을 견고히 하고 싶은 에르도안은 이미 쿠데타 연루 혐의로 수많은 귈렌 세력을 축출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정적 숙청작업을 가속화할 수 있는 보너스가 생기게 됩니다. 자국내 반러시아 세력도 귈렌동조세력으로 묶어서 쉽게 잡아들일 수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과 관련해 러시아에 미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거양득입니다. 친정부 성향 일간지들은 이미 "반역자 페훌라 귈렌의 테러조직이 양국 우애에 공격을 가했다", "귈렌으로부터 온 총탄" 이라며 저격범을 귈렌 지지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에르도안 정권의 해법은 이미 시작됐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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