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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공 필수'의 저주…수년째 성희롱

[취재파일] '전공 필수'의 저주…수년째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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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 필수'의 저주

대학생들은 졸업을 하기 위해서 한 개 이상의 ‘전공 필수 과목’을 이수해야 합니다. 다른 교양 과목과는 다르게 학생들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입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과목이 최소 한 개 이상 생기는 것인데요. 이런 제도를 두는 것은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다른 수업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소재 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전공 필수 과목’ 때문에 매학기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배우는 내용이 어려워서도, 학점받기가 까다로워서도 아닙니다. 교수의 성희롱, 여성비하 발언 때문입니다. 해당 교수는 10년 가까이 문제의 발언을 해 왔습니다.

공개할 수 있는 내용만 일부 소개해보면,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늙으면 성형한 것이 다 드러난다.” “뽀뽀 안 해본 사람 손 들어봐라.” “여학생은 외모를 가꾸는 게 하나의 예의다.” “여자는 무기가 많다. 하이힐로 남자 XX 터뜨리고.”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발언도 수년 간 지속됐습니다.

“비서 지원자가 면접 볼 때, 몸매가 괜찮으면 당장 뽑아간다.” “뉴스캐스터는 시집가기 좋은 직업. 한 달 하고 시집보내고. 어떤 놈이 주워간다.”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도 흔히 쓰였습니다. 빨대로 우유를 마시던 한 여학생에게는 “잘 빨아먹네. 결혼하면 많이 사랑받겠다.”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습니다. 생리공결을 활용하기 위해 교수를 찾아간 여학생의 손을 주무르며 “손을 주무르면 생리통이 낫는다. 교수님이 네 생리통을 낫게 해준다”는 행동까지 했습니다. 교내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정 교수를 비판하는 익명의 글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 녹취록은 있는데…교수 "그런 적 없다"

정 교수의 강의는 ‘전공 필수 과목’. 말 그대로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게다가 학점을 부여할 수 있는 교수의 권한은 학생들의 불만을 쉽게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큽니다. 매년 비슷한 일이 벌어졌지만, 공론화시키기에는 힘이 부쳤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정 교수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본인의 ‘엄한 수업 방식’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학교 측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취재가 시작되자 이번엔 졸업생들까지 발 벗고 나섰습니다. 대부분 졸업한 지 5년이 넘은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졸업생들의 증언은 재학생들과 한결같았습니다. “정 교수에게 레퍼토리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년 비슷한 발언이 반복된 것입니다. 제보를 한 졸업생 가운데에는 수년 간 정 교수의 옆에서 조교로 일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때 일이 생각난다. 후배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나설 생각이 있다”는 졸업생까지 등장했습니다.

매년 수십, 수백 명의 학생들이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 성적은 실력순? 성적은 학년순?

학점 부여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특정 학년, 특정 학생에게 좋은 학점을 준다는 것입니다. 정 교수는 이런 의혹에 대해서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눈이 나빠 출결상황을 체크하는 데에만 학생들의 힘을 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입수한 동영상에는 정 교수의 해명과 다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연구실에는 재학생 4~5명이 시험지를 놓고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 : 저 성적 개판이어서 안 돼요.
교수 : 네가 학번이 높나?
학생 : 제 성적 내리시면 안 돼요.
교수 : 누구를 내리나 그럼.
학생 : A요.
교수 : A는 답안지가 너무 좋아.

모두 공개할 순 없지만, 대리 채점 의혹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수년 째 정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는 A 씨는 "그동안 교수가 직접 채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학기 초 제출한 사진을 보고 얼굴이 익거나 평소 마음에 드는 학생이었다면 높은 점수를 준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채점에 참여했던 B씨는 "나도 내 시험지를 3번 정도 직접 채점하기도 했다. 나와 친한 친구 학점을 높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C씨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애국가만 써도 A를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에게 이메일과 문자, 전화로 증언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 교수와 학교는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취재를 마친 뒤 서울로 돌아가는 기자에게 정 교수는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생략)당사자로부터 해명을 받아야겠습니다. 대충 짐작이 되는 바가 있으니 자료공개를 부탁드립니다. 안 되면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요청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수업 중 문제의 발언이 있었는지 보다 어떤 학생이 그런 이야기를 외부에 퍼뜨렸는지가 더 궁금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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