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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마치 CCTV 같은 그들…'운전기사 폭로의 역사'

[리포트+] 마치 CCTV 같은 그들…'운전기사 폭로의 역사'
심복(心腹).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치 심장(心)과 복부(腹)처럼 가깝고도 긴요한 이들입니다.

이 '심복'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 전국시대에 통일을 앞둔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었습니다. '한'이 '진'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지리적 중요성을 '심장'과 '복부'로 설명했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엔 '운전기사'들이야말로 심복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고용주들과 함께 움직이고 그들의 사적인 대화까지 공유하면서도, 때로는 언론에 그들의 비리를 폭로해 앞길을 가로막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2일, 세계일보는 최순실 일가의 운전기사 김 모 씨와의 인터뷰를 공개했습니다. 최 씨 일가에서 1985년부터 2004년까지 17년 동안 운전기사로 일한 것으로 전해진 그의 증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김 씨는 "지난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최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2억 5천만 원의 뭉칫돈을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최 씨와 그녀의 모친 임 씨와 함께 이 돈 가방을 싣고 박 대통령이 사는 대구의 한 아파트로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
17년간 최순실 일가의 운전기사로 일한 김모씨는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최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2억5천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폭로했다.
최순실 씨의 언니 순득씨의 운전기사도 폭로를 이어갔습니다.

'연세대 관계자를 만났다'는 최순득 씨의 딸 장시호 씨의 연세대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한 증언뿐만 아니라, '전화 한 통에 라디오에서 원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등의 연예계 인맥과 관련한 증언들까지 나왔습니다.
최순득씨의 운전기사는 순득씨의 딸 장시호씨의 연세대 부정입학 의혹과 연예계 관련 의혹에 힘을 싣는 증언을 내놨다.
비단 최 씨 일가 운전기사들의 폭로뿐 아니라, 과거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사건마다 운전기사들이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지난해에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운전기사의 폭로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4월 이 전 총리에게 현금 3천만 원이 든 음료박스를 전달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던 상황에서,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가 둘의 만남을 기억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 전 총리는 이 일로 총리직에서 사퇴해야만 했습니다.
지난해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운전기사의 폭로로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비리 사건도 운전기사가 승용차 트렁크에 들어 있는 돈 상자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2014년 박상은 전 새누리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2011년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구속된 부산저축은행 사건,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최규선 게이트 등의 대형사건에서도 운전기사의 폭로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결정적이었습니다.
2014년 불법 정치자금 사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2002년 최규선 게이트 모두 운전기사의 폭로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도화선이 됐다.
특히 고용주로부터 수시로 비인간적인 모멸과 수모를 당했을 경우, 운전기사는 무서운 고발자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올해는 특히 대기업 사주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이른바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시발점은 지난해 12월 있었던 몽고식품 사태였습니다. 몽고식품의 김만식 회장이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겁니다.

결국 그는 대중의 거센 비난을 받고 명예회장직에서 사퇴했고,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불매운동까지 이어지면서 매출은 반 토막이 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엔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이어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주행 중에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식의 부당한 지시 사항까지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어 7월에는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무려 A4용지 140여 장에 이르는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어기면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전직 운전기사의 진술이 나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습니다.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현대BNG스틸 정일선 사장 등이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논란을 일으키며 대중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반면 회장의 '갑질'을 폭로하겠다고 나섰다가 되레 곤욕을 치른 일도 있습니다. 지난 9월 주류회사 무학, 최재호 회장의 전 운전기사 송 모 씨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송 씨는 회사에 전화해 '몽고식품 사태처럼 폭로 방송이 나가면 회사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면서 '억대의 합의금을 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조사결과 송 씨의 주장이나 협박과 달리 회장이 범죄행위로 볼만한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재판에 남겨진 송 씨는 공갈미수 혐의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이 화제가 되자 역으로 이를 이용해 고용주였던 무학 최재호 회장을 협박한 운전기사도 있었다.
고용주와 운전기사가 좋지 않은 결말만 맞이하는 건 아닙니다. 진정한 '심복'으로서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로 알려진 최영 씨가 그런 경우로 회자됩니다. 21년 동안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고,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도 직접 운전해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도 22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차를 운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 2015년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운전기사도 40년을 가족처럼 함께했다고 하죠.
노무현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은 그들의 운전기사와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는 미담이 전해진다.
세상살이가 그렇듯 운전기사들도 자신에 대한 고용주의 대우에 따라 그의 긴요한 심복이 될지, 앞날을 가로막는 심복이 될지를 결정할 겁니다. 또 고용주의 행동이 정당한지, 불법은 아닌지도 양심에 따라 판단하겠지요.

마치 '살아 있는 CCTV'와도 같은 운전기사의 눈. 운전기사가 어떤 심복이 될지 고민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획, 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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