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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저항문화' 사라진 일본, 촛불을 부러워하다

[월드리포트] '저항문화' 사라진 일본, 촛불을 부러워하다
위 사진은 어제(지난달 30일) 일본 조간신문들입니다. 그제(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 소식을 1면 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 방송들도 여전히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뉴스 출연자들의 발언 내용은 역시 조롱조입니다. 그럴만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최근 '리버라루(Liberal의 일본식 발음)'한 일본 사람 몇 분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에선 우리나라의 '진보'라는 의미로 리버라루, 또는 카쿠신(혁신)이란 표현을 씁니다. 이 분들에 따르면 일본의 리버라루 세력들이 한국 국민들의 촛불집회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달 29일 도쿄신문 기사도 화제에 올랐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일본에 저항문화 없어
위 기사는 지난달 28일 도쿄외국어대학에서 강연을 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이야기로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사회에는 저항 문화가 없다'라는 소제목이 눈에 띕니다. 스베틀라나 씨는 벨라루스의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소설가입니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죠. 체르노빌 사고 당시 피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1989년작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유명합니다. 책읽어주는 팟케이트인 SBS의 '북적북적'에서도 소개를 한 적이 있죠. [클릭] 

스베틀라나는 체르노빌 피해 당사자로서 이번 강연에 앞서 지난달 23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지역도 돌아봤습니다. 스베틀라나 씨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을 돌아본 뒤 체르노빌 사고 때처럼 국가(일본 정부)가 인간의 생명에 대해 전체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본사회에는 사람들이 단결해 '저항'하는 문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주장과 요구를 몇 천번 계속하면 사람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도 바뀌게 된다. 전체주의가 장기간 문화로 박혀 있던 우리나라(구 소련)에서도 사람들이 사회에 대하는 저항 문화가 없었다. 일본에선 왜 저항 문화가 없는지 모르겠다."

'저항 문화가 없는 일본'. 일본의 진보 세력들이 가진 가장 큰 고민입니다. 정부 정책에는 소수의 시민단체만 반발을 하고 있고, 일반인 사회는 그저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저와 대화를 나눈 일본 복지단체 관계자 분은 "한국 국민 100만명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의 파도를 만들 때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선 일반시민들 사이에 어떻게 저런 강력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30만 명 광화문 촛불 집회(전국 160만 추정)
물론 일본에도 진보세력이 있습니다. 지난해 아베 정부는 전쟁가능 국가로의 변신을 위해 안보 관련 법안들을 국회에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최대 12만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 학생들이 국회 포위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 특히 '자유와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실즈/SEALDs)'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 극우 단체들이 혐한 시위를 할 때마다 동시에 반대 집회를 벌이는 '인종차별 반대모임(크렉/CRAC)'도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도 있죠. 이밖에 원전 가동 반대 단체와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단체들도 활동 중입니다.
지난해 12만 명 참여 일본 안보법 반대 국회 집회(아사히신문)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일반 시민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지 못 합니다. 그나마 젊은 패기로 아베 총리에 맞섰던 대학생 모임 '실즈'마저 지난 8월 해체했습니다. 일본의 '저항' 세력들은 점차 힘을 잃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지난 2014년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기사 오보 선언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히신문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모집했다'는 요시다 세이지 씨(사망)의 증언을 1970,80년대 집중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증언 내용 일부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오보 선언을 한 겁니다. 이후 아사히신문을 포함한 진보 매체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합니다. 아사히신문은 800만 부 이상이었던 구독부수가 670만부까지 추락했습니다. 아래는 당시 보수매체 '쥬오고론'(중앙공론)이 묘사한 일본의 진보진형 구조입니다.
일본 진보세력의 3각축(쥬오고오론 2014년11월호)
위로 대중(일반 시민사회)를, 아래는 지식인층을 기반으로 해서 아사히신문(위)과 인문서적 전문출판사 '이와나미 서점'(좌), 그리고 진보적 교수와 문화예술인들(우)까지 삼각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삼각 축은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가장 먼저 일반 시민사회의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시민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한 일본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60%를 넘는 상황에서 아무리 야당인 민진당을 찍어도 정권 교체 가능성은 없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경제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부는 소규모 시민 활동들을 그냥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니 '저항' 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줄어드는 겁니다."
일본의 연간 경제성장률 추이 / 출처: www2.ttcn.ne.jp/honkawa
위 그래프는 일본의 연간 경제성장률 추이입니다. 오른쪽을 보면 1991년-2015년까지 2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9%에 그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 무기력이 젊은이들의 개혁 의지마저 꺾은 걸까요?

그렇다고 해도 일본 사회는 너무 '저항 문화'가 없습니다. 최근 경제산업성은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 및 피해자 손해배상금액을 모두 20조 엔(210조원) 정도로 추정했습니다. 기존 추정액보다 2배 가량 늘어난 겁니다. 대부분은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으로 전가될 전망입니다.

그런데도 일본 사회는 조용합니다. 인터넷에 불만의 목소리는 있지만, 거리로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쇼가 나이(어쩔 수 없어)'라는 반응입니다. 원전 재가동 문제, 후쿠시마 오염토 처리 문제, 연일 이어지는 과로사 자살 문제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 3월 보육원 부족문제로 일부 여성들이 시위를 벌인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정부가 해주는 정책 수준에 그냥 만족하기 일쑤입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한국의 진보세력은 일본보다 더욱 역동적입니다.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한국의 진보운동은 이후 노동운동, 여성운동, 소비자운동, 환경운동 등으로 분화됐고, 더욱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현재의 진보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시민들의 지지는 
1960년 4.19 혁명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은 진보세력은 정치권으로도 진출해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일본식 삼각 축으로 설명하면, 진보세력-시민사회-정치세력이 연계돼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는 진보세력만이 아닌, 전국민이 참여하는 '저항' 운동입니다.  국민들 스스로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저런 강한 에너지의 시민들이 있다면 일본은 몇 번이나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 진보 인사들의 말은 허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광화문 촛불집회를 인정해주는 목소리가 아직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일부 진보 인사들만의 의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촛불집회가 그 규모뿐 아니라 시민운동의 형태로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연일 일본 언론에 보도되는 부끄러운 한국 소식 속에서 그나마 이런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이번 주말에도 광화문에 나가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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