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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역대 대통령 처벌사…'피의자 신분' 적극 활용하는 첫 대통령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검찰 또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의 조사를 받게 되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 신문 조서’에 지문을 찍게 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한 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남게 될 것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나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다른 정권에서도 비리가 터지면 대통령을 상대로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번 사건도 그런 수준”이라며 애써 이번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이들 주장대로 역대 대통령들도 자신들이 관련된 의혹과 추문에 휩싸여 왔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전의 사건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 하야 뒤 망명으로 처벌 피한 이승만 전 대통령 

1945년 광복 이후 1대~18대 대통령이 집권했다. 군사정변, 독재, 체육관 선거 등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해 ‘대통령’ 호칭에 논란이 제기되는 이들도 있지만, 박 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이 국가원수로서 통치했다. 이 중 박근혜 대통령을 빼면 5명이 당선인 또는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 또는 수사 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고, 3명이 처벌됐다. 또, 피의자 조사를 받진 않았지만 나머지 5명의 대통령도 부정 선거, 가족 측근 비리로 의혹이 제기되거나 참고인 조사를 받은 바 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1~3대)을 집권한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 선거로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퇴진 압박을 받았다. 그는 진실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무리수를 뒀다. 계엄령을 선포해 시위를 진압하는 강경책을 펼친 것이다. 그러자 민주화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하야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사법 처리를 피했다.

● 민주화 운동으로 처벌 받은 윤보선 전 대통령…진술 거부한 최규하 전 대통령

2년을 집권한 4대 윤보선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대통령으로 기록돼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인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비상군법회의 검찰부’로부터 수사를 받은 뒤,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1976년에는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는 촛불시위, 이른바 ‘3.1 명동성당 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기소돼 징역형 8년 형이 선고됐다. 또, 박정희 대통령 사망한 후인 1979년, 체육관 선거로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에 반발해 집회를 열었다가 처벌 받은 전력도 있다. 명동성당 근처 YWCA회관에서 결혼식을 위장해 집회를 개최한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때문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세 번의 처벌 전력이 있지만, 모두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안이다. 헌법을 유린한 것으로 비판받는 이번 국정농단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재임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는 10대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변(12.12)’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1995년 12월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참고인 신분’으로 최 전 대통령을 소환하려 했지만 불응하자 자택에서 방문 조사 형태로 조사를 벌였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진술을 거부했다. 이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에 대한 조사를 위한 '참고인 신분' 조사라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인 이번 사건과는 차이가 크다.

[마부작침] 역대 대통령 검찰조사

● 고향으로 도망…체포 구속된 전두환  

전두환, 노태우 씨는 처음으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자 가장 높은 형량을 선고 받은 군 통수권자로 기록돼 있다. 1995년 김영삼 정권 시절,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전 씨와 노 씨를 12.12 군사정변(내란)과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학살(살인),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사건 발생 15년 만으로, 역대 국가원수 중 가장 많은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은 권력을 행사하면 진실을 은폐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장시간 진실 규명을 지연시켰다.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두 사람을 무혐의 처분하기도 했고, 두 사람 처벌 근거가 된 5.18특별법에 대해선 헌법 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전 씨는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그러다 검찰에 긴급 체포돼 구속 기소됐다. 전 씨에겐 무기징역, 노 씨에겐 징역 17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형 확정 250일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 외환위기로 서면 조사 김영삼 전 대통령…대검 중수부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

14대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7년에는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가 금품수수 등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 기소됐다. 이듬해 외환위기 사건으로 대통령 본인이 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현직 신분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핵심 인물로 지목돼 참고인 신분으로 서면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경제실정의 책임을 대통령이 아닌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묻고, 이들을 직무유기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무죄가 확정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였지만, 정책의 실패에 대한 조사라는 점과 '참고인'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는 차이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과 관련된 직접적인 수사는 없었다. 다만, 세 아들 홍걸, 홍업, 홍일, 이른바 ‘홍삼 트리오’가 모두 검찰 수사를 받았다. 차남 홍업 씨는 2001년 이용호 게이트 수사 당시 이용호 G&G그룹 회장으로부터 47억 원을 받은 혐의로, 삼남 홍걸 씨는 이듬해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 관련 36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장남 홍일 씨는 김대중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3년 6월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으로 기소됐다.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직후 벌어진 ‘박연차 게이트’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 대상이 됐다. 퇴임 1년 여 만인 2009년 4월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에 소환돼 12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 동기와 배경, 방식을 두고 비판이 커진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는 중단됐다.

● 당선인부터 재임 때까지 두 번의 특검…기소는 모두 피해간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때부터 재임 시절까지 본인과 관련된 특별검찰 수사가 두 번이나 진행되는 등 검찰과의 인연이 남달랐다. BBK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돼 2008년 2월 당선인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서울 모처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을 식사 시간 포함 3시간 가량 조사를 벌였고, 나흘 뒤 무혐의 처분했다. 재임 시절인 2012년엔 ‘내곡동 사저 헐값 매입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 당시 검찰 내부에선 헐값 매입의 수혜자가 이명박 대통령 일가라는 점에서 대통령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대통령 일가에 대한 한 차례의 소환 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채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특검이 출범했고, 청와대는 “특검 수사에 성실히 협조 하겠다”고 밝혔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법원에서 발부한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은 물론, 특검의 수사 기한 연장을 모두 거부했다. 특검은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를 서면 조사하고, 아들 시형 씨를 소환 조사했지만 증거 부족 등으로 기소하지 못했다.

이처럼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본인 또는 가족이 연루된 의혹은 반복됐다. 다만,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일은 없었다. 일부 친박 세력들은 “현 사회가 민주적이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가능케 했다”고 말하지만, 검찰 내부 진단은 다르다.

한 검사장은 “현직 대통령을 직접 조사할 수 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검찰마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어쩔 수 없는, 축소 불가능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 피의자 신분 적극 활용하는 첫 현직 대통령…"감출수록 커졌던 의혹"

역대 대통령의 처벌사를 두고 대통령과 검찰은 각자 입장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전례가 없다는 점과 군 통수권자라는 신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전례와 불소추 특권을 가진 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무기로 수사를 피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이번 사건이 역대 정권에서 제기된 의혹과는 달리 현직인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이 대통령으로 드러난 이상, 대통령을 상대로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해야 사건의 형식적 얼개라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대면 조사를 둘러싼 양측의 줄다리기 끝에 검찰이 수사의 강도를 높이자,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던 입장을 번복했다. 검찰이 내일(29일)을 기한으로 요청한 대면조사 요구를 다시 한번 거부하면서 검찰의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끝내 무산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를 두고 “현직 대통령과 법무부 산하 외청의 관계에서 벗어나 검사와 피의자로서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리로 생각하기 보다는 피의자로서 검찰 수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변호인 선임은 물론, 조사 거부, 증언 번복에, 현직 대통령만이 가능한 검찰 수사 상황 취득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검찰의 다음 카드는 마땅치 않다. 피의자이지만, 대통령이기에 기소는 헌법상 불가능하고, 체포도 압수수색도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특검이 출범을 앞두고 있어 시간도 많지 않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감추려 하면 할수록 의혹은 커졌고, 결국 진실은 드러났다.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비밀의 문이 열리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며,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 임을 예견하게 한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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