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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트럼프, 중동분쟁을 블랙홀에 빠뜨릴까?

[월드리포트] 트럼프, 중동분쟁을 블랙홀에 빠뜨릴까?
미국의 정치외교정책에서 중동은 큰 비중을 차지해왔습니다. 미국이 주창해온 세계 경찰 국가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그 지위를 입증하기에 중동 분쟁 만한 게 없었으니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에 미국은 해결사와 중재자를 자청하고 나서며 ‘지구촌의 큰형님’처럼 행동해왔습니다. 당연히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유형무형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이득을 취해온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미국의 중동 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트럼프가 고립주의.보호주의로 수식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쓸 경우 중동 분쟁에서 개입을 오바마 행정부보다 더 최소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중동 정책이 어떻게 변할 지 자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왜? 그 동안 트럼프가 똑 부러지게 말한 게 별로 없거든요. 그가 깊은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중동에 대해 무지해서 인지, 무관심해서 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화’를 좋아하는 트럼프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중동 분쟁은 궁합이 안 맞아 보이죠? 무지와 무관심보다 ‘싫어’쪽이 가깝지 않을까 생각 드네요.
트럼프와 시리아 아사드, 러시아 푸틴이 한 통속이 될 거란 패러디
● 시리아 내전 – 학살자의 손을 들까?

트럼프는 그 동안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이 실패작이라고 주장하는 데 열을 올렸지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에 대해선 미꾸라지처럼 피해가며 똑 부러지게 소신을 밝힌 게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일관되게 주장한 건 “미군이 중동에 더 개입하기 전에 IS를 격퇴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 정돕니다. 그럼 어떻게 IS를 격퇴하겠냐에 대해선 뚜렷한 입장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그의 발언은 우리를 더 헷갈리게 합니다. 내전의 원흉이자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불리는 시리아 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사드를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아사드도 러시아도 이란도 IS를 죽이고 있지 않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사드정권과 러시아가 IS보다는 시리아 반군과 반군 지역의 민간인을 더 많이 죽이고 있는 건 알고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두 말을 붙여서 해석하면 아사드가 싫지만 IS 격퇴를 위해선 아사드,러시아와 손을 잡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트럼프는 미국이 중동에 돈을 물 쓰듯이 쓰고도 정작 받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집안 일은 얻을 것 없이는 참견 안 하겠다는 식입니다.

여기에 ‘미군이 더 개입하기 전에 IS를 격퇴”란 말까지 생각하면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미국은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트럼프가 당선되자 러시아 뿐 아니라 시리아 정부에서 환영의 표시를 밝힌 걸 보면 그들도 그렇게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시리아 반군에 대해선 더 차가운 반응입니다. “알레포는 이미 무너졌다고 본다” “우리는 반군의 실체가 뭔지를 모른다”란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반군을 지원해온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반군과도 거리를 둘 것으로 보입니다. 집안 문제는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죠.

이렇게 되면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를 등에 업은 아사드 정권 쪽으로 원사이드하게 흘러 빨리 종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은 화학무기와 통폭탄을 마구잡이로 쓰는 ‘학살자’. ‘독재자’와 손을 잡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반군을 외면하면서 수많은 시리아 주민이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의 폭탄에 학살되는 걸 미국이 방조했다는 비난에 직면해야 할 겁니다. 국제사회에서 ‘지구방위대’ 미국에 대한 신뢰와 지위도 상당히 흔들리겠죠.
트럼프는 중동분쟁에서 발을 빼려는 분위기지만 공화당은 대규모 병력 파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트럼프의 주장과 대치되는 현실이 등장합니다. 트럼프가 아무리 ‘이단아’라지만 소속 정당인 공화당의 당론을 마음대로 무시할 수는 없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공화당은 시리아와 이라크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선 지상군을 포함한 대규모 병력의 파병을 주장해왔습니다. 왜냐면 공화당의 돈줄인 무기와 총기 제조업체에게 물건 팔 시장을 마련해줘야 하니까요. 트럼프 역시 강한 미국을 주장하면서 당장 미군사력을 확장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오고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몸집도 키우고 단단하게 만든 군대를 본토에 썩게 놔둘 수 있을까요? 어디에든 보내서 강력해진 최강 미군의 저력을 확인시켜야 아무도 미국을 쉽게 보지 않을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 없이 좋은 무대가 시리아요 이라크인데, IS 격퇴전의 주도권을 러시아에 넘기고 미국은 돈만 아끼면 된다는 생각에 남의 집 불구경하듯 팔짱만 낄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트럼프 행정부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사우디 – 9.11 소송법 밀어부칠까?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협상을 타결 지으면서 사우디와 다소 냉랭해졌는데 트럼프 시대는 더 차가워질 것 같습니다. 미군의 주둔비 분담에 대한 요구 뿐 만은 아닙니다. 사우디가 유가 하락에 예멘 내전 개입으로 나라 곳간이 탈탈 털리고 있지만 그래도 중동의 부국이자 이슬람 수니의 종가입니다. 미군의 주둔비 분담 가지고 죽이니 살리니 옥신각신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우디를 걱정시키는 문제는 ‘9.11테러 소송법’입니다. 이 법이 뭔고 하니 미 본토에서 벌어진 테러 희생자와 유족이 해당 테러리즘 발생에 책임 있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 겁니다. 9.11 테러범의 3분의 2가 사우디 출신이라고 하니, 9.11 테러 희생자 측이 사우디 정부를 상대로 미 법원에 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오바마 대통령은 주권을 가진 한 국가가 다른 나라 법정에서 피고로 설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 거부권이 기각된 바 있습니다.

오바마 때는 어떻게든 이 법안의 실행을 막았겠지만 트럼프는 안 그럴 수 있겠죠. 미국 우선주의, 미국부터 잘 먹고 잘 살고 봐야 하니. 사우디는 9.11테러 소송법이 발효되면 미국에 있는 수천 억 원의 사우디 자산을 환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우디가 보유한 100조 원의 미 국채를 시장에 내놓아 미국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겠다고 위협합니다. 설마 하겠지만 트럼프를, 사우디를 누가 압니까? 둘 다 제멋대로 하기로 유명한데요. 이렇게 되면 양국 관계가 벼랑으로 가겠죠?
이란 핵 합의가 끔찍한 재앙이라는 트럼프
● 이슬람 양대 축과 등지나?

이란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은 명백합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이란 핵 합의’를 “끔찍하다” “재앙이다”고 표현합니다. 이란 핵 합의를 통해 “이란이 10년 안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란 핵 합의를 재협상 하겠다고 떠들어 왔습니다. 물론 이란 핵 합의는 국제사회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과한 것으로 미국이 혼자 폐기하고 다시 협상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란 핵 협상에서 미국의 금융관련 제재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만큼 트럼프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란을 괴롭히려고 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여전히 ‘악의 축’으로 보겠다는 거죠.

이란은 내년 5월 새 대통령을 뽑습니다. 중도파(이란에서 중도파는 보수 중에 중도파라는 뜻)로 이란 핵 합의를 주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재선을 노립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란 핵 합의를 폐기하겠다 재협상하겠다며 사사건건 이란을 괴롭혀 든다면 강경보수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으로선 어느 정도 낙관적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재선 여부도 불투명해질 겁니다. 이란의 강경보수파가 힘을 얻으면 나름 개선된 미국과 이란, 양국 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으로 치닫게 될 지 모릅니다.

● 뼈 속까지 親이스라엘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이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마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처럼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트럼프의 가치관은 확고합니다. “이스라엘은 내 친구”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를 포함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2민족 2국가 해법’을 지지해왔습니다. 팔레스타인을 한 국가로 인정해서 이스라엘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살아라 뭐 그런 겁니다. 1993년 오슬로에서 두 나라가 합의를 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2민족 2국가 해법을 싸늘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원답게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트럼프의 중동정책 자문관은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건설 중인 정착촌이 불법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한술 더 떠서 현재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원래 요르단 땅으로 요르단이 팔레스타인들에게 여기서 지내라고 허가한 곳인데, 이스라엘이 강제로 빼앗은 곳입니다. 어찌 트럼프를 뼛속까지 친 이스라엘이라고 안 할 수 있을까요?

가뜩이나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템플마운트를 두고 심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성지 갈등은 무력 충돌과 보복 테러, 강경 진압으로 이어지면서 1년 사이 양측에서 3백 명이 숨진 상황입니다. 제 3차 민중 봉기가 일어나니 마니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정책은 불씨가 붙은 중동의 화약고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트럼프가 IS 선전잡지에 ‘올해의 인물’로 표지를 장식할거라는 패러디
● 미소 짓는 IS, “미국은 9.11에 얻어맞고 11.9에 죽었다”

중동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반기는 곳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말고 하나 더 있으니 그게 바로 IS입니다. IS와 그 추종자들은 무슬림 입국 금지, 중동 난민 수용 거부처럼 이슬람 혐오주의자인 트럼프의 당선이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결집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반기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무슬림의 반감은 더 극대화될 것이고, 그럼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세력은 위축되지만 반미.반서방의 극단주의를 지구촌에 더 넓게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오죽하면 IS와 알카에다 추종자들이 “트럼프가 미국이 들어간 관에 대못을 박았다” “9.11은 알카에다가 미국에 재앙을 안긴 날이고, 11.9는 미국인 스스로 재앙을 초래한 날”이라고 SNS에 글을 올렸을까요.

또한, 이라크에서 IS 최대 거점인 모술 탈환 작전이 한창이고 시리아에선 IS 수도격인 락까 탈환 작전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IS 격퇴전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가 정권 인수 작업에 들어가면서 IS 격퇴전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미군의 IS 공습이 과도한 참여라고 여길 수 있을 겁니다. 행여 이라크군과 시리아반군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축소할 경우 당연히 모술과 락까 탈환작전은 더 힘들고 긴 시간이 걸리겠죠. 이렇게 되면 IS만 신나는 거죠.

트럼프의 반이슬람적인 정책과 행보,발언을 중동의 무슬림과 아랍인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일 이민자 출신인 트럼프의 외모, 아랍.중동과는 조상대대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을 것 같은 금발에 희멀건 피부색은 제가 사는 동네 중동에선 트럼프에 더더욱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기고 있습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아랍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도가 9%밖에 안 되는 게 그런 반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당에 모두가 욕하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방조하고, 이-팔 분쟁에서 아랍을 배척하고, IS 격퇴는 러시아에게 넘기려 하고, 이슬람의 양대 축인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그런다면 이슬람권과 미국의 관계는 역대 최악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중동 정세는 한 순간에 불투명해지고 불확실해졌습니다. 트럼프가 오랜 역사를 걸쳐 횡으로 종으로 복잡하게 꼬여버린 중동의 현실을 이해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외친 ‘위대한 아메리카’가 ‘오직 아메리카뿐’인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한 현명한 판단을 중동과 이슬람, 아랍권은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쓴 글도 지금까지 표를 얻기 위한 ‘대통령 후보’ 트럼프의 생각이고 발언일 뿐입니다. ‘대통령’ 트럼프의 행동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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