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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무변촌'을 아십니까?…당신이 변호사를 만나기 힘든 이유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법은 우리를 지켜줘요”

저녁 6시 “땡” 하면 검찰청사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노래다. '지킬수록 기분 좋은 기본'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법은 쉬우니 지키라’고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은 어렵고, 불편하기도 해서 ‘세뇌송’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필요한 게 법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법률 지식이 해박한 정부, 법원, 검찰, 기업이 ‘법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하면, 시민들은 일단 따르고 보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부당 해고인데, 과도하게 부과된 세금인데, 정부 과실로 생긴 사고인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한다. '법률에 대한 무지' 또는 '불편하고 지나치게 복잡한 법'이 초래하는 억울함이고 불공정이다. 

그래서 헌법은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명시했다. 현실은 어떨까. 법조계는 ‘변호사 2만 명 돌파’라며 공급 과잉을 걱정하지만, 시민들은 변호사 만나기가 쉽지 않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변호사가 없는 시군구, 이른바 ‘무변촌(無辨村)’의 실태를 처음으로 파악했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 등록된 변호사(휴업 제외)들이 개업한 장소를 전국 252개 시군구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변호사가 없는 도시를 분석했다. 한 마디로 ‘전국 변호사 지도’를 처음으로 그렸다. 지역 간 변호사 불균형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 변호사 1명…시민 3천 명 담당
[마부작침] 전국 변호사 및 인구 수

지난 9월 20일 기준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2만136명) 중 휴업 변호사를 제외한 변호사는 모두 17,644명이다. 전국에서 실제로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률 상담을 할 수 있는 이들이 1만 7천 여 명인 것이다. 지난 6월 기준 주민등록상 인구는 5161만9천330명으로, 시민 2천926명 당 변호사 1명인 셈이다. 

지난 2008년 6월 참여연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1인 당 담당 인구는 5,539명으로, 8년 전에 비해 인구대비 변호사 수는 늘어났다. 사법시험만 존재하던 과거와 달리 지난 2013년부터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매년 1천 4백 명씩 추가로 배출된 결과다. 하지만 변호사가 늘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쉬워지지는 않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들여다보자.

● 변호사 제로 지역 64곳…변호사 1명 지역 30곳

시민 3천 명 당 1명의 변호사가 있다는 것, 이것은 어디 까지나 평균 수치일 뿐이다. 인구 3천 명이 사는 지역 기준으로 변호사가 1명씩 골고루 배치돼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국 252개 시군구 중 변호사가 없는 이른바 '무변촌'은 64곳이다. 전국 시군구의 25%에 이른다. 변호사가 1명만 존재하는 시군구 30곳을 포함하면 ‘변호사 1명 이하’지역은 252개 시군구 중 94곳(37%)이다. 이 중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 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를 제외한 시군구만 떼어 놓고 보면 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마부작침] 전국 시군구별 변호사 수

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한 시군구는 모두 178개로, 이 중 무변촌은 58곳(33%)에 이른다. 여기에 변호사가 1명만 존재하는 지역을 포함한 ‘변호사 1명 이하’ 지역은 84곳(47%)으로 분석됐다. 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한 시군구의 절반 가까이가 법률 서비스 소외 지역이다. 때문에 대도시 외 지역에 사는 시민 상당수는 변호사를 만나려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한다.

● 변호사 1인당 3천 명 초과지역 230곳…전국 91% 평균 미달

법률 서비스 불균형은 변호사 1명당 담당 인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앞서 언급했듯 변호사 1인 당 담당 인구는 평균 3천 명으로, 인구 3천 명인 지역엔 적어도 변호사가 1명, 3만 명 지역엔 10명의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부작침>이 분석해본 결과는 이렇다.

전국 252개 시군구 중 변호사 1인 당 담당 인구가 3천 명을 초과하는 지역(변호사가 0인 지역 포함)은 모두 230곳이다. 전국 시군구의 91%가 평균 미달로, 나머지 9% 지역에 변호사가 편중됐다. 변호사 1인당 담당 인구가 1만 명 이상(변호사 0명 지역 포함)인 지역은 202곳, 3만 명 이상 153 곳,  5만 명 이상 125곳, 10만 명 이상인 지역도 88곳에 달한다.
[마부작침] 변호사 1인당 인구 3천명 초과 지역

● 변호사 1명이 79명 담당 '서울 서초구' VS 변호사 1명당 18만 명 ‘경기 안성’

변호사 1명의 담당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은 서울 서초구다. 서초구민은 모두 44만 5천 여 명인데, 이 지역에 개업한 변호사는 모두 5,634명이다. 전국 252개 시군구 중 변호사가 가장 많은 곳으로, 변호사 1명 당 79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는 서초구에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검, 대한변호사협회 등 국내 최대 법조타운이 형성돼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다음으로 서울 중구가 변호사 1명 당 담당 인구가 96명으로 2위로 분석됐고, 서울 종로구(변호사 1인 당 134명), 서울 강남구(194명)가 뒤를 이었다. 서울에 변호사가 집중된 탓인데, 전국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 1만 7천여 명 중 1만 3천 여 명이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부작침] 변호사 1인당 인구 수 상/하위 Top 5

변호사가 포화 상태인 서울과 달리, 법률 서비스 소외 지역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충남 보령시와 경북 영주시는 인구가 10만 여 명에 달하지만, 변호사는 각각 1명 뿐이다. 인구가 18만 여 명인 경기도 안성시에도 변호사는 1명 뿐이다.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하지만, 변호사가 전무한 지역도 있다. 경기 양주시는 인구가 20만 5천여 명, 경기 동두천시는 인구가 9만8천 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개업 중인 변호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광역지자체별로 살펴보면 서울, 제주, 광주, 세종은 무변촌이 한 곳도 없다. 반면 전남의 경우 인구가 190만4천여 명이지만 변호사가 99명에 불과했다. 또 전남의 22개 시구군 중 50%가 무변촌으로 나타났다. 강원도도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가 154만8천여 명이지만, 변호사는 139명으로 소속 시군구의 56%인 18곳이 무변촌으로 확인됐다.
[마부작침] 광역지자체별 무변촌 비율

● 법원 설치 지역 사이에도 존재하는 격차

특정 지역에 변호사 쏠림 현상이 심각한 건 법원을 중심으로 '변호사촌'이 형성된 것과 관련성이 높다. 재판이 진행되는 법원 근처에 변호사들이 모여 있고, 법률 상담이 필요한 시민들은 법원 근처에 개업한 변호사들을 찾아가는 구조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업무는 소송 업무(송무) 외에 소송에 이르기 전 분쟁을 해결하는 법률 자문 등 다양하다.변호사의 업무가 송무 중심으로 흐르면서, 변호사들은 편의와 수입 등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법원 근처에 사무실을 열었다. 변호사 업계는 “변호사들과 시민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법률 서비스는 소송”이라며 “법원 근처에 변호사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소송이 가장 핵심적인 법률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각 법원을 중심으로도 법률 서비스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이다. 

전국 지방법원과 산하 지원은 58개다. 전국 252개 시군구 중 58개 지역에 지법-지원(이하 법원)이 분포돼 있고, 각 법원이 여러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홍성군 외에도 예산군, 서천군, 보령시를 관할하는 구조다. 58개 법원이 위치한 지역 중 무변촌은 한 곳도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심각한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마부작침] 전국 법원별 변호사 1인당 담당 인구

대구지법 의성지원은 의성군을 포함해 군위군, 청송군을 담당한다. 관할 지역 내 거주 인구는 10만 4천 7백 여 명이지만 관할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는 2명 밖에 없다. 즉, 변호사 1명이 5만 2천 여 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경남 거창군과 합천군, 함양군에 거주하는 15만 1천 4백 여 명의 시민을 관할하는 창원지법 거창지원에도 변호사는 3명 뿐이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의 관할지역 인구는 220만 9천 여 명, 변호사는 1만 1천 1백 명으로, 변호사 1명당 199명을 담당하고 있다.  의성군민과 서울시민이 소송같은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그 편의성과 수준에 있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 로스쿨 도입…변호사 증가해도 지역 편차 그대로

법은 ‘사회의 실핏줄’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필요할 때 적절한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법률 서비스 제공하는 사람이 변호사다. 변호사법상 변호사 외엔 소송, 가사 조정, 행정기관에 대한 불복 사건 등 법률 사무를 취급할 수 없다. 한국 법률은 변호사에게 법률 서비스 제공의 독점적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독점적 권한이 시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2008년 대한변협은 무변촌 문제와 관련해 “교통수단을 이용해 법률 서비스를 받거나, 인터넷 상담과 전화 상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대한변협과 함께 지난 2013년 변호사가 마을에 상주하지 않으면서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법률 상담을 하는 ‘마을 변호사 제도’를 시행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전화 인터넷 상담은 보조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도현 동국대 법대 교수는 “거리가 멀수록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장애는 높아지고, 대면 서비스와 간접 서비스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변호사 업계의 태도를 두고 “독점적 권한의 혜택만 누리는 고압적인 태도”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한편으론 법률 서비스 보편화, 지역 편차 해소를 목적으로 전국에 로스쿨이 만들어졌지만, 지역 편차는 해소되지 않았다. 김도현 교수는 “지역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배출되면 지역 편차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서울 등 수도권 집중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부터 로스쿨 출신 법조인 1,400명(사법시험 포함 2,200명)을 시작으로 매년 1천 5백 명의 법조인이 나오고 있지만, 사법시험만 존재했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변호사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 무변촌 개업 지원 및 ‘법률서비스는 공공재’ 인식 전환 필요

변호사 업계는 소송이 없는 지역에 개업을 강요하는 건 “사업자이기도 한 변호사에게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서울에 변호사가 포화 상태이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서울만 한 곳이 없다”며 “취업난이 심각해도 유명 대학 졸업생들이 중소기업은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무원도 아닌 변호사에게 사회 공헌을 강요할 수 없지만, 법률 서비스가 공공재라는 것을 부인하는 법조인은 없다. 변호사법 1조에 명시된 ‘변호사의 사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독점적 권한이 보장된 만큼 사회적 책임도 따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변호사 업계는  자신들의 직업을 특권처럼 여기며 법률 서비스를 소수의 권력으로 만들어 독점적 배타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인식의 개선 없이는 < [비디오머그X마부작침] 변호사, 필요한 곳에는 없다> 기사와 같이 무변촌으로 향하는 변호사는 더욱 찾기 힘들어지고, 시민들의 법률 복지 수준도 나아지기 힘들다.

인식 전환과 더불어 경제적 지원을 통해 무변촌에 개업하는 변호사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필요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격인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련)는 지난 1996년 ‘변호사 과소 지역에 법률 상담체계 확립 선언’ 이른바 ‘나고야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을 통해“무변촌은 국민의 평등을 침해하는 문제”라며 무변촌 해결을 긴급 현안으로 지정했다. 이후 일본 변호사들은 ‘해바라기 기금’을 조성해 변호사 과소지역에 개소한 변호사들에게 운영자금과 정착비 등을 지원했다. 그 결과 10여 년이 지나선 무변촌은 ‘0’이 됐고, 변호사가 한 명 뿐인 지역도 줄어들었다. 한국에서는 변호사들이 나서 법률 서비스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마부작침] 마부작침 안내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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