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과 박근혜. “40년 신뢰를 바탕으로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받은 사이” 두 사람은 아직도 둘의 관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대통령도, 최순실도, ‘비선실세 국정농단’ 이 말을 끝내 인정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권력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최순실이 역린이었다고 말합니다. 역린!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 왕을 상징하는 용은 상냥한 동물인데, 역린을 건드린 자만큼은 반드시 죽인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왕의 약점을 만지면 죽는단 뜻입니다.
최순실이란 역린을 처음 건드린 건 2년 전인 2014년 11월28일 세계일보입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첫 경고음이었습니다. 최순실의 당시 남편 정윤회가 ‘십상시’라는 비선조직을 주도하며 국정에 개입한다. ‘왕실장’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도 검토한다. 대통령 동생 박지만 회장을 미행한다… 보도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든 문건을 토대로 이뤄집니다. 대통령은 격노합니다. 화를 낸 이유는 비선실세가 있냐 없냐가 아니라 어떻게 청와대 문건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문제를 지적합니다.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입니다. 공직기강 문란도 바로 잡아야 할 적폐입니다"
이후 국회에서 진행된 최순실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
“비선이 보여야 알지요. 전 비선이란걸 본일이 없습니다.””유언비어는 책임져야 합니다.” (황교안 국무총리)
“봉건시대에도 있을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활자화되는지 개탄스럽습니다.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최순실 모릅니다. 만난 적 없는거 아닙니까?”(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대통령님 친분관계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다”(이재만 총무비서관)
한마디로 “최순실, 모른다” “비선실세, 없다” 입니다. 알고도 이렇게 말했으면 후안무치 거짓말, 정말 몰랐으면 무능의 극치입니다.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모두 최순실이란 역린을 피했다는 겁니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은 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 17.5% 국정공백 상태인데, 여전히 대통령의 결단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정청 인사쇄신, 거국 중립내각 구성, 대통령 탈당 … 쓸수 있는 정치적 카드는 뻔합니다. 이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질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이 대통령의 결단만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국민 눈에는,혹시 또 다른 역린은 없는지 눈치보는 걸로 비칠수 있습니다.
국민은 특단의 해법을 요구합니다. 첫째, 대통령과 최순실의 명확한 상황 인식입니다. 순수했던 40년 인연이 잠깐 잘못된게 아니고 비선을 국정에 허용한 잘못에 대한 진솔한 시인과 사과가 필요합니다. 둘째, 최순실이 주무른 돈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입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 8백억원, 문화융성 예산 1800억원. 국내외 개인재산 수백억원. 특검이든 검찰이든, 철저히 수사해야 합니다. 세째, 남은 임기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입니다. 당정청 쇄신과 중립내각 구성, 차기 대선 공정관리까지 명확한 입장과 계획을 선언해야 합니다.
세간에는 별의별 얘기다 다 돕니다. 최태민 최순실 모녀와 대통령의 40년 악연이 사이비 종교 신정정치로 이어졌다는 해석까지 나돌 정도입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억측과 소설도 난무합니다.더 길어지면 피해는 대통령이 아닌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국정공백을 하루라도 줄이려면 더 이상 역린을 두려워 말고 대통령을 공식 회의로 이끌어 해법을 내놔야 합니다. 대통령과 곧 물러날 사람들의 유일한 선택이고 과제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