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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낙태 절반 '원치 않는 임신'…처벌만이 능사?

[리포트+] 낙태 절반 '원치 않는 임신'…처벌만이 능사?
지난 15일 종로 보신각이 검게 물들었습니다.

여성, 법률, 의료 등 각계의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앞서 지난 3일 폴란드에서 여성들이 정부의 낙태 금지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데 착안했습니다. 검은 옷 차림에 검은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폴란드의 시위를 본떠 검은 옷을 입었죠.
지난 15일 종로 보신각이 검게 물들었습니다.  여성, 법률, 의료 등 각계의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3일, 보건복지부가 ‘인공 임신 중절’을 한 의사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반발 여론이 거셌습니다.

인공 임신 중절은 흔히 '낙태 수술'로 불리죠.

개정안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했고, 집도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자 의사 단체와 여성 단체의 반발이 잇따랐습니다.

여론이 악화되자 보건복지부는 11월 2일인 입법예고일까지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가 한 발 물러섰지만 낙태 수술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처벌 강화와 법적 제재가 해결책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낙태 수술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 수술이 전면 금지된 것은 아닙니다.

임산부에게 유전성 질환이 있거나 성폭행 또는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죠. 다만, 이 예외의 경우들도 임신 24주 이내에만 가능합니다.

낙태 수술이 불법 행위인데도 수술은 암암리에 행해져 왔습니다.
정부는 낙태 수술이 불법 행위임에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되지 않아 처벌 수위가 낮아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보건복지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약 16만9000명이 낙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집계가 아닌 점을 고려하면 실제 수술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건복지부는 암암리에 행해지는 낙태 수술은 적발이 되더라도, 현행 처벌 규정에 따라 1개월 이하의 의사 면허 정지 처분을 하는데 그쳐 제대로 된 제재가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낙태 수술이 불법 행위임에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되지 않아 처벌 수위가 낮아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에 포함시키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했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입장입니다.

● 처벌 강화를 넘어선 근본적 대책 필요해

보건복지부에서 추정한 약 16만9000명의 낙태 수술 건수 중, 낙태 사유로는 '원치 않는 임신'(50.7%)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혼(26.2%)', '경제적으로 양육이 어려움(17.9%)'이 뒤를 이었죠.
16만9000명의 낙태 수술 건수 중, 낙태 사유로는 원치 않는 임신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부인과 의사 측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 행정이라고 비판합니다.
 
[ 김동석 /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
“처벌로 의료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법과 현실에 괴리가 있는 낙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먼저 끌어내야 합니다.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못하게 되면 환자들은 일본, 중국 등으로 원정 낙태를 가게 될 것입니다.”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낙태 수술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내세워 '낙태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죠.
 
[ 한국여성의전화 ]
“합법적이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여성의 재생산 권리의 하나로, 반드시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치 않은 임신 등 사회, 경제적 이유로도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산부인과 의사 측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 행정이라고 비판합니다.
일각에서는 또 낙태를 줄이기 위해 미혼모에 대한 인식 변화 및 지원, 생명 윤리를 강조한 성교육 실시 등의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낙태 문제에 관한 논의는 오랫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각계 각층의 의견이 다른 만큼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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