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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구를 위하여 '학폭위'는 열렸나

[취재파일] 누구를 위하여 '학폭위'는 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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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언니가요..."

여중생 A양은 자신에게 조건 만남을 강요하고 대가로 받은 돈을 갈취한 선배 이야기를 하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테이블 건너에 앉아있던 B양은 고개를 숙인채 몸을 떨었습니다. 아직도 선배를 생각하면 화가 나 잠에서 깬다는 A양은 한편으로는 선배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 '조건만남' 강요한 선배와 2주 뒤 학교에서 마주쳐야

지난달 23일 폭행과 협박 끝에 조건 만남에 내몰려야 했던 피해 학생들은 2주 뒤 선배들을 학교에서 다시 마주쳐야합니다. 자신들을 성 매수 남성의 차에 태운 선배에게 학교가 '출석정지 10일' 처분만 내렸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아이들에게 보호막이 돼주지 못했습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는 지난 2일 담당 수사관에게 조건 만남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수사관은 보름 넘도록 성폭행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취재진에게 "학부모와 학생이 성폭행 당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피해 학생 어머니가 경찰관에게 보낸 장문의 문자를 들이밀자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죠?"

학교와 경찰에 수없이 물었지만 결국 답을 얻지 못한 아이들은 돌고 돌아 기자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 경찰관 참석 없이 졸속으로 열린 학폭위…학부모 항의에도 학교 측은 '쉬쉬'

경찰의 부실 수사도 문제지만 학교 측의 대응은 피해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습니다. 보호해 줄 거라 믿었던 학교가 아이들에게 내놓은 것은 '가해 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10일과 8시간의 교육 이수 명령', 그리고 "잊으라"는 말뿐이었습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피해 학생이나 보호자의 요청이 있으면 학교 측은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이하 학폭위)를 열어야 합니다. 학폭위 위원으로는 해당 학교의 교감, 학생생활지도의 경력이 있는 교사, 학부모전체회의에서 선출된 학부모 대표, 경찰,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외부인사가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규정상 학폭위는 재적 위원의 과반수만 출석하면 경찰, 판사, 검사 등 외부 위원 없이도 열릴 수 있게 돼있습니다.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 심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학폭위의 '외부위원'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해당 학교의 학폭위에는 외부 위원으로 위촉된 담당 경찰관이 "다른 일이 있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교감 등 교사와 학부모 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학폭위가 열렸고 '출석정지 10일'의 징계가 결정됐습니다. 학부모 위원 중 피해 학생의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학폭위의 징계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당 학교 교감은 "우리는 규정대로 했을 뿐이며 피해 학부모들이 이의가 있으면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는 원론적인 말만 반복했습니다.

● 심리치료 받는 아이들 "밤마다 불안해서 잠에서 깨요"

피해 학생들은 조건 만남에 내몰리기 전에도 선배들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금품갈취를 당했습니다. B양은 예전에도 수시로 맞았으며, 한여름 땡볕에 4시간 넘게 세워놓고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게 하는 가혹행위를 당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이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가해 학생 일부가 사건이 불거지자 '피해 학생들은 원래 조건만남을 하고 다니던 애들'이라는 헛소문을 주변에 퍼뜨리고 다닌다는 겁니다. 선배의 강요로 성 매수 남성의 차에 태워졌다 도망쳐나온 B양은 "이젠 친구들의 시선도 두렵다"며 기사를 통해 억울함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가해 학생 중 한 명을 구속하고 성 매수를 시도한 남성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피해 학생들과 부모들의 마음이 더 이상 상처입지 않도록 조속히 사건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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