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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로스쿨 졸업 6개월 만에 '법률전문가' 된 L씨 이야기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의혹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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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로스쿨 졸업, 4월 변호사 합격, 7월 '법률전문가' 채용
입사동기 8명은 유명 로펌 등 평균 3.7년 경력
금감원 "그 해 경력 없는 로스쿨 출신 지원자 많아 공평"
'무경력' 변호사 가운데 합격자는 단 한 명 뿐.. '전무후무'
올해 채용부턴 경력 5년 요구 "당장 쓸 인재 필요했다" 
'아버지'는 금감원 감사하던 18대 정무위 국회의원
아버지와 당시 '원장님'은 36년 전부터 행시 동기 
당시 채용담당 임원은 "난 몰라.. 실무 국장에 물어봐라"
실무 국장에 물으니 "2014년은 엄정한 절차 거쳐 채용"
"사기업도 아니고.. 감독기관인데 채용부정이라니 참담"


그때만 해도 L씨는 서울 유명 사립대 로스쿨 졸업예정자였다. 2014년 1월 얘기다. 2월에 졸업을 하고, 4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한 달 뒤 그가 도전한 건, 금융감독원 ‘법률전문가’ 채용. 7월, 입사 동기 8명과 함께 당당히 합격했다. 금융감독원 역사상 최초로 선발된 ‘경력 없는 법률전문가’. 그가 바로 L씨다.

그해 상반기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4년 금감원의 법률전문가 채용공고는 5월 13일에 붙었다. 변호사법은 사건 수임을 위해선, 6개월 간 실무 수습을 거치도록 정해져 있다. 법은 그렇지만, L씨는 ‘법률전문가’로 합격한터라, 실무 수습 없이도 출근은 할 수 있었다.

‘경력도 없고 사건 수임도 못하는 법률전문가’. 형용모순은 낮아진 채용 문턱 위에서 논리를 얻었다. 금융감독원의 역할이란, 금융기관의 위법을 감독해 적발하고, 심한 부정은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실무에 밝은 10명 안팎의 젊은 변호사들을 충원한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금감원은 그들이 원하는 ‘법률전문가의 자격’을 이렇게 정했다. ‘금융관련 법률업무 종사 또는 소송수행 관련 경력이 1년 이상인 자’. 몇몇 해는 경력을 2년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정의(定義)는 L씨가 채용된 해가 되자 갑자기 사라졌다. 2014년 국내 금융기관 사이에 갑자기 부정이 사라져, 금융감독원 소속 법률전문직원들의 업무가 갑자기 줄어든 건 아니었다. 금감원 스스로, 작금의 녹록치 않은 상황을, 채용공고 맨 윗줄에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 고객정보 유출사태 등을 계기로 금융회사의 IT보안 등 정보관리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및 금융질서 확립을 위해 금융감독·검사 인력을 확충하고자 IT·정보보호 등 전문성과 역량을 두루 갖춘 인재를 모집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응모를 바랍니다."
금융감독원 채용공고안
그런데도, 법률전문가의 정의에선 ‘경력 1~2년’이 사라졌다. 2014년 그 자리를 채운 건 ‘국내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 ’  달랑 11글자였다. 예외조항도 붙었다. ‘(2014년 4월 변호사 자격취득자 포함)’. L씨처럼 채용 공고 한 달 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도 채용대상이란 걸 밝힌 거다. 전례가 없던 참고조항마저 붙었다. 예년처럼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도 우대하지만, 로스쿨에서 금융법 과정을 이수했거나, 인턴 경험도 눈여겨본다는 얘기였다. (‘금융법’과 ‘인턴’을 굳이 강조한 이유는 뭘까. 의심은 가지만, 취재가 부족해 밝히지 못한다.)

※ 대학(원)에서 다수의 금융법 과정을 이수한 자,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인턴 또는 수습과정 포함)이 있는 자, 
   법무법인 등에서 금융관련 법무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자 우대

금융감독원 채용공고안
● 입사 동기 8명은 평균 3.7년 경력 변호사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금융감독원은 단박에, 채용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됐고 절차상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위법은 아니라고 밝혔다. 기자가 20일 만난 이상구 부원장보는 금융감독원의 공식 입장을 이렇게 정리했다. “2014년 전문직원의 경우 서류심사, 필기시험, 실무자면접 그리고 최종 경영진 면접 등 엄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
그는 당시 경쟁이 얼마나 공정했는지도 덧붙였다. 하지만 근거는 다소 황당했다. 당시채용에 L씨처럼 ‘경력 없는’ 로스쿨 졸업생이 많이 응시했다는 거였다. 당시 법률전문가 채용엔 141명이 몰려 경쟁률이 15.7대 1에 달했다. 로스쿨 출신 지원자가 98명 이었는데, 그 가운데 68명이 L씨와 같은 ‘무경력자’ 였다는 얘기다. 물론 그 가운데 선발된 사람은 L씨 단 한 명뿐이다.

L씨를 뺀 다른 8명은 어떨까. 출신별로는 로스쿨과 사법고시 출신이 각각 4명.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실(국회 정무위원회)이 밝힌 그들의 경력은 하나같이 화려했다. 그들은 한때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법무법인 그리고 회계법인, 생명보험사, 금융 공기업 명함을 지녔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전 직장에서 ‘프로’나 ‘선수’로 불렸을 법했고, 확실히 전문가로 충원된 ‘경력직’이었다.

그들이 쌓은 경력을 합산해, 어느 정도나 법률 업무나 소송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을 선발했는지 가늠해 봤다. 8명 평균 44.5개월, 무려 3.7년이 나왔다. 이전 금융기관 경력이 7개월로, 1년 미만인 변호사는 한 사람 뿐. 6명이 2년 넘는 경력을 가졌고, 6년과 7년 이상인 변호사도 각각 1명 씩 있었다.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금감원은 2015년에도 똑같은 자격 조건으로 법률전문가를 선발했다. 12.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이 변호사들은 평균 경력기간이 짧긴 했지만, 모두 6개월 이상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채용에선 ‘5년 이상’ 관련 경력이 있어야, 법률전문직에 응시할 수 있게 됐다. 이건 또 왜 그럴까. 금융감독원 올해는 노동법 등 당장 필요한 인재가 필요해서 그렇게 됐다고 답했다. 그래서 ‘경력 없는 법률전문가’는 여전히 L씨뿐, 전무후무다.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참담하다, 했다. 20일 만난 금융감독원 40대 직원은, 어조가 마구 타오르는 단풍처럼 성마르고 단조로웠다. “우리가 다른 일반 사기업도 아니고 금융회사의 법규 위반 여부를 저희가 점검하는 곳인데 이런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되는 거고요.”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그 실망은 대상이 분명했다. “위에 계신 상층부의 임원들의 대응자체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뻔뻔함에서, 정말 직원들이 많이 실망했고요.” 사태 수습 과정도 지켜보기 안타까운 수준이라고 했다. “나오는 해명 자체가 이게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말들이거든요.” 그리고 ‘경력 없는 법률전문가’가 버젓이 조사역으로 근무하는 부조리는 더더욱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직원들이 자주 접속하는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 앱에선 더욱 날선 비판 글이 도배되고 있다. 특히 ‘검찰 고발’이란 단어엔 특히 많은 ‘좋아요’가 붙고 있다.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  아버지와 원장님, 가까울 수밖에 없는 36년 

취재를 할수록 선명해지는 의혹. 출신과 관계를 알면, 더욱 그렇다. L씨의 아버지. 그는 2012년까지 18대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했다. 금감원을 감사하는 상임위원회다. 부친은 알고 보면 또, L씨에게 사령장을 준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과는 행정고시 동기다. 36년이니까,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최 전 원장은, 2011년 금감원 수석부원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그는 ‘대관’ 업무를 이끌었다. 국회 정무위를 출입하며, 핫라인을 구축하는 건,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공과 사. 모든 면에서 둘의 친분은 쌓일 수밖에 없었다고, 금감원 임직원들은 귀띔해줬다. 2012년 19대에서 낙선한 L씨 부친은, 자신의 옛 지역구에 위치한 공기업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그는, 그 공기업 분야 경력은 없기에,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최 전 원장은 현재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대학 석좌교수다.

금감원은 여전히 한 사람을 뽑기 위한 맞춤형 전형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9일 저녁, 의혹의 열쇠를 쥔 핵심인물을 찾아갔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가 있던 날이다. 그곳을 찾아,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김수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가 2014년 L씨 채용 당시, 인사와 채용을 책임진 임원 즉, 기획경영 부원장보였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기자가 물었다. “당시 채용을 담당하신 임원이셨으니까, 채용 과정에 대해 가장 잘 아신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예상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누가 그래요? 제가 제일 잘 안다고.”

잠시 할 말을 잊었다가, 다시 물었다. “당시 임원이셨던 건 맞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데. 그 실무적인 그거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고, 실무라인에서 검토하잖아요. 실무를 담당하는 그때 라인에서 구체적인 디테일은 알지. 임원은 사실은 사후에, 그런 디테일한 거까지. 그걸 저한테 물어보실 게 아니고 실무 국장, 실무 라인한테 물어봐야죠.”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김 부원장은 공보실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하라며 입을 닫았다. 기자는 돌려보내졌고, 다음날인 20일, 그가 찾으라던 바로 그 실무 국장을 만났다. 그는 앞서 언급한 이상구 부원장보이다. 2014년 당시 인사 채용을 담당한 총무국장. 그가 카메라 앞에서 말하겠다고 미리 정한 답변은 단 하나였다. “2014년 전문직원의 경우 서류심사, 필기시험, 실무자면접 그리고 최종 경영진 면접 등 엄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되었습니다.” 기자는 이유도 없이, 금융감독원의 전향적인 입장을 들을 거라 기대했던 거였다. 그러나 반추해보니, 그는 정말 의혹의 핵심에 선 전직 ‘실무 국장’으로서 할 말만 한 것이다.

● 조사는 착수되었다

사건 발생 2년이 지났다.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야할 책임자 찾아 어렵게 만났더니, 공교롭게도 현재 금감원 서열이 2,3위였다. 2016년 10월, 국정감사장에 나온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이번 채용 부정의혹을 자체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말 짧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 부원장보에게 물었다. 조사 주체와 대상은 정해졌느냐고. 대답은 ‘미정’ 이었다. 하기야 기자가 질문할 사람을 잘못 골랐다. 조사 대상에게 조사 방침이 뭐냐, 물은 꼴이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하기로 그 조사는, 누군가 의지를 담아 이미 착수하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엔, 햇살이 너무나 엄중하게 내리 쬐는 날들이다.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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