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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고교생 복서 어머니 "뇌사한 아들이 버틴 한 달은…"

[人터뷰+] 고교생 복서 어머니 "뇌사한 아들이 버틴 한 달은…"
지난달 충남 청양 군민체육관에서 열린 고등부 전국복싱대회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이 16살, 고교 1학년생인 김정희 군이 시합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겁니다. 뇌출혈 증상이었습니다.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김 군은 끝내 뇌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군의 어머니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에 황망했습니다. 어머니는 밝은 목소리로 시합을 하겠다던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된 현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들 죽음에, 세상 어느 누구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운동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애통해하는 어머니. 취재진은 SBS 8시 뉴스에 미처 방영되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연을 글로 담아봤습니다. <편집자 주>

- 사고를 접하셨던 상황은 어땠나요?

“사고가 있던 경기 날 저는 없었고, 대신 애 아빠가 따라갔어요. 정희가 경기를 마치고 아빠 옆에서 쉬다가 쓰러졌다고 하더라고요.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를 타고 경기장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달렸다고 해요. 작은 병원이었는데, 출발하기 전 정희 상태에 대해 얘기했는데도 산소라든가 이런 게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했어요. 결국, 정희는 1시간 30분 만에 헬기로 단국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막 수술실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 수술받기 전 정희군 상태는요?

“의사 선생님은 수술시간이 1시간 30분을 못 넘기면 가망이 없는 거라고 말했어요. 계속 마음 졸이면서 기다렸죠. 그런데 1시간 30분이 지났어요. 그 순간 기대했죠. 내 새끼 이제 살았구나, 살 수 있겠구나. 그런데 10분쯤 지나서 의사 선생님이 나오시더니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내저으셨어요.

그때 수술실에서 나오는 정희는 그냥 머리만, 아픈 머리만 감싸고 있었어요. 멀쩡하게 자고 있는 아이처럼요. 심장도 너무 잘 뛰고요. 의사 선생님 붙잡고 우리 애 이렇게 멀쩡한데, 시간 좀 기다리면 낫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어. 안 된다고. 뇌사라고. 모든 경황과 의사 소견으로 아무 희망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단 하루도 못 버틴다고요.”
정희 군 어머니는 아들이 정말 살아날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 그런데 한 달을 버텼다고요?

“정희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버텨줬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났는데도 너무 잘 견뎌줬어요. 의료진들은 최악을 염두에 두고 비상 상태로 있었는데, 아이가 매 순간을 잘 이겨냈어요. 오히려 몸이 안정을 찾으면서요.

우리는 정말 살아날 줄 알았어요. 하루하루 우리 아들 손 만져주고 머리 상처가 빨리 가라앉길 기도했죠. 애 아빠는 정희가 깨어나면 좋아하던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몸 관리하겠다고 말했어요. 정희가 뇌사에 빠지면서 눈도 나빠지고, 콩팥도 나빠졌거든요. 정희한테 눈도 주고 콩팥도 준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입원한 지 3주쯤 뇌파 촬영을 했는데, 감지된 신호가 없었어요. 매일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기대하면서도 절망하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가망 없다는 말 듣기 싫어서, 의사 선생님들을 피해 다니면서 아이 옆을 지켰죠.”

- 정희 군은 언제부터 복싱을 했나요?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요. 정희한테 사춘기가 온 것 같아서 추천해줬어요.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운동도 같이 하면 밝은 에너지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정희도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에 있는 다이어트 복싱 클럽 체육관에 가봤어요. 다이어트 복싱이 전신운동이니까 땀도 많이 흘리고 좋을 것 같아서요. 복싱을 그렇게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아이가 복싱을 너무 좋아하고, 관장님을 잘 따르더라고요. 힘들면 운동을 빠질 법도 한데, 한 번도 안 빠지고 학교 끝나면 바로 운동하러 갔어요. 그러다가 정희가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관장님이 정식으로 운동을 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질이 있다면서요.”

- 정희 군도 복싱선수가 되길 원했나요?

“정희는 사랑에 푹 빠진 것처럼 복싱을 너무 하고 싶어 했어요. 그렇지만 저랑 남편은 반대했어요. 학교 생활하면서 취미로 했으면 좋겠다, 힘든 운동을 네가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반대했죠.

저도 정희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나는 정희 네가 복싱을 포기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그런데 정희가 하는 말이 ‘난 엄마 아빠가 내가 운동하는 걸 허락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정희가 복싱을 너무 좋아하고, 간절했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정희가 하는 말이 ‘난 엄마 아빠가 내가 운동하는 걸 허락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 도 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실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기대도 안 했어요. 그냥 지켜본다는 마음뿐이었죠. 저희는 복싱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덜컥 경기도 대표에 선발된 거예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에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요. 당시 다녔던 복싱클럽의 체육관 타이틀을 달고 출전했어요.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KO승으로 다 이겼어요. 엘리트 선수들인 학교 복싱부 선수들한테 밀리지 않고 누가 봐도 이기는 게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정희 삶은 달라졌어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단순히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이젠 최고가 될 수 있겠다는 꿈을 품었던 것 같았어요.”

- 하지만 체고 진학을 말리셨다고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복싱을 못하게 말렸어요. 체고 대신 인문고로 진학을 시켰죠. 그런데 정희는 복싱을 계속 하고 싶어 했어요. 결국, 경기체고 근처에 있는 인문고로 진학하고, 경기체고 입학 예비 지원자로 대기하고 있었죠. 훈련은 기존 체육관에서 계속했고요. 그리고 고등부 대회는 화성시 복싱협회 유니폼을 입고 나갔죠.”

- 화성시는 자기네 선수가 아니라던데요?

“아이가 다녔던 학교도 교육활동이 아니라, 화성시 체육회, 화성시 복싱협회 소속으로 출전한 거 아니냐고 의아해해요. 대한복싱협회도요. 보험회사도 화성시 복싱협회 소속이기 때문에 자기들 책임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고요. 그럼 그 책임은 도대체 누구한테 있다는 얘기인가요?”

- 소속팀 논란으로 마음이 더욱 힘드시겠어요.

“사고가 난 날 아침에 정희한테 기도하고 응원한다고 했던 통화가 마지막 통화가 됐어요. 차라리 내가 그날 경기장에 갔으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요. 내가 가서 정희가 1라운드, 2라운드 하면서 힘들어 할 때, 나라도 ‘정희야 그만해!’라고 소리쳐줬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내 새끼가 이렇게 됐나 싶어요. 너무 미안해요. 내가 엄마로서 지켜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이 죄를 어떻게 씻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엄마로서 지켜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이 죄를 어떻게 씻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 김정희 군 어머니는 아마추어 학생 선수들의 소속 문제뿐 아니라, 보험 체계도 미흡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더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취재: 박수진 기자/ 기획·구성 : 임태우·김다혜 / 디자인: 안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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