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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깃줄 '지뢰'…황새복원 좌초위기

[취재파일] 전깃줄 '지뢰'…황새복원 좌초위기
"큰일 입니다. 또 감전사로 죽었습니다” 지난1일 밤 한국 교원대 박시룡 교수가 황새 감전사고 소식을 이메일로 알려왔습니다. 마치 전화기로 이야기 하듯 박 교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전을 때렸습니다. “20년을 공들인 번식 쌍 중 암컷입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습니다” 이어진 박 교수의 짧은 문장 속에는 황망한 심정이 절절히 묻어있었습니다. 정년을 앞둔 노 교수에게 ‘황새의 죽음’이란 마치 부모형제를 잃은 것처럼 이렇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황새복원 좌초위기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1년 충북 음성에서 마지막 황새 1마리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어 텃새였던 황새는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박시룡 교수는 멸종된 황새를 다시 텃새로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해 20년 전인 1996년 러시아에서 황새 한 쌍을 들여왔습니다.

천연기념물 제199호인 황새 복원작업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장본인입니다. 20년이란 세월을 오롯이 황새만을 보고 달려온 덕분에 인공번식을 통한 황새 개체 수가 늘었고, 드디어 지난해9월 황새 8마리를 충남 예산군 황새공원에서 자연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꿈에 그리던 황새복원의 첫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황새복원 좌초위기
지난1일 충남 예산군에서 감전사한 황새는 1년 전 야생에 방사한 암컷입니다. 이 황새는 수컷과 짝을 이뤄 지난 5월 처음으로 자연에서 새끼 두 마리를 부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무럭무럭 자란 새끼들은 벌써 둥지를 떠나 어미로부터 독립했습니다.

황새가 감전사한 곳은 황새공원에서 불과 1백 미터 근처에 있는 주택가 앞 전신주입니다. 사고를 목격한 마을주민은 “전신주 꼭대기에 수컷 1마리가 미리 앉아 있었고, 암컷이 나중에 날아와서 빙빙 돌다가 수컷 근처에 내려앉는 순간 불꽃 튀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으로 추락했다”고 말했습니다. 황새는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날개 쪽에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황새 감전은 정전사고로 이어져 주변마을에는 한 때 전기공급도 끊겼습니다.
황새복원 좌초위기
앞서 두 달 전인 지난 8월에도 황새 암컷 1마리가 황새공원에서 2km가량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 감전사했습니다. 이 황새도 전신주 위에 내려 앉다가 감전돼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연으로 돌아간 지 불과 3주 만에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한 쪽 날개 길이가 1미터 가량 될 정도로 몸집이 큰 황새는 다른 새에 비해 전깃줄 감전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야생방사를 통해 자연으로 돌아간 황새는 지난해 9월3일 8마리에 이어 올 5월31일 2마리, 7월18일 5마리 등 모두 15마리입니다. 이 가운데 감전으로 2마리가 죽는 등 모두 3마리가 폐사했습니다. 나머지 12마리와 올해 태어난 새끼 2마리 등 14마리가 충남과 경기, 전북 등 서해안 지역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특히 짝을 잃은 수컷1마리 등 황새 4마리는 여전히 감전사고 현장 주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황새들이 오가는 들판과 마을에는 전신주와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놓여있습니다.
황새복원 좌초위기
박시룡 교수는 제3,제4의 전신주 사고는 시간문제라고 말하며 급기야 황새 야생방사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전깃줄 감전위험이 없는 안전한 서식환경이 마련될 때 까지 황새를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독일과 일본 사례를 소개하면서 전신주 위에 황새가 앉아 쉴 ‘보조횃대’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로 횃대를 설치해 감전 사고를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황새복원 좌초위기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으로는 미흡합니다. 전신주를 뽑고, 땅속으로 전선을 매설하는 지중화 사업이 안전한 서식환경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전선지중화 사업은 지자체에서 부담해야합니다.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예산군은 전선 지중화사업의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남 순천시는 지난 2천9년 흑두루미 서식지 주변 전신주 2백82개를 뽑았습니다.

과감한 친환경 정책은 매년 겨울 흑두루미 개체 수 증가로 이어졌고, 어느새 흑두루미 1천5백 여 마리의 안전한 월동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 환경을 우선시하는 지자체란 명예도 안았습니다. 겨울철새인 흑두루미와 달리 황새는 텃새였습니다. 반세기전만 해도 일 년 내내 우리 땅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와 함께 어울려 살았던 이웃입니다.
 
환경을 망쳐 황새를 사라지게 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듯이 황새를 다시 텃새로 복원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자체 뿐 아니라 환경부와 문화재청에서도 적극 팔을 걷고 나서야합니다. 황새가 살 수 있는 땅과 물, 먹이환경은 우리의 생명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박시룡 교수는 “아~황새복원사업의 시작이 잘못된 건가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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