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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권위 "검찰, 강압수사 증거없다"…대한변협의 블론 세이브

[취재파일] 인권위 "검찰, 강압수사 증거없다"…대한변협의 블론 세이브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강압수사 논란'이었습니다.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금형업체 대표 57살 조 모 씨를 수사하면서 검찰이 이른바 '못된 짓'을 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참고로 조 모씨는 올해 4월 수출 가격을 10,000배 가까이 부풀린 수출대금 채권을 국내 금융기관에 매각하는 수법으로 16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30달러 남짓하는 TV 캐비닛을 20만 달러로 세관에 신고하는 수법으로 기업가치를 엄청나게 부풀렸다고 합니다.

조 씨의 혐의를 떠나서 중요한 건 조 씨와 가족을 수사한 검찰의 태도입니다. 범죄인이라고 해도 인권을 짓밟았다면 검찰도 혼나야죠. 조씨 측이 주장했던 검찰의 '못된 짓'이 한 두가지는 아니었습니다만 크게 보면 두가지 정도 됩니다. 

하나는 검찰이 조 씨의 수갑과 포승줄을 풀어주지 않고 조사했다는 것입니다. 조 씨 측 변호인은 당시 "조씨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조서 날인을 할 때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이름을 쓴다는 게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검찰이 지난해 조 씨와 사실혼 관계의 여성 41살 김 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1차례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김 씨가 검찰 조사 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김 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집에 돌아와서 모친에게 '모든 게 다 끝났다. 검사가, 재산을 모두 추징하겠다고 한다'는 말을 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유족과 변호인의 주장이었습니다. 자살한 이유가 검찰의 강압수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조 3륜의 한 축인 대한변호사협회가 검찰 수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이 커졌습니다. 구속된 조 씨 측과 변호인이 제출한 진정서를 토대로 변협이 진상조사를 해보니 검찰 조사과정에 문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변협은 검찰이 2015년 7월 1일 오전 조씨에 대한 조사에서 수갑과 포승을 풀지 않았다며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라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례적으로 여당 의원이 당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을 불러 강압수사 의혹을 추궁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박할 증거를 제출하지도 않아 의혹은 더욱 커졌습니다.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져갈 무렵 대한변협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당시 법조계 적지않은 인사들도 변협의 결정에 용기있는 행동이라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검찰인데 변협이 선전포고를 할 정도면 내부적인 진상조사가 충분히 진행돼 강압수사를 입증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 어느정도 깔려있었던 모양입니다.

거물급 기관간의 '빅매치'를 링에 올린 인권위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인권위의 결정문에 따라 한쪽 기관은 KO패 당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인권위 조사는 1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인권위는 대한변협이 낸 강압수사 의혹을 모두 기각 결정했습니다. '진정 내용이 사실이라고 볼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비교적 짤막한 내용만이 결정문에 담겼습니다.

물론 철벽 마무리 오승환 선수도 '블론 세이브'가 있습니다. 검찰 수사도 문제가 많은데 하물며 강제수사 권한이 없는 변협 조사결과라고 늘 맞을 수 있겠습니까? 비교적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공신력있는 인권위의 결정문이니까 대한변협도 수긍하지 않을 순 없을 겁니다. 인권위의 '기각' 결정으로 대한변협의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변협의 진상조사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한번 곱씹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수갑과 포승을 풀고 조사했다는 걸 입증할 CCTV가 있다는 게 검찰이 큰 소리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근거였습니다만 변협은 물증을 외면한 채 유족과 변호인의 진술만을 토대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의문의 1패'는 바로 이겁니다.

제3지대에서 '법원' '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변호사 단체라는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변협의 주장을 기사화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변협이 아파해야 할 대목은 인권위의 '기각' 결정으로 기관의 공신력이 흔들렸다는 점입니다.
 
신뢰도가 떨어진 만큼 불신과 의심은 커집니다. 인권위 결정이 앞으로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대한변협이 왜 검찰이 떳떳하다던 '강압수사 의혹'을 쟁점화 했던 것인지 일부는 '무모한 도전'으로 결론 난 이번 사태를 의도를 갖고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이번 사태의 최대의 피해자는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었습니다. 김수남 검찰총장과 함께 유력 검찰총장 후보자로 거론됐지만 '강압수사 의혹'은 박성재 검사장에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었습니다. 실제로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추천위원으로 총장 후보자들을 심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대한변협이 지난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업중에 하나가 검사평가제 도입이었습니다. 검사의 광범위한 기소재량권의 남용을 막고 피의자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나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해 검찰의 독주를 막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번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명분싸움에서 변협쪽에 적지않은 힘을 실어줬던 것도 사실입니다.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에 맞서던 대한변협의 '용기있는' 선전포고가 자칫 이익집단의 '언론플레이'로 오해받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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