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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른 수건만 쥐어짜다가…꽉 막힌 경제정책"

[칼럼] "마른 수건만 쥐어짜다가…꽉 막힌 경제정책"
수확의 계절에 수심이 깊은 건 쌀값 폭락을 걱정하는 농민들만이 아니다. 쌀농사는 그래도 풍작이라도 이뤘지만 우리 경제는 ‘성장률 흉작’으로도 모자라 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경제 전체에 수심만 가득하다.
 
당장은 4분기 경기 추락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생산현장의 활력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지난 8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4%로 2009년 3월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조선. 해운에 이어 철강,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생산현장의 활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철도와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현실화되고 있고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내수 위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대선과 금리인하, 유럽과 일본이 돈 풀기를 줄이는 테이퍼링(점진적 자산매입 축소)처럼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은 4분기를 넘어 내년 경제 전망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세계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했고 미국 시티그룹은 연초에 ‘죽음의 소용돌이에 갇힌 세계 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었다. 세계 경제를 걱정한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의 경제 현실에 더 와 닿는 말이기도 하다.
 
악재에 둘러싸인 이런 경제 환경 속에서 정부는 부양책을 또 꺼내들었다. 4분기에 10조원이 넘는 재정과 투자를 추가로 동원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초 내놓은 21조 원 규모의 부양책과 하반기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단기 부양 카드다. 하지만 수출과 내수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새롭게 시장에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예정된 예산의 집행을 서두르거나 다른 곳의 재원을 가져다 시급한 부분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마련한 경기보완책이라고 설명한다. 신용카드 포인트 활용도 제고처럼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정책까지 정부 대책으로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정부가 대책 마련에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기는 하다.
 
경기 부양책의 감초 격인 금리인하에 대한 정부의 기대도 여전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기준금리가 1.25% 수준인 상태라 아직 (인하)여력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번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금리인하도 포함시키고 싶은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올 한해 내내 이런 단기 부양책과 금리 인하의 결과를 지켜본 국민들에게는 정부의 정책 대응이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각종 부양책과 여러 차례의 금리인하에도 기업은 여전히 투자와 고용 확대를 꺼리고 가계는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경기 부진이 단기 부양책의 반짝 효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요인인데다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가 소비 위축, 투자 감소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가계부채를 잡자니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부동산 시장을 살리자니 가계부채가 경제의 뇌관처럼 옭아매고 있는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환자에게 약이 듣지 않으면 다시 진단과 처방을 받아 약을 바꿔야 하듯이 경제도 살아나려면 정책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 가계의 소비 여력을 키울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책 기조의 새로운 처방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던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 당시의 경제정책)가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려운 길이라고 해서 피해 갈 수만은 없다.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데 더 나올 것도 없는 마른 수건만 언제까지 쥐어짜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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