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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는 신기록 제조기

[취재파일] 국회는 신기록 제조기
▲ 단식 농성 이틀째 이정현 대표(사진=연합뉴스)

27일 오전 국회 본청 새누리당 대표실. 이정현 대표가 매트리스를 깔고 농성 이틀째를 맞았습니다. 단식 농성입니다. 벌써 두세 끼를 거른 상태였지만 "아직 힘겹지 않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 시절 최병렬 대표가 열흘 동안 단식 농성한 전례가 있긴 하지만 그때는 야당 시절이었고, 집권 여당 대표의 단식 농성은 헌정 사상 처음입니다. 과거 DJ, YS, 이기택 그리고 문재인까지. 단식 농성은 모두 야당대표 전유물이었죠. 집권여당 대표 단식농성, 처음 맞습니다.

이뿐 아니고 헌정사상 첫 기록은 또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가결한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겁니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임동원 통일부 장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김두관 행자부 장관 해임 결의가 통과됐을 때 청와대는 장관의 자진 사표를 수리하는 형식으로 국회의 해임건의를 수용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해임건의를 거부했습니다.

또 다른 헌정사상 첫 기록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 형사고발입니다. 새누리당은 국회 윤리위 제소를 거치고 정 의장에 대한 형사고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 역시 진행되면 헌정사상 첫 기록이 됩니다.
 
매일 터져 나오는 어록도 기록적입니다. 여야가 얼마나 퇴로 없이 대립으로 치닫는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목숨 걸고 단식합니다. 어영부영하려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끝장 볼 겁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정치생명 잃던가(정세균) 목숨 잃던가(이정현) 둘 중 하나입니다” (지상욱 대변인)
“특권 의장 갑질 의장 맨입 정세균은 물러가라”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아예 명칭도 ‘정세균 의장 퇴진 대책위원회’로 바꿨습니다.

야당 반응도 따라서 거칠어졌습니다.

“이정현 대표 단식 번지수 틀렸습니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
“대통령께는 한마디 못하고 국회의장 향해 무기한 단식이라니, 푸하하 코미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이 말을 들은 이정현 대표는 “고향 후배에 대한 능멸”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헌정사상 첫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기록적 어록들이 이어지는 이 상황은 지난 토요일 새벽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처리에서 비롯됐습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 당 기류가 급변하면서 정 의장이 ‘차수변경’이라는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표결을 강행했습니다.

의장석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한 야당 의원한테 “세월호 조사위나 어버이연합 청문회 중 하나를 가져와야지, 맨입으로 되나”라는 말이 녹취되면서 새누리당은 모든 포문을 정세균 의장으로 집중했습니다. 이정현 대표는 ‘정세균 의장 사퇴까지 단식 농성’이라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정세균 의장
정세균 의장 사퇴는 법적으로 가능할까요? 국회법 9조에 그 가능성 여부가 명기돼 있습니다. 국회의장 임기는 임기개시 후 2년이 되는 날까지인데, 19조는 사임의 요건으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한정했습니다. 의장 개인이 ‘나 그만둘래’ 하며 사퇴해도, 사임안이 표결처리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단 뜻입니다. 현재 여소야대 구도에서 가능할까요? 

우선 정세균 의장 본인이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고, 혹시 사퇴한다 해도 야당이 찬성표를 던질 리가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의장 사퇴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이 정치적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현 대표가 정세균 의장 사퇴를 전제로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은 정치적 외통수를 의미합니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개회식 ‘사고’를 시작으로 정세균 의장의 중립 이탈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남은 국회 일정과 내년 대선까지 밀린다는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습니다.

야당은 새누리당이 우병우 수석, 이석수 특감, 최순실 의혹을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격하게 반응하며 국회를 마비시킨다고 규정합니다. 이른바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면 양측은 나름 논리와 이유를 갖고 대립하고 있는 겁니다. 국감 파행은 불가피해 보이고 예산 심사도 매우 불투명합니다. 

헌정 사상 신기록을 하나도 아니고 몇 개씩 구경한다고 신기해하거나 반가워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실소가 터져 나오는 어록들을 보면서 재미있어하는 국민은 더욱더 없습니다. ‘민생과 정의를 위해서’라는 여야의 외침에는 울림이 없습니다. 결국 여야 정치인들의 눈에는 내년 대선이라는 큰 떡밖에는 보이는 게 없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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