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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후 약방문도 쓴 약이 된다…골든타임의 교훈"

[칼럼] "사후 약방문도 쓴 약이 된다…골든타임의 교훈"
추석 연휴기간에도 한진해운 선박 68척은 여전히 바다에서 떠돌아야 했다. 1천3백여 명의 선원들은 오갈 데 없는 추석 난민이 돼버렸고 납기 계약을 못 지킬까, 불안한 화주들은 하루하루 피 말리는 연휴를 보내야 했다.
 
법정관리로 넘어간 지 19일 째, 해법을 못 찾은 채 한진해운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당장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 없이 물류대란을 수습하는 게 급하긴 하다. 그런데 이 뒷수습 못지않게 지금부터라도 챙겨야 할 건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앞으로도 첩첩이 쌓여있는 구조조정 숙제를 제대로 풀어야 하는 과제도 그만큼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여곡절 끝에 열린 조선 해운 구조조정 청문회는 조선.해운업 부실의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맹탕’ 청문회로 끝나고 말았다. 이른바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에 휩싸인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눈물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국내 해운업 기반의 상실과 물류대란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 경제가 챙겨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무책임한 오너 경영의 폐해를 확인했고 정부의 땜질식 대응 체계도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교훈으로 삼아 바꾸고 고쳐야 할 우리 경제의 민낯이다.

무엇보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로 되새겨봐야 할 교훈은 골든타임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결국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은 결과를 제대로 보지 않았는가?
 
긴박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초반의 중요한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심장 정지 때 심폐소생술은 4분 이내에 이뤄져야 하고,비행기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90초 이내에 승객을 탈출시켜야 한다. 뭔가 대처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는 시간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일반적인 의미의 골든타임과는 달리 경제에서 말하는 골든타임은 상황에 따라 다른 대응의 기회를 더 주기는 한다. 그러나 앞서 온 골든타임을 놓칠수록 해결까지는 더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그 기회나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살펴보자. 국내 해운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지난 2009년 초부터 본격화됐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로 해운사들의 부실 위험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금융기관들은 해운사들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를 실시했다.
 
그러나 글로벌 해운시장의 일시적 호황으로 해운사들이 흑자를 내자 정부의 구조조정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 오히려 2009년 초 164개였던 해운 회사는 2010년에 185개로 늘면서 거꾸로 간 구조조정의 결과가 됐다. ‘반짝 호황’에 눈이 멀어 해운업 구조조정의 첫 번째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2010년 하반기부터 다시 불황이 시작됐고 해운업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2013년 국내 4위 대한해운과 3위 STX팬오션이 잇따라 쓰러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2차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금융기관을 통해 해운사의 회사채를 사주는 응급처치 수준이었고 해운사들은 이 대책에 기대 회사채 발행으로 부채비율을 높이며 버티는 데만 급급했다. 땜질 구조조정에 매달리다가 두 번째 골든타임도 놓친 것이다.
해운사 부실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지난해 11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얘기가 흘러나왔다. 추진의 주체는 분명히 있었는데 관련 부처는 모두 발뺌만 했고 결국 합병설은 없던 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정부는 곧바로 다시 해운사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또 내놓았다.

1조4천억 원 규모의 선박 펀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지원 대상 기준을 '부채비율 400% 이하'로 못 박는 바람에 부채비율이 높은 양대 국적 선사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미루고 땜질 처방만 하는 사이에 골든타임은 흘러갔고 지금 우리 경제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국내 1위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넘어가며 글로벌 물류대란의 주범이 됐고 2위 현대상선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다. 국내 해운업의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배 떠난 다음에 손 흔들듯이 이렇게 실패의 역사를 이렇게 되짚는 게 ‘사후 약방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해운업 구조조정으로만 보면 ‘사후 약방문’도 같은 증세를 가진 다른 환자에게는 ‘쓴약’이 될 수 있다. 이미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받은 산업 부문에서라도 골든타임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에 남은 골든타임은 언제인가?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마지막 골든타임’을 강조한 게 2년 전이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8개월 남은 골든타임’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게 다섯 달 전이었다.

그런데 경제부총리는 ‘지금부터 2년이 우리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다’라고 말한다. 고무줄처럼 이렇게 마음대로 늘렸다 줄일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골든타임이 될 수 없다. 정책적 구호에 머무는 골든타임은 우리 경제에 ‘희망의 고문’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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