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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진해운 사모님과 '악어의 눈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눈물의 청문회'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 이틀째인 지난 9일. 청문회장에 일찌감치 나와 앉아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진해운 부실경영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었다. 검은색 상의에 회색 카디건을 걸친 최 전 회장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문회장에 들어선 이들의 눈길이 한 번씩 최 전 회장 쪽을 향했다. 희끗한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핵심 증인인 최 전 회장의 출석으로 청문회는 후끈 달아올랐다. 최 전 회장은 지난 2006년 남편인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듬해 ‘사모님‘에서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대모(代母) 경영을 표방했지만, 그가 경영권을 쥔 7년 동안 회사는 곤두박질쳤다.

한진해운이 위기에 빠진 최근에는 ‘먹튀’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한진해운이 재무구조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 쉽게 말하면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에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해 수십억 원을 챙겼기 때문이다. ‘부실 경영’에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까지 겸비한 핵심 증인에게 여야 의원들의 십자 포화가 쏟아졌다.  
첫 순서부터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진해운의 법정 관리에 본인의 책임을 통감하느냐는 질문에 최 전 회장의 목이 메었다. 임직원과 함께 했던 나날들을 생각하며 경영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사회에 기여할 방안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질문은 이어졌고, 또 매서웠다. 연신 눈물을 훔치는 최 전 회장이 일순 딱해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로 비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일 8뉴스 보기 ▶ 최은영 눈물에 '싸늘'…"국민은 피눈물" 일침)

● 안타깝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최은영 전 회장은 재임 시절 비싼 용선료를 지불해 한진해운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더민주 송영길 의원이 이에 대한 책임을 묻자, “용선료에 관한 부분이 적자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고유가와 모든 상황이 해운산업이 생긴 이래 60년 만에 오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비슷한 답변이 계속 반복됐다. 같은 당 윤호중 의원의 비슷한 질문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이 줄어들어서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대답을 덧붙였다.

  “상황이 어려웠던 건 현대상선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물음에는 다소 무책임해보이는 답변도 뒤따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영국 선사인 조디악에 ‘눈물의 편지’를 보내 용선료 인하를 이끌어낸 것을 두고 한 이 말에 “현대의 현정은 회장이 눈물의 편지를 보낸 건 자율협약 이후의 일이고 저는 2년 9개월 전에 사임을 했기 때문에 협상에서 제가 어떠한 위치도 아니었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진해운의 위기는 결국 최 전 회장 시절 초래됐다는 게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 2009년 최 전 회장이 선임한 김영민 사장이 이듬해 호황에 대비한다며 시세보다 훨씬 비싼 용선료를 주고 선박을 빌린 게 그 배경이다.

김영민 사장은 올해 여름 현재 1만 3천 달러 수준인 용선료를 3~4만 달러까지 지불했고 이 용선료 문제는 최근까지도 한진해운의 발목을 잡았다. 김 전 사장은 지난 2013년 11월 경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는 해운업계 출신이 아닌 금융인 출신이었다.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를 최고경영자에 앉혀 부실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국내 1위, 세계 7위를 달리던 세계적인 해운사의 몰락에 하나의 원인만이 있을 순 없다. 최 전 회장의 말대로 해운업의 부진은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변수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결국 당시의 오판과 잘못이 회사를 지금의 비참한 지경으로 몰고 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 씨가 회장으로 재직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155%에서 1,445%로 9배 이상 늘었다. 망해가는 회사를 떠나면서는 퇴직금으로 52억 원을 챙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전 회장이 반복한 대답은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결국은 '내 잘못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 역시 안타깝지만, 사재 출연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전 회장은 ‘사재 출연’에 대한 답은 끝내 하지 않고 비껴갔다.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말만 청문회 내내 열 차례 가까이 반복했다. 청문회 몇 장면을 소개한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 = 최은영 증인, 도의적 책임 느끼고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대부분 국회 나와서 그런 말 하시는 분들 보면 결과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한 가지 확인해 보겠다. 지금 한진해운 임대료 받고 있죠?

최은영 = 네

민병두 의원 = 연간 160억 원? 당장 그런 것 같은 경우는 본인이 스스로 희생할 수 있는 조치 아닙니까?

최은영 = 저희가 전체 임대료가 140억 이고, 6개 층을 한진해운이 같이 사용하고 있어서 한진해운이 내는 임대료는 연간 36억 원입니다. 지금도 몇 달째 지금 임대료가 밀려있는 상태에서 고통분담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민병두 의원 = 앞으로 가시적인 조치로서, 내가 이 정도 성의로 최소한 내가 이 정도는 고통 분담을,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이 정도는 하겠다, 최소한 이 정도의 시작으로 해서 사회적 약속을 하겠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 이겁니다.

최은영 = 책임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방안을 찾도록 고민하겠습니다.

민병두 = 증인의 의지같은 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작은 거라 할지라도 적어도 최소한 제가 이 정도는 희생하겠다, 이걸 시작으로 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청문회 나온 사람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다 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최은영 = 말씀드렸듯이 제가 검찰조사를 받고 있어서 정신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고민해보고 실천하겠습니다. 
 

뻔뻔한 답변에 모처럼 여야(與野)가 공분(公憤)했다. 최 전 회장은 이후에도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사옥을 한진해운에 돌려줄 수 없느냐는 질문(더민주 윤호중 의원)에 “빌딩은 개인의 자신이 아니라 유수홀딩스의 자산이라 개인적으로 처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본인이 대주주로 있는 유수홀딩스의 지분을 출연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에는 “그 지분은 유수홀딩스 경영에 관한 문제라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 앞서 윤호중 의원 심문에서 유수홀딩스는 상장법인이라 사재 출연이라든가 하기가 어렵다는 답변하셨죠?

최은영 = 예.

이현재 의원= 그런데 유수홀딩스 지분을 보니까 최은영 증인 지분이 18.1% 두 자녀가 9.5% 씩 총 37%의 지분이 있습니다. 이 지분은 경영책임 사회적 기업, 또 한진해운 정상화를 위해 전 최고경영자로서 당연히 경영정상화를 위해 출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안되는 겁니까?

최은영=그 지분은 유수홀딩스 경영에 관한 문제라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현재 의원= 증인! 증인 본인의 소유를 말하는 겁니다. 본인 소유가 18.1%인데 말로만 책임 느낀다, 사회적 기여하겠다 하고 안한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앞부분에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여하겠다고 했으니 18.1% 본인 꺼라도 책임 느껴야 하는것 아닙니까?

최은영 = 아까 말씀드렸듯이 무거운 책임 느끼면서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현재 의원 = 언제까지 강구할 겁니까?

최은영 =(한숨) 시간을 주십시오.

이현재 의원 = 시간은 언제까집니까? 지금 한진해운은 하루하루가 급하거든요. 여튼 조속하게 본인이 소유한 지분이라도 경영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 강구해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겠죠?

최은영 =고려하겠습니다.


이쯤 되면 배째라는 식의 답변에, 오히려 청문회 개최에 소극적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타가 더 쏟아졌다.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은 “한진해운 선박 중 절반이 지금 바닷길을 헤매고 있다. 직원들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협력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떨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 받는 데 급급해서 어떻게 (한진해운을) 살려내야 할 지 생각을 못하셨느냐”고 다그쳤다. 김선동 의원도 “고정된 답변을 레코드판 돌리듯이 반복하지 마시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최 전 회장의 무성의한 답변 태도도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성의 있게 답변해달라’는 요청이 반복됐다. 특히 “개인 재산이 어느 정도 되느냐”는 더민주 김해영 의원의 질문에 “주택과 일부 유수홀딩스 지분이 있다”고만 답했다가 청문회를 진행하던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에게 “답변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결국 “유수홀딩스 시가총액이 1,900억 원 가까이 되고 제가 18%니까 계산해보면 350억 내지 400억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사재 출연만이 물론 능사는 아니다. 국회의원 여러 명이 한 사람에게 사재를 출연하라고 다그치는 모습이 마녀사냥 같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 전 회장의 부실 경영과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인한 수천억, 수조 원의 비용은 결국 한진해운 직원들 뿐 아니라 애꿎은 국민들이 나눠지게 될 판이다. 당사자는 여전히 수백 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요한 건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와 진정성이다. 2년 전, 이미 허약해진 한진해운을 제수씨로부터 넘겨받은 조양호 회장은 4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최 전 회장은 사실상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사회적으로 기여할 방법”만 찾겠다고 말했다. ( ▶ 최은영 "구체적 방법 생각 못 해"…사재 출연은 '회피')
● “내 기득권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확고함

오전 10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돼서야 끝난 청문회를 통틀어 최 전 회장에게서 받은 느낌은 결국 “내 기득권은 내려놓을 수 없다”는 확고함이었다. 알맹이 없는 답변과 진정성 없는 태도가 그 방증이다. 만신창이가 된 한진해운을 시숙(媤叔)에게 넘기고도 최은영 전 회장은 알짜배기 자회사만을 챙겨 여전히 수십 억 원의 소득과 수백 억 원의 재산을 보유중이다.

백번 양보해 재벌 부모 (그의 아버지는 CY그룹 회장인 최현열, 어머니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 씨다) 아래 태어나 평생을 회장 사모님으로 살아온 최 전 회장에게, 그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는 선택은 자기 삶을 송두리째 잃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상상도 해본다. 그러나 아무리 (되지 않는) 상상을 해본다 치더라도, 청문회에서 보여준 최 전 회장의 몰염치와 무책임은 도를 지나친 수준이었다.

핵심증인이 빠지고 제출된 자료도 부실해 ‘맹탕’ 청문회라는 지적이 나온 이번 청문회에서 최은영 전 회장에게 화살이 쏠렸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장본인들은 쏙 빠지고 그 부담은 국가와 국민이 고스란히 진다.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삶을 위해 쓰일 세금은 ‘그들’의 잘못을 메꾸는 데 들어간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한진해운을 살리는 과정에서 또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람도,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도 충분히 나올 것이다. 최 전 회장같은 사람의 ‘사회적 기여’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청문회 한 장면. 한 의원이 최 전 회장에게 “후회와 회한의 눈물이십니까? 국민에 대한 사과의 눈물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최 전 회장은 눈물을 훔치며 “둘 다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번 청문회를 통틀어 가장 무색하고 공허하게 들린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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