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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마오쩌둥과 김일성, "보이는 게 다가 아냐"

혈맹과 불신감의 사이에서…

[월드리포트] 마오쩌둥과 김일성, "보이는 게 다가 아냐"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는 말을 씁니다. 항일 무장투쟁을 함께했던 역사에다, 중국이 북한을 도와 참전했던 한국전쟁을 감안하면 그리 불러도 이상할 게 없겠지요. 냉전 시대에는 사회주의 체제 유지라는 '전략적 이해'에서도 일치했던 사이죠. 조금 거칠게 말하면, 최근 핵과 미사일 문제로 북한이 무슨 짓을 해도 중국은 결국 북한의 편을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런 '혈맹' 북중관계가, 사실은 겉과 속이 다른 불신과 견제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주는 '이면의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중국 화둥(華東)사범대학 선즈화(沈志華) 교수가 '최후의 티엔차오(天朝:천자의 조정·왕조) 모택동·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조선'이라는 책을 6일 일본에서 발매합니다.
* 6일 발매되는 선즈화 교수의 '최후의 천조' 표지입니다.
상하 2권에 12,528엔 우리돈 14만원에 인터넷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

한반도에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은, 거의 신문 한 면을 터서 이 책의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북중 관계가 '혈맹' 이면에 '불신감'이 흐르는 제국-제후국 관계였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반면 마이니치 신문은, 1975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제2차 한국전쟁, 무력침공의 의지'를 나타냈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서 보도했습니다.
* 왼쪽 마이니치는 2면 큰 박스기사로, 오른쪽 아사히는 10면 전체에서 '최후의 천조'를 분석했습니다.*

아직 발매되지 않은 책이라, 일본 신문들과 선즈화 교수의 인터뷰를 종합해서 '역사의 장면'을 한번 재구성해봤습니다. 선즈화 교수는 중국과 옛 소련의 미공개 공문서 등을 바탕으로, 1956년부터 1975년 김일성 방중 사이의 '이면의 북중관계'를 분석했습니다. 먼저 마오쩌둥 주석의 발언 장면입니다.

<마오쩌둥 발언 1>
일시 : 1956년, 북한에서 친중 '연안파'가 숙청된 직후
상황 : 중국을 방문한 북한 고위관료와의 면담에서

"당신들의 당 내에는 공포의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다.
 한국전쟁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고 (김일성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다"

마오쩌둥은, 연안파 숙청에 대한 불만과 경고를 전한 셈입니다. 마오의 불신감은 여러차례 이어집니다.

<마오쩌둥 발언 2>
일시 : 1956년 11월 30일 오후 11시
상황 : 베이징의 고궁 중난하이(中南海)에서 구 소련 주중대사와 면담

"우리들 보살(중국)은 이미 북한에 대한 신통력을 잃어버렸다.
 김일성은 너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너지 임레 전 헝가리 총리는 반 소련혁명의 주역)
 너지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탈하려다 실패했지만, 김일성은 성공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만, 또 김일성에 대한 마오의 '불신감'이 나타납니다.
* 1975년 4월 18일,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 주석과 마오쩌둥의 북중 정상회담
'혈맹' 북중관계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많이 쓰이죠.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셈입니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960년 중소 관계가 크게 악화되자, 구 소련은 마오쩌둥과의 위 대화를 북한에 전달합니다. 중국 너무 믿지 말고, 우리와 잘해보자는 의미의 '고자질'인 셈입니다. 선즈화 교수는 구 소련 공문서 등을 바탕으로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고 썼습니다. 이번에는 김일성 주석의 발언 상황을 재구성하면…

<김일성 발언>
일시 : 중소 관계가 악화된 1960년
상황 : 후루시초프 지시로 '마오쩌둥 발언'을 전달하는 구 소련 북한 대사와의 면담에서

"(마오쩌둥이 소련 대사와 만나서 한 발언을 전달받자) 이건 거짓말이야.
 (큰 소리로) 중국의 지도자는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일이 다르다."

선즈화 교수는, 김일성이 마오쩌둥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식으로 썼습니다. 구 소련의 공문서에 담긴 내용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마치 현장에서 김 주석의 동요와 감정선을 확인한 듯하죠. 하지만 구 소련이 일종의 '정치공작'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공문서라는 점도, 함께 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마지막으로 만난 1975년 북중 정상회담에 관한 기록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중 혈맹'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격한 상봉' 사진이 찍혔던 회담입니다.

<마오쩌둥과 김일성 만남>
일시 : 1975년 4월 18일, 김일성 주석의 중국 방문
상황 :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공산화가 진행되던 시기, 마오쩌둥 주석 사망 1년 전 

김일성    "그들(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와 같다."
마오쩌둥  "하느님이 한잔 하자고 부르네.(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의미) 
            나는 이제 정치 얘기는 하지 않을거야."
선즈화 교수는, 동남아 공산주의 확산을 계기로 제2차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승인을 요구하려는 김일성에 대해 마오가 아예 말도 못 꺼내도록 사전차단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각국의 비밀 공문서를 샅샅이 뒤져서 40~50년 전 북중관계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선즈화 교수의 열정은 엄청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조차 쉽지 않네요.
    
하지만 동시에, 공문서를 바탕으로 했다고 100% 역사의 진실이라 장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공문서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자국의 이해관계'를 더욱 철저하게 반영하는 '거짓말의 공식화'일 때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일본 정부가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연행에 관여한 정부 기록은 없다."라고 주장한다고 그게 진실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다만 선즈화 교수의 책은, 나라와 나라의 관계는 결코 한가지 측면으로 규정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혈맹'. 선명하고 알기 쉬운 표현이지만, 그 이면에 중국과 북한의 불신과 긴장을 함께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겠죠. 우리도 마찬가지로, '혈맹'들과 좋은 관계와 기억들만 가져온 것은 아니잖습니까. 긴 시간에 걸쳐 불신의 파고도 함께 넘어왔으니까요. 보이는 게 다는 아닌 셈입니다.

끝으로, 선즈화 교수의 책이 일본에서 출판된 이유는 중국에서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아서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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