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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구도 알지 못한 죽음 '고독사'

[취재파일] 누구도 알지 못한 죽음 '고독사'
건물 전체가 새까매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했습니다. 1층은 가게를 하다가 문을 닫은 곳인지 유리문 너머로 텅텅 비어있었고, 옆으로 난 작고 경사가 급한 계단을 빙 둘러 올라가자 옥상 위에 작은 옥탑방이 나타났습니다. 여느 평범한 주택가와 다를 바 없는 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옥탑방이었지만,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숨 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악취가 풍겨왔습니다. 이곳에 살던 72살 최 모씨가 이날(22일) 오전 방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최 씨네 옆집에 살던 남성은 출근 준비를 하다가 며칠 전부터 났던 이상한 냄새가 그날 따라 유독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웃집 남성은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 씨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남성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 이웃집 할머니를 불러내 ‘최 씨에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와 남성은 조심스럽게 최 씨네 집 방문을 열었고, 이미 오래 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최 씨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최 씨가 숨진 지 한 달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시신이 워낙 심하게 부패돼 정확한 사망 시기나 원인을 판단하긴 어려웠습니다. 경찰은 다음 날 부검을 의뢰했습니다. 정확한 부검 결과는 한 달 정도 지난 뒤 나올 예정이지만, 경찰은 잦은 음주와 폭염을 사망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 씨의 집안에는 술병이 가득했고, 선풍기 한 대와 겨울 이불, 낡은 냉장고 정도가 살림의 전부였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 씨는 10년 전부터 이곳 옥탑방에 월세 8만 원을 내고 홀로 살았습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보니 보증금 없이 비교적 적은 금액의 월세만 내고 살았지만, 이마저도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웃들과 왕래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가게에서 술을 자주 사다 먹는 할아버지’ 정도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찾아오는 가족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최 씨의 시신을 발견한 뒤 가족들을 찾아내 연락을 취했지만, 10년 넘게 연락을 두절한 채 지냈던 가족들로부터 시신을 거두러 오겠다는 답변은 받지 못했습니다.

최 씨처럼 사망한 뒤 부패가 발생할 정도로 홀로 방치된 죽음, 이른바 ‘고독사’는 더 이상 흔치 않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직 고독사를 별도로 집계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지만 한 해 천 여 명씩 발생하는 무연고 사망자를 토대로 증가세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 고독사 가운데 일부는 유족에게 시신이 인계되기 때문에 고독사로 인한 죽음이 무연고 사망자 집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 10년 전 77만 명에서 지난해 137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는데, 이런 추세라면 고독사 역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에서는 아무도 죽음을 알지 못하고, 뒤늦게 시신이 발견돼도 거두어 줄 사람 하나 없는 죽음을 ‘무연사’라고 부릅니다. 지난 2012년 ‘무연 사회’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당시 일본 안에서 연간 3만 2천여 명이 이런 죽음을 맞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습니다. 무연사는 고독사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을 일컫습니다. 가족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가 전부 해체돼 ‘연(緣)을 잃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경우입니다.

무연 사회는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미래입니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의 가속화, 미혼 남녀의 증가 추세가 일본 사회의 고민을 ‘남의 나라 얘기’처럼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없게 만듭니다. 고독사, 나아가 무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몸 노인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사회보장 제도가 강화돼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이웃 사이의 연결 고리, 지역사회의 안전망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인연을 맺고, 작은 관심을 나누는 것이 단절된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방치된 죽음을 막는 최소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외롭고 고달팠던 인생의 마지막마저 쓸쓸하고 비참하게 맞지 않도록 내 이웃은 안녕한지 조금만이라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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