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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잘 나가는' 북한 엘리트들, 북한 떠나는 이유

사진 속 청년은 영국 런던에 거주하던 올해 19살 고등학생입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영국의 명문대에 입학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페이스북 같은 SNS를 완전히 접고 사라지더니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친구들이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 태영호 북한 대사관 공사를 따라 한국으로 탈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태영호 공사 같은 북한의 엘리트들이 북한을 떠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안정식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탈북자) : 옛날엔 이런 인사들이 탈북한단 건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이런 가문의 이런 사람들이 건너오다니요.]

태영호 공사는 런던 주재 대사관의 2인자였을 뿐 아니라 김정은 일가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평양 외국어학원을 나왔는데, 여긴 6·25 전쟁 전사자나 공작원 유자녀, 또는 중앙 부처 국장급 이상 자녀 같은 성분 좋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 공사는 주로 김정일의 덴마크어와 일어 통역을 담당했다는데, 전체 북한 외교관 1천4백여 명 가운데 이 정도 지위에 드는 사람은 3, 40명에 불과하다는 게 같은 외교관 출신 탈북자의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북한 외무성 내에서도 선발되고 선발된 속된 말로 아주 잘 나가는 인사였던 겁니다. 처가의 백도 든든했고 말이죠.

그를 포함한 이런 엘리트층이 지난 2~3년 동안 40여 명이나 북한을 탈출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북한 내에서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 핵심 계층마저도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왜일까요?

핵과 미사일 개발로 북한이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런 면도 있겠지만, 북한 고위층을 좌절시키는 더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체제가 김일성 일가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소위 외국물을 먹고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의 현대판 왕조 시스템을 수긍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리고 꼭 밖에서 생활하지 않았더라도 해외 소식이 알게 모르게 북한으로도 스며 들어가는 현실에서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김정은은 이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 만들어진 왕조적 전체주의 시스템을 계속 끌고 나갈지, 아니면 달라진 세상에 맞춰 조금씩 변화할 것인지 말입니다.

왕처럼 군림하는 게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언제까지 그 지위가 허물어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독재를 하더라도 북한식의 희한한 형태의 독재는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김정은이 자기 가족에 대해 행해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우상화 작업을 얼마나 현실화할 수 있느냐입니다. 김 씨 일가가 사실상 신으로 여겨지는 현 상황에서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외부와 소통하는 순간 신격화된 김 씨 일가의 허구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밝혀질 테고 이러면 정권의 기반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물론, 누구든 스스로 자신의 신적인 위치를 포기하고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고위급까지 민심 이반이 확산하고 있는 현재 과거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하다가는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도 중간선의 타협을 고민할 때입니다.

마오쩌둥도 중국에서 위대한 존재이지만,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신격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사회주의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외부와 소통하며 유연한 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겁니다.

북한도 유연성을 발휘하고 21세기의 상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김 씨 일가부터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안 기자는 강조했습니다.

▶ [취재파일] 김정은, '신'의 영역에서 '인간' 영역으로 내려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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