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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부르키니'가 이슬람 극단주의 상징이라고? - 겁 먹은 프랑스

[월드리포트] '부르키니'가 이슬람 극단주의 상징이라고? - 겁 먹은 프랑스
부르키니는 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 입니다. 부르카는 무슬림 여성이 머리와 목을 가리기 위해 뒤집어 쓰는 천 가리개를 말합니다. (원래는 머리와 목만 가리는 것이지만 서구에선 부르카를 아바야까지 포함시켜 전신을 가리는 의복으로 통칭하기도 합니다.)

이슬람 규율상 여성은 ‘보호’을 명목으로 맨 살을 드러내선 안 됩니다. 부르키니는 신체를 드러내지 않고 수영을 즐기길 원하는 무슬림 여성을 위한 전신 수영복입니다. 사진을 보면 ‘아~ 이거’ 하고 이해가 가실 겁니다.

● 부르키니가 비위생적이고 질서를 해친다고?

프랑스에서 국제영화제로 유명한 칸을 시작으로 여러 도시가 수영장과 해변에서 이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습니다. 이 도시들은 금지 이유로 ‘위생 문제’와 ‘공공 질서’ 유지를 내세웠습니다. 빌뵈브-루베의 시장은 “전신 복장은 위생적인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칸의 시장은 “프랑스와 종교시설이 테러 목표가 되는 상황에서 종교를 드러내는 수영복은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며 금지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정말 부르키니가 비위생적일까요? 사실 전신 수영복은 살갗의 접촉이 덜하다는 점에서 비키니나 삼각수영복 보다 훨씬 위생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부르키니의 재질은 일반 수영복과 똑같습니다. 도대체 뭐가 위생적인 문제가 우려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빌뵈브-루베의 시장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 그냥 위생 문제라고 들러댔겠죠.

부르키니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고요? 70년전 비키니가 유럽에 처음 등장했을 때 나온 말과 똑같습니다. 다만 그 당시 비키니는 풍기문란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비키니가 처음 등장할 당시 대세였던 수영복 패션은 부르키니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키니가 공공질서를 지켜주는 ‘전통’이고 부르키니는 공공질서를 해치는 ‘해악’이라고 말합니다.
비키니가 첫 선을 보일쯤 유명했던 수영복, 부르키니와 스타일이 비슷하죠.

뭐 ‘튀면 비정상’이라는 현실을 감안하죠. 다들 비키니 입는데 생뚱맞게 전신수영복을 입으면 ‘저거 뭐야?’하고 시선을 끌거나 눈총을 받겠죠. 프랑스 코르시카섬에선 관광객들이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을 제멋대로 사진 찍다가 결국 싸움이 붙어서 5명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만약 부르키니가 아니고 비키니를 입은 내 여자친구나 아내. 딸을 누군가 제멋대로 카메라에 담는다면 여러분은 ‘오케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찍으세요’라고 하시겠나요?

칸의 시장은 부르키니를 종교와 연관시켰습니다. 그렇다면 부르키니를 입는 사람은 다 무슬림이어야 하지 않나요? 12년 전 세상에 처음 ‘부르키니’라는 수영복을 내놓은 ‘아헤티 자네티’라는 디자이너는 자사가 생산한 부르키니의 40%는 비무슬림권에서 팔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왜? 신체 노출을 꺼려하는 사람, 자외선에 피부가 타는 걸 싫어하는 사람,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이 이 부르키니를 찾는다는 겁니다.

● “부르키니는 이슬람 극단주의 상징”- 겁 먹은 프랑스

아무리 생각해도 부르키니를 금지한 이유는 모두 궁색하기 그지 없을 뿐입니다. 이들의 속내는 뭘까요? ‘테러리즘 = 이슬람’ 이란 극단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의 잇단 테러가 프랑스인의 생각을 그렇게 바꿔놨을 겁니다. (IS가 아주 원하는 바죠.)

이 와중에 칸 시장은 “부르키니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징(symbol)” 이라고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수영복이 테러리즘의 상징이라고? 제 기준에서는 이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거나 반이슬람주의에 푹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 칸 시장은 예전에 사우디의 기부를 받아 칸에 대형 이슬람 사원 건축을 허가한 사람입니다. 그런 이가 수영복을 이슬람 극단주의에 갖다 붙일 정도면 다른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알아볼 필요도 없겠죠.) 테러에 치를 떠는 상황에서 이슬람 문화 자체가 프랑스 사회에 두드러지는 게 두렵고 짜증나고 못 마땅한 겁니다.
”부르키니가 이슬람 극단주의 상징”이라는 극단주의 논리를 펼친 다비드 리스나르 칸 시장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이민자가 있는 나랍니다. 이슬람 이민자들은 다른 이민자와 다르게 유럽 사회에 녹아 들지 못하고 자신만의 공동체에 고립돼 지내고 있습니다. 교육과 경제. 사회진출에서 2등 시민으로 차별 받으며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더구나 유럽은 최근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으로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난민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가 섞여 들어온다고 믿습니다.

‘이슬람 = 이민자 문화 = 2등 문화 = 난민 문화’식으로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이고 깔보는 인식이 박혀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벌이는 테러는 반이슬람 정서를 부추키고 있습니다. 결국엔 정치나 외교적인 문제와 전혀 별개인 휴양지나 생활공간조차 이슬람문화가 힘을 키우고 도드라지는 걸 차단하는 사회 현상으로 이어진 겁니다.

● 부르키니는 억압 아닌 해방의 상징

제 생각에 부르키니는 무슬림 여성에겐 자유와 해방의 탈출구를 제공한 혁신적인 개발품입니다.비이슬람권에선 희잡과 아바야, 부르카, 니캅처럼 여성의 신체를 가리는 천과 의복을 여성을 억압한다며 여성차별의 한 단면으로 인식합니다. 부르키니도 이런 연장선에서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여성권익부 장관은 부르키니를 “여성의 신체를 가두는 옷”이라며 대놓고 비난했죠.

무슬림이 대부분인 중동은 덥습니다. 그래서 사계절 너도나도 물놀이를 즐깁니다. 하지만, 신체를 드러내선 안 되는 무슬림 여성들은 물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무슬림 여성들이 신체를 노출하지도 않으면서 물놀이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해준 게 바로 부르키니입니다. 무슬림 여성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제품인가요?

그런 무슬림 여성들에게 부르키니를 입지 말라고 하면 이들은 어떻게 물놀이의 기쁨을 즐길 수 있을까요? 너는 자유의 나라, 세속의 나라 프랑스에 사니 종교가 무엇이건 원피스나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라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로 보일 뿐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영국의 무슬림 여성은 “만약 제가 부르키니를 입고 수영장이나 해변을 갈 수 없다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해변에 데려가냐?”고 항의합니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다른 무슬림 여성은 “부르키니를 입고 안 입고는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나는 안에 일반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발까지 닿는 긴 티셔츠를 걸쳐 입고 물놀이를 한다. 그럼 난 부르키니를 입은 건가? 아닌가?”라고 되묻습니다. 무슬림의 눈에는 ‘부르키니 착용 금지’가 이슬람 혐오주의의 공격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습니다.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이 해변의 공공질서를 해치고 있나요?

● 평등하기에 차별을 논해선 안 되는 프랑스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 관용을 중시하는 나랍니다. 그런 프랑스의 건국이념은 다양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바탕이 됐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한 나라이기에 ‘억압과 차별’은 있지도 않은 나라라고 믿게 됐습니다. 설사 있더라도 그것을 논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왔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획일화된 세속주의’로 변질되면서 ‘다양성’이 배격되는 문제를 낳은 겁니다. 이슬람 이민자들이 왜 프랑스에서 교육과 사회진출면에서 차별 받으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등 시민으로 전락해 사는 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에 가담한 신병 가운데 70%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대해 기초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시리아의 ‘자만 알와슬’이란 뉴스사이트가 IS 신병이 자신의 이슬람 지식을 스스로 평가한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IS 가담자들이 이슬람 사상에 몰입하고 해박해서 극단주의로 치우치고 빠져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박탈감이 평범한 무슬림 청년들을 극단주의에 빠져들게 하는 불씨가 된 것 뿐입니다.

프랑스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이 도드라지고 퍼진다고 해서 이슬람 극단주의가 확산하다고 오산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이란 미명아래 그럴싸하게 포장된 프랑스 사회, 하지만 그 안에 감춰진 이민자와  난민, 비기독교인에 대한 차별이 이슬람 극단주의를 키운 토양이 된 겁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 때부터 프랑스의 태도는 일관됩니다. 그저 극단주의화되는 이슬람만 비난하고 적대시할 뿐, 정작 프랑스 스스로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르키니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징이라고? 그런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 관용의 나라라고? 프랑스는 여전히 자신들이 왜 테러의 표적이 되는 지, 테러리즘에 어떻게 맞서야 할 지 깨우치지 못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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