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대기획 특별사면② 특별사면 효과 'zero'…경제살리기 커녕 재범만 조장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6.08.08 15:58 수정 2016.08.09 08: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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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억 원대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지난해 12월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그는 먼저 법정에 섰던 다른 기업 오너와 같은 전형적인 기업 범죄를 저질렀다. 하급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던 이 회장이 지난달 19일 돌연 재상고 취하서를 제출하면서 스스로 유죄를 확정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올해 광복절 사면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지 8일 만이었다.

CJ그룹 측은 재상고 포기는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악화돼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말 건강 탓일까. 대법원 재판은 피고인 참석이 필요 없고 서면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다. 재상고 포기서 제출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들어가기 위한 수순 밟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는 어김없이 올해도 특사명단에 경제인 이름을 넣기 위한 군불 때기에 나섰다. “기업 오너 범죄는 관행적으로 내려온 적폐의 결과로 충분히 반성했다”는 등 여러 이유를 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로 제시한 건 ‘경제 살리기’다. 정말 기업인을 사면하면 경제가 살고, 사회정의가 바로 서며 나라가 발전하는 것일까.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앞선 기사 ['평균 2년'…"반성할 시간도 주지 않는 특사"]에 이어 특별사면의 진실과 실제 효과를 분석했다.

● 특별사면…명분은 '경제살리기’, 현실은 '재범의 기회’

이번 광복절 특사 명단에 들고 싶은 기업 오너 중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있다. 김승연 회장도 기업범죄를 저질러 2014년 2월 ‘징역3년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됐다. 김 회장은 ‘불구속 기소, 구속집행정지, 집행유예’라는 사법기관의 ‘봐주기 3종 선물세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런 김 회장에 대해 이제 재계는 ‘3번째 특별사면’을 요구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이보다 앞서 회삿돈을 빼돌려 해외 호화주택을 구입한 혐의로 1994년 유죄가 확정됐다. 그리고 이듬해 1995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유죄 확정 1년 만이었다. 특별사면은 김 회장에게 우리사회에 공헌하며 깨끗한 삶을 살 기회를 준 것 일까. 아니었다. 김 회장은 지난 2007년 맞고 온 아들 대신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보복폭행을 하고, 경찰 수사에 외압까지 행사해 다시 유죄가 확정됐다. 김 회장을 두고 “기업범죄에 이어 활극까지 저지른 폭력사범”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그런 김 회장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유죄확정 339일,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두 번째 특별사면을 선사했다. 그리고 김 회장은 또 다시 기업범죄로 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된 뒤 특별사면을 기다리고 있다. 재계는 다시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이를 거들고 있다.

특별사면은 사법권을 무효화 시키는 특성상 불가피하게 법치주의와 3권 분립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최대한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반성, 재발 방지’라는 최소한의 요건도 충족돼야 한다. ‘법 앞에서 평등, 법치주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헌법 가치보다 ‘경제 살리기’를 택했고, 헌법 가치와 바꾼 ‘경제 살리기’는 실현되지 않았다.

● 사면 75일 뒤 다시 범죄 최태원 회장, 사면 후 주가 곤두박질

1조 5천억 원대 분식회계를 한 최태원 회장은 유죄가 확정된 지 78일 만인 2008년 8월 15일 사면을 받았다. 그리고 79일 뒤 회삿돈을 빼돌려 선물투자에 나서는 범죄에 착수했다. 기업범죄로 처벌받고 사면 받은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기업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최 회장은 이런 사실이 들통 나 지난 2014년 징역 4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533일 만인 지난해 8월15일 다시 특별사면을 받았다.

최태원 회장에 대한 두 번째 특사 명분 역시 ‘경제살리기’였다. 하지만, 최 회장이 첫 번째 사면을 받은 이후 우리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국가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 만큼, 기업 오너나 해당 기업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나라경제는 차치하더라도 최 회장 사면 이후 SK 그룹은 살아났을까?

지난해 최태원 회장이 사면을 받자 재계는 “SK 그룹이 총수 부재의 어려움을 딛고 훨훨 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와 상태를 반영한다는 주가는 최태원 회장 사면 이후 곤두박질치고 있다. SK 그룹의 지주회사인 (주)SK의 주가는 최태원 회장 출소 직전인 지난해 8월 13일, 31만 5백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8월)는 20만 원대로 30%이상 떨어졌다.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사면 받은 기업 오너가 있는 지금보다 오너 공백 때 주가가 더 높았던 것이다.

사면 이후 “혼외자가 있다”는 최태원 회장의 고백으로 SK 주요 계열사 주식이 일제히 하락하자, 증권가에서는 SK그룹의 가장 큰 위협은 오너의 공백이 아니라 ‘오너리스크’라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혼외자 고백 이후 부인 노소영 씨와 이혼 가능성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SK그룹 지배 구조도 불안한 상태다. 결국 대통령의 기업인 특별사면은 재범을 조장한 역할만 했지, 경제도 기업도 살리지 못 했다. 특별사면의 효과는 ‘0'도 아닌 ‘-’(마이너스) 였다.

● 경제살리기 효과 ‘ZERO'…허상에 가린 사면의 존재 가치 재고해야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실시된 기업인 특별사면이 ‘경제 살리기’, 더 좁게는 ‘기업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건 SK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지난 2012년 기업 오너 등의 범죄와 기업 성과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 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작성한 ‘경영범죄와 기업성과 : 경영자의 배임과 횡령 범죄가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는 2008년 대검찰청의 연구용역으로 작성됐지만, 대외비로 관리되다가 2012년 처음 공개됐다.

경영자가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경영 성과를 분석한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횡령·배임 등 각종 경영범죄가 일어난 기업에서 경영자가 처벌됐을 때 오히려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전보다 개선되는 경향을 띠었다. 보고서는 경영범죄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이 악화된 건 경영 범죄 그 자체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경제나 기업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경영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 기업인 특별사면의 명분인 ‘경제 살리기’는 허구라는 뜻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과 경제 질서를 교란시켜 처벌 받은 기업인을 ‘경제 살리기’ 명분으로 사면해 온 것 자체가 코미디”라며 “기업인 한 명이 없다고 경제가 어렵고 회사가 무너진다고 대통령이 믿는다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권력층의 재범을 부추기며 ‘사법부 자유이용권’된 특별사면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의 분석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부터 이번 박근혜 정부까지 소위 경제인, 고위공직자, 정치인, 대통령 친인척 등 권력층에게 실시된 형실효선고, 특별감형, 특별복권 등 사면은 모두 666번이었다. 이 중 한화 김승연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 삼성 이건희 회장처럼 2번 이상 사면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동일인에 대해 1차로 형을 면제해 주고, 그 다음 사면에 슬그머니 특별 복권을 시켜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2번 이상 사면의 수혜를 받은 사람은 77명, 이 중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등 12명은 3번 사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특별사면은 ‘사법부 자유이용권’이 된 것이다.

이러는 사이 ‘범죄에 대한 반성’을 기본으로 사회에 대한 공헌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기여해야 할 사면은 권력층에게는 면죄부로 전락했다. SBS <마부작침>의 취재 결과, 노태우 정부 이후 1차례 이상 사면을 받은 577명 중 사면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범죄로 처벌을 받거나 수사를 받은 사람은 확인된 사람만 72명, 전체의 12.5%였다. 대상을 2번 이상 사면을 받은 77명으로 좁혀봐도 이 비율은 11.7%(9명)로 큰 차이가 없었다.

더 큰 권력을 가질수록 사면 받을 확률은 높아진다는 법조계의 속설은 반복적으로 현실화됐다. 그 결과 사면은 범죄를 저질러도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해 핵심 권력층의 재범률을 높이고 있다. 특히, 특별검사까지 지명해 수사하고도 유죄 확정 139일 만에 한 사람만 콕 찍어 벌을 면제해 준 2009년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사면은 권력층의 비뚤어진 기대를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현재 이건희 회장은 2번 째 사면 이후 성매매 의혹이 불거져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한 사람에 대한 두 번 이상의 특별사면은 사면대상자가 번번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첫 번째 사면 자체가 잘못됐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사면도 그 어떤 사회적 이익도 없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첫 번째 사면부터 신중했어야 함을 의미한다.

"돈 있으면 금세 들어갔다가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일반 국민들도 참 억울한 생각이 많이 들죠. 돈 있고 힘 있으면 다 되느냐. 한번 형을 받았으면 없던 일이 된다든가 이런 것이 없게끔 법치가 확립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인에 대한 사면 자제’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지난해 SK 최태원 회장을 사면하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명분은 ‘경제 살리기’였다. 올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사면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인을 사면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사면 대상은 기업 오너 등 경제인으로 제한되는 분위기다. 명분은 또 ‘경제 살리기’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인에 대한 특사는 경제를 살리는데 기여하지는 못했고, 경제 살리기와 맞바꾼 법치주의와 3권 분립이라는 헌법가치는 철저하게 훼손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엔 ‘불완전한 형사판결을 교정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특별사면의 본래 취지에 충실할까. 아니면 ‘경제 살리기’라는 허구로 또 다시 사면의 본래 취지에는 눈을 감을까? 지금껏 특별사면을 지켜보며 억울하게 생각해온 일반 시민들은 자조와 기대 속에 이번 광복절 사면을 지켜보고 있다.
[마부작침] 특별사면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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