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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대기획 특별사면 ① '평균 2년'…"반성할 시간도 주지 않는 특사"

ABOUT: 성탄절, 설날, 삼일절, 광복절, 석가탄신일....
누구나 좋아하는 공휴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이날은 더욱 특별하다. ‘특별사면’을 기다리는 ‘특별한 이들’에게 말이다. 특별사면이 공휴일처럼 반복되면서,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은 꼬리표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공휴일이 다가오면 준비된 각본처럼 특별사면 군불때기가 시작된다. 재계가 “기업인 역차별 금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운을 떼면, 정치권은 “사회 통합, 경제 살리기”로 화답하며 대통령 특별사면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특별사면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형사판결을 교정해 사회정의를 세우고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껏 특별사면은 사회정의를 세우는데 일조했을까.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단행된 95차례 특별사면(감형 및 복권 포함)을 분석했다. 또 노태우 정부 이후 특별사면을 받은 사람 중 1)경제인 2) 고위공직자 3) 정치인 4) 대통령 친인척 등을 추적해 이른바 '권력층'의 실명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들의 유죄확정일부터 특별사면까지 걸린 시간을 파악했다. 특별사면이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목적에 부합해 이뤄졌는지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SBS <마부작침>은 역대 정부의 사면 명분인 ‘경제 살리기 및 사회통합’의 허구성, 특별사면의 실제 효과, 특별사면의 유일한 견제장치인 사면심사위원회의 실태, 개선책 등을 앞으로 연속해서 보도한다.

● 권력층 666건 경제인 정치인 最多…'일반 범죄자 들러리 사면'

사면은 대통령이 전권을 가진 '특별사면'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반사면'으로 구분된다.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선정해 해당하는 범죄자 전원을 일괄해서 벌을 면제시켜주는 것으로 헌법 79조에 따라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령으로 선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면 대상자가 많은 만큼 절차를 까다롭게 해뒀다. 199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고, 1995년의 일반사면도 1963년 이후 32년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복잡한 절차 탓에 역대 대통령은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특별사면을 애용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감형 및 복권 포함)으로 면죄 받은 사람은 모두 31만7,021명이다. 대상자가 많은 건 대통령의 편법적 특별사면 탓이다. 

역대 대통령은 특정한 인물, 이른바 권력층에 면죄부를 주고자 도로교통법 위반자 같은 수만 명의 생계형 범죄자에 대한 대규모 특사를 병행했다. 사법부의 고유권한인 형벌권을 일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대규모 사면은 국회 동의를 얻는 ‘일반사면’ 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대 대통령은 소수의 권력층 특별사면을 위해 ‘생계형 범죄자’를 들러리로 끼워 넣는 식으로 명분 쌓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특별사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선 사면대상자에 포함된 재벌 총수 등 경제인, 국회의원 등 정치인,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대통령의 친인척 같은 소수 권력층이 누구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면대상자의 실명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공개 여부가 결정되는데, <마부작침>은 노태우 정권 이후 사면된 권력층이 누군지를 추적했다. 정부가 비공개한 인물에 대한 취재를 통해 실명이 파악된 권력층 특별사면(감경 및 복권 포함)은 모두 666건(특별사면 중복자 포함)이다. 이 중 경제인이 261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정치인 242건, 고위공직자 146건, 대통령 친인척 17건순 이었다.

● "반성할 시간도 주지 않는 초고속 사면"…특사까지 '평균 2년'

실명이 파악된 권력층 특권사면 666건 중 유죄 확정일이 확인된 건 모두 564건이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권력층이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다 특별사면을 앞두고 돌연 항소나 상고 등 상소를 포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면을 받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인 셈이다. 공식적으론 사면 대상이 될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막연한 기대만으로 상소를 포기했을까. 청와대와 사전 교감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까지 재판부터 사면까지 걸린 시간을 보면 막연한 기대 이상의 확신이 있었다. 바로 '속전속결의 특별사면'이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권력층의 유죄 확정일부터 특별사면(감경 및 복권 포함)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754일, 약 2년에 불과했다. “판결문 잉크도 마르기 전 사면을 해준다”는 세간의 말이 헛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위공직자가 582일로 가장 짧았고, 다음으로 대통령 친인척이 유죄 확정부터 사면까지 588일이 걸렸다. 경제인 620일, 정치인 984일 순이었다. 한상희 교수는 “이 같은 특별사면은 정의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사법부의 사법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이어 “경제인 등 권력층은 수사과정에서 기업 오너라는 이유로 범죄 사실이 줄어드는 혜택을 받고, 재판과정에서 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마지막으로 속전속결의 사면까지 모두 3번 혜택을 받는데, 이는 어떤 측면에서도 정의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한 판사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존중하더라도 사면의 전제 조건은 범죄자의 반성”이라며 “반성할 시간도 주지 않는 특별사면이 과연 정당하느냐”고 반문했다.

각 정권별로도 특권층에 대한 사면(감경 및 복권 포함) 소요시간도 다르게 분석됐다. 평균적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이 유죄 확정부터 사면까지 492일로 가장 짧았고, 다음이 노무현 정부(581일), 박근혜 정부(589일), 김영삼 정부(591일), 노태우 정부(783일), 이명박 정부(960일) 순이었다.

● '한국 권력층 94% 5년 미만 사면'…'미국 5년 미만 사면 불가'

특사 대상자는 형벌의 목적인 '응보(應報), 교화(敎化)를 통한 뉘우침, 일벌백계에 따른 예방효과'라는 조건을만족해야 한다. 이런 전제가 충족됐더라도 최대한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이뤄져야 하는 게 특사이다. 특사는 속성상 3권 분립에 따른 사법부의 고유권한을 무력화하고, '예외없이 공평하게 처벌 받는다'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훼손하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은 유죄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최소 5년이 지나야 사면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권력층은 유죄 확정부터 사면까지 평균 2년이다. 

경제인, 고위공직자, 정치인, 대통령 친인척 등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특별사면이 법치주의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마부작침>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유죄 확정부터 사면까지 5년(1825일) 이내로 이뤄진 권력층 특별사면(감경 및 복권 포함)은 532건이다. 실명과 유죄 확정일이 파악된 권력층(564건) 중 94.3%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 기준으로 따지면 사면 받은 권력층의 94%는 취소돼야 한다는 말이다. 유죄 확정부터 사면까지 100일 이내가 55건으로 전체의 9.7%, 1년 이내가 193건(34%)로 분석됐다. 2년(730일) 이내가 327건(57%), 1,000일 이내가 401건(71%)에 달한다. 

● 유죄 확정 5일 뒤 특사…'짜고 치는 특별사면'

유죄 확정부터 특별사면을 받기까지 1주일도 걸리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부작침>이 파악한 역대 최단기 사면은 5일이었다.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다. 두 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불법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07년 12월27일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가 돌연 취소를 했고, 노무현 정부는 5일 뒤인 2008년 1월1일 이들을 사면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대우사태에 연루돼 처벌받은 유현근 대우건설 이사, 박영하 대우국제금융팀장은 상고 포기 7일 만인 2002년12월31일 특사를 받았다.

3번의 특별사면 전력이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전력 사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지난 1995년 8월8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우중 전 회장은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국전력과 관계에서 법을 어기거나 금품을 수수한 적이 없다는 것을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고까지 밝혔지만, 상고를 포기했다. 그리고 7일 만인 8월15일 특별사면을 받았다.

각본처럼 짜여진 특별사면은 역대 정부에서 반복됐다. 이명박 정부는 돈봉투 살포 혐의로 기소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상고를 포기하자 35일 만에 특별사면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도 하급심에서 실형을 받았지만 상고를 포기했다. 그리고 63일 만인 2013년 1월 31일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처럼 100일 이내 사면을 받은 권력층 상당수는 상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경우다. 

검찰 단계에선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려 수사를 피하고, 법정에선 무죄를 주장하며 방어권을 최대한 활용하던 권력층이 가장 보편적 권리인 재판을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 특별사면이 청와대와 사전교감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법조계는 설명한다. 검찰 특수부 출신 변호사는 "항소심이 끝난 뒤 피고인 측 대리인이 형량도 충분히 나왔고 무죄도 없으니 검찰도 상고를 하지 말아달라는 뉘앙스를 전달하면 이 경우엔 어김없이 특별사면 대상자라는 걸 사전에 전달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사면이 밀실에서 이뤄지는 권력층의 거래대상으로 변질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탓에 한국의 권력층은 죄를 지어도 형벌의 무게감을 느낄 시간도 없이 사면부터 받았고, 이를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는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부정의를 교정해야 할 특별사면이 '유권무죄(有權無罪)' 문화만 조장시켜 도리어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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