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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극 '아버지', 치매환자의 머릿속으로 관객을 안내하다

[취재파일] 연극 '아버지', 치매환자의 머릿속으로 관객을 안내하다
과거 보건복지 분야 취재를 담당하며 치매환자의 가족을 여러 번 만난 적 있습니다. 부모를 돌보는 경우도 있고 배우자를 돌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환자의 치매 증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보호자의 고통이 상당히 심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병증을 지켜보는 정신적 고통과는 별개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보건복지 담당 기자로서 당시 제 관심은 ‘치매환자 가족의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나눠 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치매환자에 대한 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보호자가 건강한 돌봄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제 인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치매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극이 공연 중입니다. 프랑스의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현대 프랑스 연극을 대표한다는 극찬을 받는 30대 젊은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의 작품 ‘아버지(Le Père)’입니다.

극장의 불이 켜지면 무대 위엔 중년의 딸과 노년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딸은 답답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추궁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딸의 말이 맞다면,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런 현실을 전혀 받아들이려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말이 맞다면, 아버지는 혼자 잘 살 수 있는데도 딸은 쓸데없이 걱정이 많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납니다.
깜빡깜빡. 점멸하는 작은 불빛 하나만 남긴 채 암전을 거치면 아버지는 다른 시간 앞에 서 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쑥 등장한 젊은 남자는 자신이 딸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이전 장면에서의 서사와 전제를 무너뜨리고, 아버지는 극도의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낯선 여자가 등장해 주인공을 “아빠!”라 부르면, 혼란은 공포가 됩니다.

이 연극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것처럼 관찰자의 시점에서 치매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경계성 치매환자의 시점에서, 치매환자의 내적 경험을 그려내 보여주고자 합니다. 극에서 같은 대사와 상황이 몇 번이나 변주되고 무대의 소품이 조금씩 이동하고 사라지는 건, 주인공이 겪는 혼란과 공포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의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뒤엉켜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끔 특정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하고 ‘나라면 마음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치매에 걸리는 걸 가정해 어떤 내적 경험을 하게 될 지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치매라는 질병이 인지와 판단기능의 손상을 동반하기에, 우리의 의식은 ‘그 훼손된 의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본질적으로 한계를 갖습니다.

이런 한계는 환자의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주고, 그 주변인들에겐 원망과 혐오의 감정을 낳기도 합니다. 극 중 딸의 남편 혹은 딸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은 아버지를 향해 반복적으로 그리고 위협적으로 묻습니다. 얼마나 더 오랫동안 주위 사람들을 괴롭힐 작정이냐고.
극은 이런 아버지를 변호합니다. 1인칭적 체험을 통해 아버지가 겪는 혼란과 폭력을 관객이 함께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불안과 공포를, 외로움과 슬픔을 공유하게 합니다. 

시간도 공간도 뒤죽박죽 되어버린 세계, 기억과 착각이 그리고 현실과 악몽이 그 어떤 실마리도 제시되지 않은 채 뒤엉켜있는 세계에 아버지 앙드레는 홀로 서 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언제나 당연한 것이었던 자신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새삼스레 지켜내기 위해 또 무너져가는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그의 운명입니다.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의 일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아버지’는 관객이 지닌 인식의 틀을 확장시킵니다.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치매에 걸린다는 것에 대해 말이죠. 눈물샘을 자극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아니, 그래서 더 좋습니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방향을 잃은 아버지 역은 70대 노배우 박근형 씨가 맡았습니다. 배우 한명을 만드는 데 5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며 자신은 이제 겨우 70대일뿐이라고 말하는 이 노배우는 변덕스러운 아버지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 표현해냅니다.

“그런 느낌이… 나의 모든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한 잎 한 잎. 가지들도! 그리고 바람…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독백을 마친 뒤 입을 벌린 채 의자에 기대 잠드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봅니다.

물론 모두가 치매에 걸리는 건 아니겠죠. 그럼에도 분명한 건,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이유로 다른 사람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년이 오면 우리는 언제나 당연한 것이었던 우리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새삼스레 지켜내기 위해 또 무너져가는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고독한 투쟁을 시작해야 할 거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고령화 시대, 우리가 처한 운명입니다.      

(사진=연극 '아버지', 제공=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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