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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닭대가리로 불렸죠"…'사장님 몸종' 운전기사의 고백

[人터뷰+] "닭대가리로 불렸죠"…'사장님 몸종' 운전기사의 고백
지난 4월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현대BNG스틸 정일선 사장을 고발했습니다. 정일선 사장은 운전기사에게 A4용지 140장 분량의 '갑질 매뉴얼'을 따르도록 해 논란이 됐습니다. 3년 동안 운전기사를 12번이나 갈아치운 정일선 사장은 어제(27일)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됐습니다.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갑질 매뉴얼’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혐의에는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위험한 지시와 함께 폭행·폭언을 일삼았던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과 경비원을 폭행했던 MPK그룹 정우현 회장. 재벌가의 갑질 논란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SBS 취재진은 정일선 사장의 전(前) 수행기사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 기자: ‘갑질 매뉴얼’에 운전 이외에도 지켜야 할 것들이 많나요?

▶ 전(前)수행기사:
네, 차 안에 신문을 펴두거나 서류가방을 두는 것도 방법이 정해져 있어요. 운전 이외에 모닝콜이나 세탁 같은 것도 운전기사들의 임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장님을 깨우는 일은 가족이나 사모님이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모닝콜 지시를 하셨으니 따르는 거죠. 모닝콜은 받을 때까지 하라고 돼 있지만 조심스러워요. 사모님이 일어나시기 전에는 집안에서 소리를 낼 수도 없어요. 일어나셨어도 아침에 얼굴을 뵙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사항이고요. 사장님의 운동복 같은 세탁물은 세탁소에 맡겨서 1시간 이내에 찾아올 상황이 안되면 직접 초벌세탁을 해야 해요.
▷ 기자: 교통 법규를 어기라는 지시도 있다고요?

▶ 전(前)수행기사:
빨리 가자는 말씀이 있는 날에는 신호나 단속 카메라, 버스 전용 차로를 무시해도 된다는 내용이 매뉴얼에 있어요. 예를 들면 공항에 가야 하는 날은 비행기 일정에 따라 도착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하잖아요. 그런데 출발이 늦어졌으면 웬만한 과속 단속 카메라는 그냥 무시하라는 거죠. 벌금은 회사에서 비용처리 할 테니 시간 엄수를 우선으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복잡한 경로일 때는 불법 유턴을 하기도 해요. 특정 경로 진입이 기존보다 복잡해졌는데, 그걸 따르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불법 유턴을 하라는 내용도 매뉴얼에 담겨 있어요. 지역별로 그런 내용이 정리되어 있죠.

▷ 기자: 경위서도 작성해야 했다고요?

▶ 전(前)수행기사:
운전기사라는 직종이 장시간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하니까 피곤함이 커요. 그래서 매뉴얼을 모두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죠. 매뉴얼 내용도 방대하니까 최대한 지키고 싶어도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거죠. 아마 사장님이 취미로 하시는 배드민턴에 관련된 부분만 30장이 넘을 거에요. 이렇게 지키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면 경위서를 작성해야 해요. 사소한 부분이라도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당연히 경위서 작성의 사유가 되는 거죠.

▷ 기자: 폭언을 일삼았다는 것은 사실인가요?

▶ 전(前)수행기사:
그런 상황이 좀 있었죠. 사장님이 원하는 걸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저희도 사람이다 보니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욕을 먹는 거죠. 제가 말 실수를 하면 “너 그거 말 잘했다.”라는 식으로 비꼬시거나 인격적으로 공격하실 때도 있어요. ‘닭대가리’라고 부르시면서 제 실수를 비난하시는 거죠. 저는 그냥 참으려고 해요. 군대가면 군대 용어가 있는 것처럼 그냥 외국어라고 생각하고 “예.” 하고 넘기면 속 편하더라고요.
▷ 기자: 다른 기사 분들도 이런 폭언을 참는다고요?

▶ 전(前)수행기사:
그렇죠. 그나마 저희가 하는 일은 급여 조건이 좋은 편이라 다들 참으려고 해요. 그런데 쉽지 않죠. 다들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치니까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요. 하루 이틀 만에 나가는 사람도 많고, 오래 버티면 3~4개월인 거 같아요. 3년간 12명이 나갔다고 기사에 나왔던데 글쎄요, 제가 알기론 훨씬 많거든요.

▷ 기자: 주 56시간 이상 일한다고요?

▶ 전(前)수행기사:
근무시간이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계속되는 날도 있어요. 다음날 아침에 바로 사장님의 골프일정이 있는 날이면 오전 6시에 바로 또 나가야죠. 하루 서너 시간만 자는 날도 굉장히 많아요. 운전할 때 지킬 것도 많고, 운전 이외에도 할 일이 있는데 잠까지 못 자니까 너무 힘든 거죠. 전화기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자고 거의 24시간 대기를 하고 있어요.

▷ 기자: 정일선 사장이 직접 사과를 한 적은 있나요?

▶ 전(前)수행기사:
솔직히 전화로는 사과를 돌렸어요. 그런데 이 전화가 녹음 중이라는 게 티가 나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기사는 지금 바빠서 전화를 못 받겠다고 하는데도 회사측 할 말만 끝까지 하고 끊었대요. 회사 입장에서는 녹음을 했으니 사과했다는 증명이 된 거죠. 처음에는 운전기사들한테 사과 받으러 회사로 오라고 했거든요. 결국 홈페이지에 사과문만 달랑 올리고 보여주기 식 편지 하나씩 보내고 그게 다였어요. 저희도 각자의 일이 있는데, 사과를 할 사람이 오는 게 아니라 받고 싶으면 오라는 식이니까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보기 힘들죠. 당장 발생한 문제만 무마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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