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플러스] 여성 대통령 시대의 '여성 혐오'

이렇게 양성평등에 관한 기사가 나가면 댓글이 유난히 많이 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입에 담기 어려운 비속어를 써 가며 여성을 비하하거나 여성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표출하는 공격적인 댓글들이 눈에 띄는데요, 꼭 가시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여성 혐오 범죄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성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여성 혐오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개개인이 아니라 여성에 방점을 두고 판단하는 잘못된 인식은 정치의 영역에서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경원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지난 3월, 이경원 기자는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공원에 계시던 어르신들에게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물었는데요, 박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았던 확실한 대통령 지지자들조차도 일부 특이한 화법을 구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열심히 한다.", "잘한다."는 의견을 말하면서도 "비록 여성이지만" 이라는 사족을 달았던 겁니다. 얼마 전에는 한 여성 국회의원과 식사를 하다가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새누리당 내 지역구 여성 의원은 총 6명인데, 이 중 세 명은 여성 우선 추천으로 공천을 받았고 이런 혜택 없이 당선된 여성 의원은 딱 3명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이 그만큼 남성 중심적이란 방증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가 참 힘들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말입니다.

이 같은 현실은 여성이 정치권, 즉 권력의 세계로 편입하는 것에 대한 남녀 모두의 인색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넓은 개념에서는 여성 혐오의 관점에서 풀어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호주의 사회학자 마이클 플러드에 따르면 여성 혐오는 가부장제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화적 현상을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 여성 혐오는 단지 생물학적 차이로 여성과 남성 사이에 뚜렷한 선을 긋고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로 도식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은 물론, 여성이 여성 스스로에게 가하는 성형 수술 열풍이나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걸핏하면 TV에 나오는 고부 갈등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돌고 도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일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생각하고 앞차가 운전을 못 하면 어김없이 여자일 거라고 단정 짓는 것 또한 우리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여성 혐오가 내재된 인식이자 가치관입니다.

이 기자는 정치부 기자로서 정파적 권력에는 민첩하게 훈육되고 있었지만, 정치 싸움을 중계하는 데 힘을 빼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상 속 여성의 권력 문제는 놓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경원 기자/SBS 정치부 : 저는 여당을 출입하면서 정치의 최전선에 있는 기자인데, 지금까지 공천 취재를 하고 총선 취재를 하면서 '친박이다 비박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정말 열심히 취재했지만, 실제로 과연 여성 의원들은 과연 얼마나 진출했느냐, 또 여성 의원들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느냐, 이런 문제에 대해선 정말 둔감했던 것 같습니다.]

검찰은 강남역 살인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의자의 살해 동기가 여성 혐오 때문은 아니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건 발생 이틀 전 한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가 자신의 신발에 떨어져서 생긴 분노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지만 만약 그때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 게 남성이었어도 똑같이 무자비한 살해가 일어났을까요?

이런 흡연 여성에 대한 괘씸함도 본질적으로는 여성 정치인에 대해 칭찬하면서 "비록 여자지만"이란 단서가 튀어나오는 습관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쩌면 여성 혐오의 정의를 애써 뭉개며 세상을 너무 편협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취재파일] 여성 대통령 시대의 '여성 혐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