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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살찐 고양이의 살을 들어내자"


지난달 28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법안 하나를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으로 불리는 최고임금법안으로 정의당 의원 전원과 무소속 김종훈 의원, 더불어민주당 윤관석·윤후덕·이찬열 의원이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살찐 고양이'는 서양에서 '탐욕스러운 기업가' 등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법안의 내용은 법안 이름에서 추정할 수 있듯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것입니다. 기업의 임원 및 임직원의 임금 상한선을 최저임금의 30배로 하자는 것이 법안의 골자입니다. 30배를 초과하는 임금을 수수한 법인과 개인에게는 부담금 및 과징금을 부과하고, 여기서 거둬진 수입 등으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저소등측 등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습니다.

심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2014년 기준으로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의 경영자의 보수는 일반직원의 35배, 최저임금의 무려 180배"라며, 해당 법안이 "국민경제의 균형성장,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 경제력 남용방지를 규정한 헌법 119조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법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회의원과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는 최저임금의 5배, 공공기관 임원은 최저임금의 10배가 넘지 않도록 법안을 개정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현재 30대 기업 등기 임원의 평균 최고연봉은 30억 원 수준입니다. 최고임금법이 시행된다면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 6,03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최고임금은 4억 5천만 원 선으로 제한됩니다. 이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능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자본주의 원리에 반하고, 우수한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민간 기업의 경영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외에 비슷한 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2012년 공기업의 연봉 최고액이 해당 기업 최저 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법제화했습니다. 스위스는 지난 2013년 국민투표에서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이사회가 아닌 주주들이 결정하도록 하고, 퇴직한 뒤 거액의 특별 보너스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68%의 찬성으로 가결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살찐 고양이' 모습을 한 기업가들이 있었습니다. 스위스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지기 전, 한 금융회사 임원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수십 억 원의 손실을 내고 해고 됐는데, 퇴직금으로 수백 억 원을 받아갔습니다. 내년부터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해당 기업 일반 직원 연봉 중간값의 몇 배인지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한 미국에서는 방만한 경영으로 천문학적인 구제금융를 받은 금융사 임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가 경제를 위해 노동자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선 산업 부실을 키운 산업은행의 홍기택 전 회장 등은 퇴직하면서 수억 원의 성과급을 받아갔습니다. 한진해운 최은영 전 회장은 회사가 1조 원 대의 적자를 보는 동안 보수와 퇴직금으로 90여 억 원을 받아가 문제가 됐고,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으면서도 수백 억 원의 연봉을 받아간 그룹 총수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살찐 고양이법'이 발의된 배경입니다. 

살찐고양이법을 두고 재계에선 "시장경제에 반하는 법"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분명 논란이 있는 법이긴 하지만, 이 법을 반대하는 쪽에서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바람직한 시장경제입니다. 그간 기업과 정부에서 말하는 시장경제에서 다수의 노력으로 이뤄진 성장의 혜택이 공평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했습니다. '일 한 만큼 벌 수 있는 사회'가 시장경제입니다. 하지만 왜곡된 구조 속에서 부의 불평등은 심화됐습니다. 근로자들은 일 한 만큼 받지 못했고, 그 사이 기업들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부의 축적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결국 시장질서의 건강성은 훼손됐습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서 이번 법안이 나온 겁니다. 제도를 통해 소득 간극을 줄이고, 경제주체간 조화로운 소득 분배를 해보자는 겁니다. 한마디로 헌법에 명시된  '균형있는 국민경제 성장'을 실현시켜보자는 목적입니다. 

현재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법안 발의의 최소 요건인 국회의원 10명의 서명을 겨우 받았다는 점은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법안의 통과 가능성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선 양극화와 소득격차 확대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살찐 고양이법'이 상징하는 우리 현실, 법안 발의 배경과 목적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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