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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령 운전자 '운전 졸업' 언제 해야 하나?

[취재파일] 고령 운전자 '운전 졸업' 언제 해야 하나?
요즘 택시를 타다 보면 운전기사가 상당히 고령인 경우가 많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얼마 전 탄 택시를 탔을 때 비교적 젊은 기사(50대 중반 쯤)에게도 이런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이어 나오는 기사의 말은 대략 이랬습니다.

"그 분들 멀리 가려고 하지도 않고 동네만 돌려고 하죠. 비 오면 안 나오고, 눈 와도 안 나오고...그러니까 택시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와요. 80대 이상 노인도 많아요. 손님들은 불안해 하죠. 냄새 난다고도 하고...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요. 개인 택시는 그게 자기 재산인데요. 놀면 뭐하냐고 나오는 사람도 많고..."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지난해 기준 23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 가운데 택시만 살펴보면 고령화가 더 심합니다. 전국 28만 명 택시 기사 가운데 45%인 12만 명이 60대 이상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은 13%인데, 운전자의 고령화 특히 택시 업계의 고령화 속도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고령 운전의 사고 위험성입니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2011년 1만 3천 6백 여 건에서 지난해는 2만 3천 여 건으로 4년 새 70% 이상 늘었습니다. 인구 고령화 속도보다 고령 운전자 증가 속도가, 또 그 속도보다 고령 운전자 사고 증가폭이 훨씬 가파르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고 피해 규모가 커서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5명 가운데 1명은 고령 운전 사고에서 발생했습니다. 고령 운전의 특징은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사고 피해가 클까요. 운전자 본인도 모르는 새 사고가 나기 때문 아닐까요.

● 고령 운전자의 가장 큰 약점 '시력'

우선 신체 나이, 특히 시력의 차이는 속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입니다. 운행 정보의 90%를 눈에서 얻는데 말이죠. 삼성교통문화안전연구소 김상옥 박사의 말입니다.

"연세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시야각이 감소합니다. 보통 120도 정도인 시야각이 고령 운전자의 경우엔 60도까지 줄어듭니다. 고속 주행을 하면 주변 상황을 더 살필 수 없게 되니까 나도 모르게 서서히 주행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안보이다 보니까 갑자기 옆에서 끼어드는 차를 못 보게 되는 거죠"

● 교차로에서 판단력은?

취재팀은 교통안전공단의 시뮬레이션 장비를 이용해 20대와 80대 운전자를 반응 속도를 비교해보기로 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장애물을 피하고 신호를 지키면서 특정 숫자가 들리면 버튼을 누르도록 하는 이른바 '복합기능 검사'를 실시했는데요. 돌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교차로에서 얼마만큼 대처할 수 있는지를 측정해보는 실험이었습니다.

20대 운전자는 휴대전화의 메시지를 체크해 가면서도 주어진 시간보다 빨리 주행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80대 운전자는 연이은 돌발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사고도 냈습니다. 겨우 주어진 시간 내에 코스를 다 돌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먼저 20대 운전자는 집중을 하지 않은 탓인지 5개 등급 가운데 3등급을 받았습니다. 이에 비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던  80대 운전자는 제일 낮은 5등급을 받았습니다. 실험을 지도했던 교통안전공단 김철 차장은 어느 운전자든 막상 검사를 받아봐야 자신의 신체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더군요.

"아무리 고령자라도 자기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신체 기능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가 이런 검사를 받고 나서야 '아 내가 조금 반응 차이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 보고 나서 판단하는데 걸리는 시간…인지 반응 속도도 저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몸의 인지 반응 속도도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도 고령 운전자 사고가 잇따르면서 이에 대한 캠페인성 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 NHK 방송에서 보도한 내용입니다.

충돌 사고가 나기 전 20대 운전자는 평균 1.9초 전에 상대방 차를 인지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70대 운전자는 이 시간이 불과 1.2초에 불과했습니다. 0.7 초 차이이지만 이 시간은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의 경우에 12m 의 거리 차이를 내줍니다. 즉 20대는 충돌 전 12m 정도의 거리 여유가 더 있다는 말입니다.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이수범 교수의 말입니다.

"인지 반응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면 실제로 행동을 취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거죠. 그만큼 위험한 상황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잖아요"

● "운전 경력이 몇 년인데…"

고령 운전자 사고를 분석해 보면 운전 경력 15년 이상의 이른바 '베테랑' 기사들의 사고율이 72.4%를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이유가 왜 유독 높을까...취재 중 만난 몇몇 고령 택시 기사들의 실제 인터뷰 내용입니다. 

-"사고 내는 사람은 젊은 사람이 더 많아. 고령자는 조심성 있게 안전하게 운전하는 거야. 내가 28년 무사고인데..."

-"대처 능력은 젊을 때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그 젊은이들 못지 않게 운전은 베테랑이야. 운전 만큼은 잘해요"

이처럼 대부분 고령 운전자들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자신감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쉽사리 운전대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숭실사이버대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인 이호선 교수의 진단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내 몸에 변화가 있고 실질적인 차이를 느끼게 된다 하더라도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인정 욕구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게 사람이죠. 그런데 그게 노년이 되면 더 그런 욕구가 강력해지거든요.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부분이 왕성하길 바라는데 실제로는 퇴색하고 줄어들고 감퇴하기 때문이죠"

● 고령자에게 운전대는?

물론 일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령 직업 운전기사도 있겠지만 대부분 운전이 주요 생계 수단일 겁니다. 늙으면 운전하는 게 위험하다고 그들에게 운전대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지원책이 없는 현실에선 더욱 더 그럴 겁니다. 또 도농 복합 지역이나 시골 같은 곳에선 자동차가 중요한 이동 수단입니다.

대중교통 수단이 촘촘하지 못한 곳에선 노인들의 '이동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죠. 역시 운전을 하지 않아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가 없다면...운전대를 놓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 '운전 졸업하세요'…일부 지자체의 조심스런 시도

그런데 일부 지자체에선 고령 운전자를 보호하며 운전대를 놓도록 유도하는 시도를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이천경찰서는 지난 5월부터 '실버마크'를 만들어 노인 운전자들에게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마크를 차 뒤편에 붙이면 '운전자가 고령자'라는 사실을 다른 차들이 알고 스스로 조심 운전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벌써 7백 장을 나눠줬는데 동네 어르신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천경찰서는 또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운전면허 반납 제도도 추진할 예정입니다. 대신 반납한 어르신에겐 콜택시 등 대중교통 비용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지자체와 함께 협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령 운전자의 안전 문제, 생계 문제, 이동권 문제 해결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자존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전대를 놓았을 때의 상실감 극복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서 숭실사이버대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인 이호선 교수의 조언은 참고해 볼만 합니다.

"운전대를 놓는다는 걸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자체에서 명예 운전사 자격증을 주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정말 그동안 명예롭게 운전을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 면허증을 반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격려해주는 거죠. 사실 면허 반납 같은 것은 강제해서는 안됩니다. 어르신 세대가 나서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렇게 한다는 식으로 캠페인을 벌이도록 하는 게 되게 중요해서. 어르신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모범을 보이는 과정을 통해 어르신들이 공경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어르신들 스스로도 납득이 될 수 있거든요"

노인 운전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일(토) 오전 7시40분~ SBS뉴스토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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