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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박유천 성폭행 피소 그리고 피의자 신분 첫 경찰 출석

[취재파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에 붙어 있었던 부제다. 본래 한 희곡의 문구로 알려진 이 말은, 건설회사, 호텔,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 내로라하는 기업의 상속자들인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 돼 펼쳐지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자주 회자됐다.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 ‘상속자’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운영해 가며 무언가를 지키려 하고, 또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그 문구 하나에서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서일 것이다. 

이 ‘왕관’이 재력뿐일까. 흔히 공인의 범주에 포함되는 연예인들이 누리는 인기도 그 ‘왕관’ 중 하나다. 연예인들의 부도덕한 혹은 불법적인 행동이 비난을 받는 건, 그들이 ‘왕관’은 누리면서도 그 ‘무게’는 감내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근 잇따라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 등장한 연예인들 가운데 가장 많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비난을 받은 사람은 가수이자 배우인 박유천 씨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박 씨는 처음으로 고소를 당했다. 이후 3건의 고소장이 더 접수되면서 박 씨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커졌다.

● 사회복무요원이 유흥주점에? 근무 태도 논란까지
첫 고소장 접수 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팬들을 포함한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고소를 한 여성들의 인터뷰, 해당 유흥주점들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수이자 배우로서 한류스타의 입지를 다진 박 씨였고, 혐의 내용이 ‘성추문’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또 현재 박 씨의 신분이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점에서 그 비난의 강도는 더 컸다.

성폭행 의혹, 그 과정에서 소속사 측과 고소를 한 여성 측 사이의 합의 시도와 관련된 의혹, 나아가 성매매 의혹까지 숱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고, 경찰은 관계된 이들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함과 동시에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흥주점 4곳을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다.

구체적인 혐의들의 진위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지만, 유흥주점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박 씨가 유흥주점에 출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확인되자 그 하나만으로도 박 씨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일을 하다 퇴근한 뒤 유흥주점에 간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어떻게 공인인 연예인이 군 복무를 대체해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와중에 유흥주점에 가 이런 물의를 빚느냐”는 비판이었다.

곧바로 근무 태도 논란도 불거졌다. 박 씨의 지난 10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모두 8개월 동안의 근태현황을 살펴보면, 박 씨는 연가 15일, 병가 15.5일, 조퇴 2번을 사용했다. 우선 연가의 경우, 병역법 시행령 59조에 따라 복무기간을 통틀어 모두 31일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병역법 시행규칙 제39조의 2에 따라 소집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는 15일까지를 사용 가능하다.

박 씨는 지난 8월 말에 입대했고 한 달 여 뒤 강남구청에 배치를 받았기 때문에, 아직 소집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다. 즉, 소집일로부터 1년 내인 현재 쓸 수 있는 연가 15일을 이미 다 썼다는 얘기다. 병가의 경우에는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규정에 따라 진단서나 진료확인서, 처방전 등을 제출해야 하고 공무 외의 질병이나 부상으로 이 기간이 30일을 넘을 경우 증빙서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또 30일을 넘기며 복무가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병역복무 변경면제 신청서를 쓴다. 즉, 24개월의 기간 동안 병가 30일이 하나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5월 31일 기준으로 박 씨는 사용할 수 있는 병가의 절반이 조금 넘는 15.5일의 병가를 사용했다.

연가와 병가 모두 복무 기간이 채 절반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상당량의 휴가를 사용한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휴가일수를 초과해 사용한 것이 아니고, 정당한 기준과 원칙에 근거해 휴가를 사용하게 한 것이며, 또 언제 휴가를 사용할 지는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박 씨가 근무하고 있는 강남구청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근무 일수에 비해 지나치게 휴가를 많이 사용했다며 근무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비난도 제기됐다.

● 20일째 묵묵부답…퇴근 뒤 경찰서 첫 출석 예정
처방전이나 진단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 병가와 달리 연가는 개인 사정이 있을 때 자유롭게 낼 수 있다. 이 연가를 모두 소진한 바람에, 박 씨는 논란이 불거진 뒤 몰려드는 취재진들을 뚫고 계속해서 강남구청으로 출근을 해야 하고 또 하고 있다. 논란이 처음 불거진 20일 전부터 박 씨 측의 대응은 한결같았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낀 채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취재진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출근과 퇴근을 반복한 것이다.

소속사 측은 박 씨를 대신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에 연루되어 죄송하다며,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정당하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소한의 사실관계가 확인된 1차 고소 건에 대해서는 공갈과 무고 혐의로 고소를 한 여성 측을 맞고소했다. 더 이상의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고, 경찰이 비공개로 피해자와 참고인 등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언론이 박 씨 사건을 매일 경쟁적으로 보도하던 양상은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박 씨의 출퇴근길엔 취재진들이 자리하고 있다. 박 씨가 스스로 생각하는 박 씨의 입장을 직접 들으려는 이유에서다.

이런 와중에 첫 고소장이 접수된 지 20일 만인 오늘 박 씨가 공식적으로 경찰에 출석하게 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폭행 혐의 피의자 신분이다. 당초 오전 10시로 잡혀 있었던 경찰 출석 시간은 박 씨 측 요청으로 오후 6시 반으로 미뤄졌다. 경찰은 박 씨 측이 “근무지 이탈의 우려가 있어 사실상 출석에 어려움이 있다”며, 출석을 퇴근 이후인 오후 6시 반에 하겠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사회복무요원인 박 씨의 신분상 경찰 조사를 받으러 나올 때 어느 시점(근무 시간, 퇴근 뒤, 혹은 주말 등)에 나올 것인지를 두고 취재진들 사이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출석 시간이 박 씨 측 요청으로 바뀌자, 어떤 경위로 시간이 바뀌게 된 것인지를 두고 또 의문이 제기됐다.

박 씨 소속사 측은 근무 태만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낮 시간에 출석을 하게 될 경우에는 강남구청에 공문을 보내는 등 협조 요청을 해 달라고 변호인을 통해 이전부터 경찰에 요구했었다고 밝혔다. 오전 10시로 소환 시간이 정해졌다는 건 소속사 역시 경찰의 발표 내용을 전한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으며, 변호인도 경찰에게서 그렇게 전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경찰은 변호인과 조율을 거쳐 출석 시점을 정한 것이며, 피의자의 상황에 따른 협조 요청은 경찰이 아니라 피의자의 변호인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고 선을 그었다. 박 씨나 경찰로부터 사전에 어떤 상의나 협조 요청도 받지 못한 강남구청 측은, 뒤늦게 어제 박 씨의 경찰 출석을 공가로 처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부랴부랴 병무청에 질의를 해 놓은 상태다.

병역법 시행령 제59조에 따르면 공무에 관해 국회, 법원, 검찰, 그 밖의 국가기관에 소환된 경우 공가를 사용할 수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사회복무요원 근태는 우선적으로 해당 기관, 즉 강남구청에서 관리를 하게 되며 해당 업무가 공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청장이 판단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우선 오늘 박 씨가 퇴근 뒤 출석하겠다고 입장을 바꿈에 따라 당장 오늘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앞으로 여러 차례 출석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질의에 대한 답을 내일 회신될 병무청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남구청 쪽은 밝혔다.

박 씨 측이 공가 여부를 확인받는 것을 떠나 경찰 소환 조사 일정 자체에 대해 근무하는 강남구청 측에 직접 어떤 상의나 요청도 하지 않았다는 게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박 씨 측이 오전이 아닌 오후로 시간을 바꿔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하려는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 오늘 첫 소환 조사…가볍지 않은 왕관의 무게

경찰은 우선 조사 내용이 많아 오늘은 박 씨가 피의자 신분인 성폭행 혐의 건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자정이 넘을 경우 박 씨와 변호인의 동의를 얻어 조사를 계속할 수 있지만 거부할 경우 일단 멈추고 다음 소환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오늘 출석하는 박 씨의 구강세포를 채취해, 첫 번째로 고소한 여성이 제출한 속옷에서 검출된 남성의 DNA와 대조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하지만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성관계 당시 강제성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성폭행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나 관련자들을 추가로 불러 계속해서 성폭행, 무고, 공갈 등 박 씨를 둘러싼 혐의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어찌됐든 논란은 시작됐고, 정확한 혐의 유무는 앞으로 계속될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팬들 가운데 일부는 공식적으로 박 씨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한편 또 다른 팬들은 강남구청 출퇴근길에서 여전히 박 씨를 응원하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왕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종종 사람들은 그 ‘왕관’의 대가로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높은 잣대를 적용한다.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 대중들 앞에서 충분히 소명하려는 노력을 하라는 요구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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