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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5.18항쟁④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인법…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ABOUT : 5.18민주항쟁 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표현만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5·18항쟁① 왜곡의 실체><5.18항쟁② "北 특수군개입"..교활한 왜곡>, <5.18항쟁③ 전두환과 '불의(不義)'의 고착화>에서 연속 보도했듯 극우세력의 분업으로 이뤄진 왜곡은 검증 결과 허구에 가까웠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반대 근거는 배척하는 ‘집단 극단화’를 통해 이뤄지는 왜곡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교훈적 메시지만으로는 왜곡을 막을 수 없고, 왜곡을 방치한 사이 5.18 항쟁 왜곡은 더욱 심화됐다고 분석한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에 정치권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바로 ‘5.18항쟁 왜곡 처벌법’이다.

●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 ‘5.18항쟁 부인 왜곡 처벌법’

해당 법안은 5.18항쟁을 부정할 경우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 1일 국민의당 소속 의원 전원과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17명이 각각 발의한 것으로, 두 법안 모두 5.18 특별법을 개정해 형벌 조항을 추가했다. 
형량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두 법안 모두 ‘5.18항쟁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진실을 훼손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현재는 5.18항쟁 관련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고, 수사기관에서 사실관계와 범죄성립 여부를 따지는 절차를 거친 뒤 처벌이 이뤄진다.

반면, 해당 법안은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5.18 항쟁을 부정하면 원칙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또 검찰 등 수사기관이 선제적으로 관련자를 색출하는 등 직접 수사를 가능케 했다. 기존의 5.18 왜곡 처벌이 ‘개인의 명예’를 보호 가치로 삼았다면, 해당 법안은 ‘사회와 역사적 진실’로 보호 가치를 확장시킨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부정하면 원칙적으로 처벌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유사한 법률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지는 셈이다.

●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진리논쟁은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

5.18 항쟁은 수차례 거듭 확인된 민주화 운동으로 영원히 기억돼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법조인들도 이런 점에서 역사 왜곡의 심각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신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한 법원의 판사는 “5.18 항쟁 왜곡은 처벌해야 되지만, 이를 사회적 범죄로 확장하면 ‘언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특정 사상과 역사관을 검열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특정 역사관을 처벌로 강제하는 건 국가 폭력이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모적 논쟁이 될 수 있고,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수도 있지만 진실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민주 사회에 부합된다는 논리다. 이 외에도 헌법재판소가 밝힌 “북한의 주장과 발표와 일치하기만 하면 처벌 위험성이 있다”는 ‘국가보안법 찬양 고무죄’처럼 해당 개정안도 언론 학문 예술 등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우려가 있고, 국가의 자의적 법집행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쪽도 있다.

● “성희롱도 표현의 자유??”…위험성 큰 역사왜곡 처벌해야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이 있지만, 존엄성과 미래 사회를 위해 역사왜곡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5.18항쟁 날조 등 역사 왜곡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고, 위험성이 사회에 만연해 규제 필요성이 크게 생겼다는 것이다. 오승용 전남대 연구교수는 “악의적 역사왜곡이 방치되면서 진실은 오염됐고, 심각한 수준이 됐다”며 “왜곡된 기억의 공유를 막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된다”고 말했다. 나치 학살을 경험 못한 세대들이 극단주의 사고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을 도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표현의 자유엔 ‘허위 사실로 드러난 왜곡’과 ‘사악한 견해’까진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처벌 필요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왜곡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 받아야 할 기본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항쟁 왜곡은 자정 가능한 수준도, 문화투쟁을 통해 회복될 수준도 넘어섰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표현의 자유는 최우선 가치지만, 악의적 역사 왜곡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 공공의 안녕을 훼손하는 객관적인 공안범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희롱을 비롯해 장애인 등 약자 비하 발언을 두고 표현의 자유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상대로 한 왜곡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역사왜곡과 인종 비하 등을 처벌하는 유사한 법안이 이미 마련된 바 있다. 지역, 성별, 인종, 종교·등을 근거로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을 처벌하는 '증오 표현(헤이트 스피치, hate speech) 처벌법' 또는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이 대표적으로 독일, 프랑스, 체코, 스위스,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이 관련법을 도입했다.
<5·18항쟁① 왜곡의 실체>, <5.18항쟁② "北 특수군개입"..교활한 왜곡>, <5.18항쟁③ 전두환과 '불의(不義)'의 고착화> 기사에서 연속 보도했듯 5.18항쟁 부인은 왜곡의 심화 과정을 거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성'을 가진 상황이 됐다. 이런 배경에서 5.18항쟁 부인 처벌법이라는 특단의 대책이 나왔다. 표현의 자유 논란은 있지만, 해당 법안은 5.18항쟁 왜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여러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5.18항쟁 왜곡을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으로 가지고 와서 해당 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왜곡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왜곡 주도 세력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5.18항쟁을 모른 채 왜곡을 접한 사람들이 오염된 역사를 무심코 받아들이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오승용 전남대 교수는 "5.18항쟁과 동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은 왜곡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궁극적으론 공교육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인정하고 계승해야 된다"고 밝혔다. 한국 현대사의 두 축인 '산업화와 민주화' 역사를 세대를 이어 모두 기억해야 하는데 지금의 공교육에선 민주화 운동의 의의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프랑스에선 어릴 때부터 프랑스 혁명을 배우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고교 교육까진 힘들더라도 최소 초중 교육에선 민주화 역사를 자세히 가르쳐야 역사 왜곡도 최종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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