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플러스] 만 원도 안 하는 와인…가격 거품 뺀 비결

쿠바의 술 하면 럼이 있듯이 칠레의 술 하면 와인이 떠오르죠. 올 들어 지난달까지 한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와인은 칠레산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 레드 와인이었는데요, 1병 가격이 6천9백 원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이것 외에도 판매 순위 5위까지가 모두 1만 원 미만의 제품이었는데요, 언뜻 FTA 덕분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가격 거품을 뺀 비결은 따로 있었습니다. 최우철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칠레나 EU, 호주 같은 와인 생산국들과 FTA가 발효된 뒤로 와인에 붙던 15% 관세가 사라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매가는 기대만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와인의 원가는 가장 먼저 현지 와인 농장에서 정하는 데 없어진 관세만큼 출고가를 올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또 현행 국내법상 와인은 주류 수입업자만 수입할 수 있는데, 일단 국내에 들여오는 순간 수입상이 마진을 왕창 붙여버리면 값이 내려가긴커녕 오히려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힘 있는 쪽에서 결정하면 막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소비자들도 와인의 민낯을 좀 더 보게 됐습니다. 와인의 이름만 입력하면 전 세계 소매가를 한 눈에 정리해 주는 와인서처 같은 웹사이트 덕분에 비싸고 귀한 줄 알았던 와인도 외국에선 그저 마트 식전주 코너에서 싼값에 팔리고 있단 걸 알아버린 겁니다.

뭔가 동경하는 유럽 대륙에서 온 특별한 날에 마시는 술이라는 일종의 역사 지리적 아우라도 비로소 서서히 깨졌습니다.

2010년대 들어 유통업체들도 이런 변화를 눈치챌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소비자들이 소매점 직원들부터 붙잡고 따지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대형마트들을 필두로 팔을 걷어 붙여 유통망의 우위를 바탕으로 수입상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숨겨진 진주 같은 값싼 와이너리를 찾아내 수입상 한 곳을 아예 선정한 다음 함께 직접 와인 농장을 찾아가 대량 주문으로 매출을 보장해주겠다며 가격을 내리라고 설득하는 겁니다.

[대형마트 와인 구매 담당자 : 발주 물량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미리 협의를 하는 거예요. 그들(생산자)도 현지에서 판매하는 수준의 가격을 저희한테 제안을 하는 거죠.]

저렴한 베스트셀러 와인은 이런 기획 유통 덕분에 탄생했는데요, 도매상들도 이에 가세해 지난 4월 경기도 의왕에 창고형 매장을 개장한 한 도매업체는 같은 방식으로 각 대륙의 와인 20여 종을 구매해 4천9백 원 동일가에 선보이게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와인 문화는 불필요한 소위 아우라에 짓눌린 측면이 있는데요, 이제 이렇게 값싼 기획 와인이 늘어날수록 와인 애호가나 와인 문외한이나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 [취재파일] '아우라' 사라진 와인… '1병 4,900원'은 많을수록 좋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