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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 ⑪] 올림픽을 바꾼 역발상의 천재들

[편집자 주]

오는 8월5일(현지 시간) 브라질의 세계적 미항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촌 축제’인 제31회 하계 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올림픽이어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SBS는 리우올림픽 D-50일인 오늘(16일)부터 지난 120년 동안 올림픽이 낳은 불멸의 스타, 감동의 순간, 잊지 못할 명장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각종 에피소드를 담은 특별 취재파일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특별 취재파일이 올림픽에 대한 독자의 상식과 관심을 확대시켜 리우올림픽을 2배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1회 근대올림픽은 1896년에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를 가리는 육상 남자 100m는 최고 인기 종목이었지요. 결승 출발선에는 모두 5명의 선수가 섰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선수의 자세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관중들은 그를 보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자세를 보고 다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생소한 출발자세에 ‘저게 뭐냐?’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우스꽝스런 자세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 대표로 출전한 토머스 버크였는데요. 그는 예선에서도 같은 자세로 11.8초를 기록했고, 결승에서는 12.0초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버크가 우승하자 그의 출발 방법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습니다. 육상은 물론 세계 스포츠계에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육상 100m 결승전 출발 전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두 손을 땅에 짚은 채 엉덩이를 높게 치켜들고 출발하는 이 방식을 영어로 ‘크라우칭 스타트’(Crouching Start)라고 합니다. 처음 그의 자세를 본 선수들은 버크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자 너도나도 따라 하기 시작했지요. 이후 이 자세는 운동역학적으로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점이 증명됐습니다.
 
사실 토머스 버크가 ‘크라우칭 스타트’를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호주의 육상 선수인 바비 맥도널드가 캥거루가 뛰는 모습에서 착안해 가장 먼저 이 방법으로 달렸다는 설도 있고, 예일대학의 선수 셰릴이 경기 도중 넘어졌다가 다시 뛰는 순간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가 ‘크라우칭 스타트’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크라우칭 스타트’를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표본으로 만든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크라우칭 스타트’를 사용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토머스 버크입니다. 단거리 종목 출발 자세의 새 모델이 된 것이지요. 그럼 토머스 버크는 어쩌다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일까요?
 
보스턴 대학 출신인 그는 육상을 시작할 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그도 다른 선수처럼 선 채로 출발하는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두 손을 땅에 짚고 엉덩이를 치켜드는 새로운 출발법이 등장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는 반신반의했지만 모험심이 강한 청년이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크라우칭 스타트’ 연습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 어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이 됐고 기록이 크게 단축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무도 그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21살의 나이로 철저하게 무명이었던 버크는 100m뿐만 아니라 400m에서도 우승해 아테네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라는 사실도 찬란한 위업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단거리 출발의 새 기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올림픽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수영에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1930년 대 초반 당시 수영 선수들은 턴을 하는 구간에 오면 속도를 줄이지 못한 상태에서 손으로 벽을 짚고 턴을 했는데요, 턴을 하고 나면 가속도가 붙지 못하다 보니, 당시 100야드 종목에서 1분은 마의 장벽이었습니다.
 
이 때 미국의 텍스 로버트슨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손이 아닌 발로 턴을 하면 가속도가 오히려 붙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렇게 고안한 기술이 바로 ‘플립 턴’(Flip Turn)입니다. ‘플립 턴’은 턴 지점 1m 정도를 남겨두고 몸을 뒤집어서 발로 터치하는 기술인데요, 텍스 로버트슨은 ‘플립 턴’을 수제자인 아돌프 키에프에게 가르쳤습니다.
플립턴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플립 턴’에 적응한 키에프는 ‘플립 턴’을 하면서 가속도를 살릴 수 있게 되었고, 기록이 진일보하게 됐습니다. 16살 때인 1935년 배영 100야드, 미터로 치면 91.44m 종목에서 58초5를 기록하면서 ‘마의 1분 벽’을 깼습니다.
 
이듬해에는 베를린올림픽에서도 당당히 금메달을 따내며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물론 키에프가 ‘플립 턴’을 처음 선보였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떻습니까? 텍스 로버트슨의 발상은 수영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이제는 하나의 '상식'이 됐습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미국의 남자 높이뛰기 선수가 역발상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오랫동안 높이뛰기 선수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Bar)를 넘었습니다. 가장 널리 유행했던 방법은 ‘가위뛰기’와 ‘벨리 롤 오버’였습니다. 가위뛰기는 양 다리를 바(Bar)에 걸터타듯이 뛰어넘는 자세를 말합니다. ‘벨리 롤오버’(Belly roll over)는 얼굴을 땅으로 향한 뒤 다리를 솟구쳐 뛰어오릅니다. 이렇게 하면 배(Belly)가 바(Bar) 위를 구르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벨리 롤 오버’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21세의 미국 청년 딕 포스베리가 바(Bar)를 누워서 넘는 것 같은 이른바 ‘배면뛰기’ 방법을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도움닫기를 한 뒤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해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바(Bar)를 넘은 것입니다. 그는 이 대회에서 2m24㎝의 기록으로 우승했고, 이 점프는 그의 이름을 따 ‘포스베리 플롭’(Fosbury Flop)으로 불렸습니다.
미국 딕 포스베리가 높이뛰기 경기에서 배면뛰기를 선보이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그가 새로운 점프를 시도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가위뛰기’와 ‘벨리 롤 오버’ 두 가지 방법으로는 기록 향상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코치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런 점프로는 도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갈림길에 선 포스베리는 잠시 고민했지만 새로운 모험을 걸기로 결심하고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록은 향상됐고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며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의 ‘배면뛰기’는 하나의 표준이 됐습니다. 인체 역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기술이라는 점도 과학적으로 증명됐습니다. 이제 ‘벨리 롤 오버’ 자세로 높이뛰기를 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처럼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온 포스베리는 스포츠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됩니다.
 
어느 한 가지 방법으로 살다보면 곤경에 처하거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생깁니다. 지금까지 해온 방법으로는 도저히 상황 반전이 불가능할 때가 있지요.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게 역발상입니다. 역발상은 유쾌한 반역입니다. 길이 없어 보일 때, 또는 아무도 나에게 길을 가르쳐주지 않을 때 내가 새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속된 말로 ‘미친 놈’ 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고,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머지않아 모두들 그 ‘미친 놈’을 따라합니다. 이것이 역발상의 위대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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