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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찰의 '부비트랩' 롯데의 '호시우보'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 특집 2탄

[취재파일] 검찰의 '부비트랩' 롯데의 '호시우보'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는 꽤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2013년부터 거슬러 올라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찰 특수부의 내사는 여러차례 중단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였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이 대검 미니 중수부와 마치 경쟁을 하듯 수사TF를 구성해 오랫동안 롯데그룹의 광범위한 내사를 벌여왔습니다. 그리고 시작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입니다.

1차 압수수색에 투입된 수사팀만 230여명. 환부를 도려내는 국소수사가 아닌 롯데그룹의 먼지를 통째로 털어버리겠다는 수준입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검찰 수사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롯데그룹이 가장 방심한 틈을 이용해 가장 압도적인 물량을 동원해 기선제압에 성공했습니다.

● 검찰의 성동격서…'히어로'는 정운호

다음달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합니다. 맥아더 장군의 결단력으로 한국전쟁의 중대한 변곡점을 마련했던 역사적인 전투입니다.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사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기만전술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두고 우리는 주목하지 않았던 또 다른 상륙작전이 있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입니다. 경북 영천에 학도병들을 태운 보트가 상륙해 북한군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맥아더 장군이 '무주공산'이 된 인천으로 진격해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검찰은 오랫동안 롯데를 내사해왔지만 공개수사로 전환할 분기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여러차례 기각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답답한 상황을 풀어준 건 의외의 계기였습니다. 바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입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정운호 전 대표로 인해 여럿이 피해를 봤다는 얘기들이 회자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롯데그룹을 최대 피해자로 지목하고 싶습니다.

정 전 대표가 최유정 변호사와 몸싸움만 벌이지 않았더라도 검찰이 법조로비 수사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지만,  파문이 커지면서 정 전 대표는 해외원정도박 혐의 이외에 갖가지 로비 의혹을 검찰에 실토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 와중에 불거져 나온게 바로 롯데면세점 로비 의혹입니다.

롯데면세점 입점을 하기 위해서 정 전 대표가 브로커 한 모씨를 통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로비를 했다는게 의혹의 핵심입니다. 롯데면세점은 호텔롯데 산하의 사업본부입니다. 호텔롯데가 어딥니까?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불리는 롯데의 '심장'입니다. 정운호 전 대표의 입점 로비 의혹을 수사하려면 롯데의 심장을 압수수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반전이 여기 있습니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롯데그룹은 신영자 이사장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관리하는 인사가 아니다. 입점로비 의혹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고 벽을 쳤습니다. 검찰이 호텔롯데를 압수수색할 당시에도 롯데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롯데그룹의 심장은 검찰에게 그렇게 뚫렸습니다.

들었던 것과 본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롯데면세점 수사를 계기로 검찰은 롯데그룹의 성지를 정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룹 관계자들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정책본부의 존재가 명확해 진 것도 사실 이때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검찰은 롯데그룹을 기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전광석화처럼 압수수색이 시작됐습니다. 롯데그룹 역사에서 결코 잊지 못할 하루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 장수가 떠난 날…검찰의 기습, 롯데의 '사분오열'

무서운 조직은 현명한 장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지 않아도 장수가 있다는 존재만으로 조직은 관성적으로 중간 이상의 성과는 낼수 있습니다. 롯데수사를 계기로 롯데그룹이 규모가 큰 '구멍가게'였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기업은 대기업입니다. 총수의 존재감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신동빈 회장이 해외로 출국한 당일날 진행됐습니다. 총수의 지시와 결정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업문화의 특성상 롯데그룹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롯데그룹의 입장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부재가 뼈아팠던 대목입니다.

개인비리가 아닌 기업범죄입니다.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회사에 우환이 닥쳤지만 윗선의 지시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간 개인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기습에 롯데라는 법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반나절 동안 그렇게 눈뜨고 당했습니다.

그룹의 브레인이라는 정책본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격을 당할때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의 압수수색은 너무나 광범위했기 때문에 롯데그룹 내부에서도 핵심 혐의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검찰은 1차 압수수색 당시 트럭 10대 분량의 압수물을 확보했습니다. 주로 임원 회의록과 보고내용, 계열사 재무관련 자료들이 가득 담겼습니다. 검찰이 압수물 확보에 이례적으로 만족해했다는 후문입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수많은 금은보화를 싣고 금의환향하는 장수들처럼 말입니다.
● 무너진 호텔롯데 상장의 꿈…롯데그룹 멘붕의 시작

6월은 앞서 언급했던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미 여의도 증권가의 저명한 펀드매니저들을 불러놓고 신동빈 회장은 상장과 기업공개 계획, 공모가 주당 가격을 야심차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상장되면 공모주 한 주의 가격은 최소 10만원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상장과 함께 호텔롯데는 '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현금을 움켜쥘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호텔롯데가 상장한다는 건 신동빈 회장의 지배구조를 공고하게 만든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호텔롯데의 중심은 신동빈 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신동빈호의 야심찬 계획에 소금을 뿌린 셈이 됐습니다. 현금 5조원이 증발한 셈이고 상장 계획도 연기됐습니다. 신동빈 회장은 국민과의 약속이니까 올해 안에 다시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검찰 수사중인 기업이 공모주를 제값에 팔긴 어려워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총을 앞두고 칼 뽑은 검찰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신동빈 회장의 형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은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6월은 일본 롯데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 해임 의결권을 상정해 판을 뒤흔들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동주의 쿠데타(?)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신동빈 회장 측에게는 섬뜻한 6월이었습니다. 사실 검찰 수사보다 주주총회가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검찰 수사가 주총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대단히 예민하게 사태를 예의주시해왔다고 합니다. 경영권 유지는 성공했지만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검찰 수사로 신동빈 회장의 리더십은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롯데그룹 수사 착수 시점을 의도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의 관점에서 봤을때 득이 많았던 최적의 타이밍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둑황제 이세돌을 무너뜨린 '알파고'처럼 검찰은 압수수색 한 번으로 롯데그룹을 궁지에 몰았습니다.

아직 검찰은 독수(毒手)를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타이밍이라는 검찰의 부비트랩이 롯데그룹을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롯데그룹은 마냥 당하고만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호시우보(虎視牛步) 전략인 것 같습니다만,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시간은 롯데그룹의 편인 것 같습니다.

▶ [취재파일] 롯데 앞에 선 검찰…포정해우의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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