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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롯데 앞에 선 검찰…'포정해우'의 심정으로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 특집 1탄

[취재파일] 롯데 앞에 선 검찰…'포정해우'의 심정으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진 게 보름전 일입니다. 검찰의 상대는 재계서열 5위의 롯데그룹입니다. 덩치 큰 회사다보니 압수물의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트럭 10대 분량이라고 하죠. 압수물 분석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기업수사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격입니다. 신동빈 회장은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일단은 몸을 한껏 낮췄습니다. 롯데는 그래서 한동안 미동도 없었습니다. 검찰 수사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입니다.

왜 이시점에서 하필 롯데그룹 수사냐는 질문에는 무슨 얘길해도 정답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롯데그룹 수사를 이끌어가는 검찰의 전략이 뭘까하는 궁금증입니다. 검찰이 원하는 게 뭐길래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렸는지, 롯데그룹에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변두리 해설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 포정해우의 심정으로

서울중앙지검 15층은 방위사업수사부와 특수4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입구는 굳게 철문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서초동에서 가장 전망좋은 곳이지만 수사팀원이나 피의자가 아니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15층은 올해 상반기 내내 조용했습니다.

수사팀 관계자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방에 들어가니 화이트보드에 사자성어가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사자성어가 있었습니다.

포정해우(?丁解牛). 중용에 나오는 '포정'이라는 이름의 백정이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낸다는 뜻입니다. 솜씨 좋은 백정은 걸어가는 소만 봐도 칼의 동선이 눈앞에 그려진다고 하더군요. 수사팀은 그런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달 초 포정의 칼춤은 시작됐습니다. 상대는 롯데그룹이었습니다.

● 롯데그룹의 비자금을 찾아라.

기업수사의 1단계는 비자금을 찾는 겁니다. 기업총수가 월급쟁이와 다른점이 뭔지 아십니까? 같은 월급과 성과급을 받지만 대주주인 총수는 주식 보유량 만큼의 배당금도 받습니다. 여기까진 기업경영이 투명한 경제선진국의 얘깁니다. 총수가 좋은 건 기업을 이용해 뒷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비자금의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납니다.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은 먼 옛날 얘기인줄로만 알았는데, 롯데그룹을 바라보는 검찰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자금이 조성됐다면 역시 최고의 수익자는 대주주인 기업 총수입니다. 그룹 총수들이 비자금을 만드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겁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경영진의 용돈이나 로비자금으로 많이 사용됐습니다.

비자금은 어떻게 만들까요? 완전범죄를 꿈꾼다면 그룹 계열사의 내부거래가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매출을 부풀려주고 부풀린 만큼의 돈을 회계상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빼돌려 그룹의 비공식 계좌에 묻어두는 것입니다. 검찰의 롯데수사에서 주목하는 비자금 조성 방식의 첫번째가 바로 내부거래입니다.
● '정책본부'…롯데그룹의 청와대 비서실

저도 보도본부 소속이지만 '본부'라는 표현에서는 상당한 권위가 느껴집니다. 롯데도 정책본부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계열사로 따지면 롯데쇼핑 소속이긴 한데 아무도 롯데쇼핑의 정책본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롯데쇼핑 계열사의 한 본부로 취급하기엔 맡고 있는 역할이 대단히 방대합니다.

정책본부는 롯데그룹의 '브레인'입니다. 총수와 고위 임원들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자료들이 몰리는 곳입니다. 국가를 하나의 기업이라고 할때 정책본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실쯤 될 겁니다.

은밀한 고급정보들이 몰려 있습니다. 검찰이 생각하는 정책본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총수의 비자금 조성을 총괄기획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1년 매출이 80조가 넘는 거대기업 아닙니까? 계열사의 지분구조도 복잡하고 계열사도 많습니다. 계열사마다 매출 규모도 천차만별입니다.

정책본부는 힘든 계열사는 일감을 몰아줘서 살게 해주고, 잘나가는 계열사는 해외에 투자도 더 많이 하는 방식으로 계열사의 재무균형을 지휘하는 역할이 주임무일 겁니다. 중요한 일을 하고 권력이 있는 부서이다 보니 말발도 계열사에 잘 먹히겠죠. 그래서 정책본부를 통해서 총수들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을 관리하고 지휘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이는거죠. 현재까지 검찰 수사 진행상황을 보면 실제로 그런 모양입니다.
● 신동빈이 1차 타겟…'배임' 몸집 불리기

그래서 기업수사를 하는 검찰의 1차 타겟은 자연스레 총수 일가로 귀결됩니다. 기업이 비자금을 만드는 이유, 비자금의 최총 귀속자는 바로 그룹 총수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지목하자면 신동빈 현 회장입니다. 비자금 조성을 위해 우량 계열사의 순이익을 줄이고 비우량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건 배임행위입니다. 신동빈 회장을 겨누는 검찰의 핵심 혐의가 바로 이겁니다.

5대 기업 총수답게(?) 검찰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임액수를 찾아내는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배임규모가 클수록 경영권 분쟁이 진행중인 신동빈 회장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배임'을 부풀리는 검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신동빈 회장을 압박하기 위해섭니다.
 
낚시대만 크고 단단하다고 해서 월척을 낚을 순 없습니다. 수사는 명분도 중요하고 정교한 전략도 필요합니다. 돌발변수들에 대한 대응논리도 필요합니다.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대기업 수사가 정관계 로비 수사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정관계 로비 수사는 뒷돈을 받은 정치권 인사 개인의 범죄혐의에 치중하면 되지만 대기업 수사의 상대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은 조직과의 싸움입니다.

신동빈 회장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신 회장을 감싸고 있는 수백 명의 롯데 임원들을 헤집고 올라가야 합니다. 생사여탈권을 좌지우지하는 롯데 로열티로 똘똘뭉친 기업 임원들에게 자백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강한 상대일수록 많은 무기도 필요합니다. 계획한 것이라면 검찰이 롯데를 겨냥한 선전포고 시점도 최적의 타이밍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2번째 취재파일에서 풀어보겠습니다.

▶ [취재파일] 검찰의 '부비트랩' 롯데의 '호시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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