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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형 전차, 내구도 평가 파행…'완전 국산' 위기

[취재파일] 한국형 전차, 내구도 평가 파행…'완전 국산' 위기
한국형 전차 K-2는 이미 100대가 실전 배치됐습니다. 공개 실사격 훈련에도 종종 투입돼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K-2는 완전한 한국형 전차가 아닙니다. 엔진과 변속기 등으로 구성된 전차의 심장, 파워팩은 독일 MTU와 RENK사 제품입니다.

계획상으로는 국산 파워팩을 탑재한 첫 진짜 한국형 전차는 올 연말부터 양산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늦춰질 것 같습니다. 양산을 위한 파워팩의 내구도 평가가 경로를 이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은 현재 혹독한 개발 과정을 통과하고 ‘전투 적합’ 판정을 받은 국산 엔진과 국산 변속기에 대해 양산을 위한 최종 단품 내구도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차와 엔진, 변속기에 각각 적용되는 평가 기준이 수상합니다. 변속기만 압도적인 내구도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업체가 군이 원하는 초강력 변속기를 내놓지 못하자 평가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초강력 변속기를 얻을 수 있다면야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지구상에 그런 변속기가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명실공히 한국형 전차는 변속기 내구도 평가만 하며 세월을 보낼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 배경을 놓고도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변속기여! 억울함과 가혹함을 견뎌라

무기체계는 개발을 마치고 최종 양산에 앞서 정상적인 성능을 발휘하는지 확인한 뒤 극한의 내구도 평가를 실시합니다. 내구도 평가중 적용되는 규격(무기체계 개발 및 양산 기준)의 핵심은 결함과 내구도 결함인데 그 차이는 현저합니다.

결함은 야전에서 손 볼 수 있는 수준의 일반적인 결함입니다. 내구도 결함은 미 육군 교범(US ARMY TEST AND Evaluation command)에 따르면 변속기와 같은 아이템을 대체(replace)하거나 다시 제작(rebuild)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결함입니다. 내구도 평가 시에는 이 두 가지 결함을 엄격히 구분해 '단순 결함'일 경우는 정비한 뒤 평가를 이어가고, '내구도 결함'일 경우에는 아이템 전체를 교체해 원점에서 새로 평가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K-2 평가에서 전차와 엔진은 “내구도 평가 기간에 ‘내구도 결함’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격이 적용되는데, 변속기에는 나홀로 “평가 기간중에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규격을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전차와 엔진은 '내구도 결함' 즉 심각한 결함이 발생했을 때에만 새로 평가하는 것이고, 변속기는 내구도 결함이 아니라 '단순 결함'일 경우에도 결함이 발견되면 평가를 다시 받는 것입니다.

국산 변속기는 단순 기어박스 같은 변속장치가 아닙니다. 변속장치 뿐 아니라 조향장치, 제동장치, 냉각장치가 모두 탑재된 변속기 복합체입니다. 현재 양산 내구도 평가에서는 변속기 어떤 곳에서든 소소한 결함만 발생해도 변속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냉각장치를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한 달 보름 동안 매일 10 시간씩 총 320 시간 동안 변속기의 모든 기능을 쉼없이 가동하는 내구도 평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엔진과 전차는 내구도 결함일 때만 원점에서 평가를 하는데 반해, 유독 변속기에만 가혹한 잣대가 드리워졌습니다. 변속기 복합체가 대당 7억 원이니 돈 낭비도 돈 낭비이지만 시간 축내다가 애써 개발한 K-2용 국산 변속기 복합체마저 영구 폐기처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 ‘불평등 규격’ 어떻게 적용됐나

군 관계자는 며칠 전 “규격이야 어찌 됐든 엔진과 변속기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며, “엔진도 변속기처럼 부품 교체가 필요한 모든 결함은 재평가 대상”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랬을까요?

엔진은 양산을 위한 내구도 평가 기간 총 6건의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실린더 헤드 덮개 가공 불량으로 기름이 새서 덮개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볼베어링을 정확히 조립하지 않은 결함이 발생해 파손되자 역시 교체했습니다. 내부 실런트 과다 도포로 오링이란 부품이 변형됐고, 오링을 교체했습니다. 여과기 조도가 잘못돼 역시 정비했습니다. 전자파 관련 규격이 잘못 작성돼 규격서 문구도 고쳤습니다.

6건 모두 내구도 결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비 후 평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몇 건은 부품만 교체했습니다. “엔진과 변속기 모두, 부품 교체가 수반되는 결함은 재평가 대상”이라는 군의 설명과 많이 다릅니다.

다음은 변속기입니다. 내구도 결함에 속하는 메인 하우징에 손상이 발생했고, 새 변속기를 만들어 평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내구도 결함이니 새 변속기로 재평가한 조치는 합당합니다. 20일 뒤엔 변속장치 내부의 유성기어가 손상됐습니다. 내구도 결함이 아닌데도 군은 또 새 변속기로 재평가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27일)부터 3번째 변속기로 다시 내구도 평가에 들어갔습니다.

메인 하우징 결함은 내구도 결함이었지만, 유성기어 손상은 야전에서도 정비할 수 있는 단순 결함이었습니다. 엔진 규격에서는 변속장치 특정 부품만 교체하면 그만인데 변속기 복합체를 통째로 바꿨습니다. 벌써 3번째 변속기가 투입돼 3번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변속기에만 “평가 기간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포괄적 규격이 적용되는 탓에 반복 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오늘부터 새로 시작된 내구도 평가에서도 소소한 결함은 발생합니다. 그럼 또 원위치입니다. 변속기 내구도 평가는 무한 반복 쳇바퀴를 돌 운명입니다.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국산 변속기는 개발이 완료돼 ‘전투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개발 과정에서도 지금처럼 내구도 평가를 거쳤습니다. 그때 내구도 평가 규격은 “평가 기간, 내구도 결함이 없어야 한다”였습니다. 엔진도 전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양산 내구도 평가에서 변속기 규격에만 ‘내구도’ 한 단어가 빠져 버렸습니다.

군은 “업체가 양산 규격을 냈는데 왜 이제 와서 딴 소리냐”라고 주장합니다. 틀린 말입니다. 규격은 군과 업체가 같이 작성했습니다. 업체 측은 “규격서상 결함은 당연히 내구도 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규격 작성 작업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엔진과 변속기 단품에 대한 내구도 평가가 끝나면 엔진과 변속기를 전차에 장착해 또 전체적인 내구도 평가를 치릅니다. 앞으로 아무 말썽 없이 한번에 평가가 끝나면 오는 11월 모든 양산 평가가 마무리됩니다. 이에 따라 완전한 한국형 K-2 전차는 올 연말 첫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변속기 평가 방식이라면 완전한 한국형 전차 K-2 출고일은 하염없이 연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조리를 바로 잡으면 될 텐데 손을 대면 책임이 따를까봐 주저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이제 와서 어떤 이유로 변속기의 ‘선수’를 교체하려는 것은 아닌지… 여러 말들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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