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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쿠바 르뽀 ③ 한국어 가르치는 '쿠바노'

[월드리포트] 쿠바 르뽀 ③ 한국어 가르치는 '쿠바노'
공산주의 국가 쿠바에도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은 쿠바에 도착해서도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인터넷도 잘 안되고 TV 채널도 몇 개 안 되는데, 어떻게 쿠바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드라마 보고 한국말 배우고 싶었어요"

쿠바 도착 후 셋째 날 취재팀은 운 좋게 쿠바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청소년 한국어 교실을 취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식 대학이나 학원에서 하는 어학교실은 아니고 쿠바 한인후손회관에 마련된 강의실 두 곳에서 열리는 어학당이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된지 두 달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은 청소년들에게 한국말과 한글은 어색했지만 선생님이 칠판에 쓴 한글을 열심히 따라 쓰고 서툴지만 한국 말을 따라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아바나 청소년 한국어 교실
이 청소년 교실을 취재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두 명이 모두 쿠바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생님들은 어디서 한국 말과 글을 배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산 적이 있나? 아니면 현지에 몇 안되는 우리 교민에게 배웠을까?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4년 전 국제교류재단에서 이곳으로 파견한 김익환 객원교수가 개설한 한국어 강좌를 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쿠바에서 한국어를 배워 자기 나라 학생들에게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3년 동안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 검정시험 2급 이상을 딴 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고 직접 들어보니 한국어 발음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청소년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은 90% 이상이 여학생이었습니다. 

왜 한국말을 배우려 왔느냐고 묻자 인터뷰를 한 여학생 로사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말을 배우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한국 드라마 때문이었는데,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팬클럽 1년새 50명에서 1천3백명으로
쿠바 한국팬클럽 사무실
다음날 저희는 ‘한국문화클럽’이라 불리는 팬클럽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지난해 다시 문을 연 미국 대사관 뒷편 반지하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작은 공간에 한국 연예인 사진과 포스터, 한류관련 각종 자료들이 빽빽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팬클럽은 지난해 3월 처음 50명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회원 수가 1천3백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역시 팬클럽 회원도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10대부터 80대까지 전 연령층이라는게 특이했습니다. 가까이 사는 회원들은 매주 한두 차례 모여 한국 드라마도 보고 K-POP도 듣는다고 합니다.

지난 설에는 약 6백 명이 모여 명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들 회원이 K-POP에 맞춰 춤을 추고 아리랑 등 한국 노래도 부르며 그동안 익혀온 실력을 뽐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팬클럽 장기자랑
● 2013년 한류 본격 상륙

이렇게 쿠바에 한류가 스며들게 된 것은 언제일까? 쿠바에 처음 진출한 우리 기업은 현대중공업이었습니다. 전기가 부족한 쿠바에 2005년 진출해 발전기를 설치하고 확실한 AS로 쿠바 정부와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 덕분에 쿠바 정부는 쿠바 지폐 10CUC에 현대중공업 발전기 사진까지 실었고, 이 지폐는 현재 유통되고 있습니다.

쿠바 거리엔 현대차와 기아차도 눈에 많이 띠었고, 저희가 묶었던 호텔의 TV도 삼성제품이었습니다. 이런 한국 기업들의 진출로 남한하면(쿠바에선 SOUTH KOREA로 확실히 구분해줘야 합니다.) 쿠바와 수교국이자 형제국가인 북한과 달리 잘 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쿠바인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본격적인 한류의 쿠바 상륙은 지난 2013년 3월 국영방송 카날 아바나가 한국 드라마를 상영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아가씨를 부탁해’, ‘시크릿 가든’, ‘내조의 여왕’ 등 세 편이 방영됐는데 큰 인기를 끌었고, 드라마에 출연한 윤상현씨가 쿠바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아바나 DVD대여점 한국드라마 코너
한국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이후 한국 인기 드라마 대부분이 빠른 속도로 쿠바에 들어와 TV뿐 아니라 DVD, 최근에는 파일로 만들어져 USB로 쿠바에 퍼지고 있습니다, 시내 한 DVD대여점에는 한국 드라마만 따로 모아둔 코너까지 있었는데, 정식 DVD는 아니고 모두 해적판이긴 했지만 하루 20개 이상 팔리고 있었습니다.

한류 팬클럽들이 모여서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한 팬클럽 집을 방문했습니다. 컴퓨터에는 한국드라마와 K-POP수 백편이 파일로 저장돼 있었습니다. 최근 드라마도 많았는데 스페인어 자막도 완벽했습니다. 팬들에게 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냐고 묻자 “남녀 배우가 멋있다”, ”스토리 전개가 빠르다”, ”베드신이 거의 없고 순수한 사랑을 다뤄서 좋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인기가 가장 많은 한국배우는 이민호 씨였습니다.
 
● 한국식당도 문 열어
아바나 한국음식점
올봄 아바나 시내 대사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처음으로 한국 식당도 문을 열었습니다. 앞서 2편에서 언급한 ‘신외국인투자법’에 따라 한국인이 100% 지분을 소유한 식당입니다. 김치와 불고기 등 전통 한국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깎두기를 직접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원료인 무우는 한국에서 가져 온 씨를 심어 재배한 것이라고 합니다. 손님이 주로 누구냐고 묻자 한국인 관광객이나 아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주재원들이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쿠바인들이 이용하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운게 사실입니다.

●  애니깽 후손 1천 여명
쿠바 한인후손회관
쿠바에 살고 있는 한국 국적자는 현재 20명 정도입니다. 1921년 쿠바에 이민 온 애니깽으로 잘 알려진 한국인 후손은 약 1천여 명 정도입니다. 세월이 흘러 현재는 한인 3세부터 6세까지 있는데 세대가 내려갈수록 혼혈이 많이 진행돼 한인이라는 느낌은 많이 들지 않았고, 한국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인후손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최근 쿠바에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 역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사상 첫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두 나라가 머지 않아 수교를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조국을 가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하는 쿠바 한류 팬클럽
지난해 쿠바를 찾은 한국인은 8천 명 정돕니다. 두 나라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쿠바와의 후속 경제협력도 진행될 예정이어서 한국기업과 한국인의 쿠바 진출은 시간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간 7%경제성장을 목표로 삼은 쿠바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하지만 형제 국가 북한을 의식해 아직은 관계개선에 소극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유지하되 남한이란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우리의 제안에 얼마나 빨리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열지는 시간을 두고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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