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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쿠바 르뽀 ② 빗장은 서서히 열고 있지만…어디로 가나?

[월드리포트] 쿠바 르뽀 ② 빗장은 서서히 열고 있지만…어디로 가나?
쿠바가 빗장을 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입니다. 라울 카스트로가 형 피델의 뒤를 이어 공산당 제1 서기직에 취임한 직후입니다. 사회주의 경제를 그대로 고집하다간 안 되겠다고 생각한 라울은 매년 7%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과감한 후속조치를 단행합니다. 라울은 직접 “인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기본욕구  충족을 우선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자영업 육성, 중고차와 주택 매매허용
경제사회 개혁안이란 이름으로 이듬해 발표된 개혁조치는 당시로선 혁명에 버금가는 조치였습니다.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던 계획경제를 다는 아니지만 일부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조치가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방안은 자영업자 육성입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운수업과 주택 임대업, 식당, 이발소, 수리업, 청소업 등 300개 가까운 업종을 민간이 영위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제가 아바나에서 들른 여러 식당들이 바로 이 조치로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한 레스토랑은 오래된 건물을 내부만 개조해 만든 곳이었지만, 점심시간인데도 자리가 없을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손님은 대부분 관광객이었고, 쿠바 사람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쿠바가 섬나라이다보니 해산물 요리가 대표 메뉴였지만, 육류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음식과 음료수를 시키고 팁까지 내면 1인당 30쿠바 페소 안팎이 드는데, 1달러가 0.87 쿠바페소니까 꽤 비싼 편입니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은 임페라토르라는 30대 남성인데요 장사가 잘 되는데 수입이 괜찮냐고 묻자, “조금 벌었는데 바닷가에 놀러 갈 정도는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매출의 35%를 국가에 세금으로 내고 있다며 높은 세금에 다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영업자들은 한번 정부 눈 밖에 나면 언제든지 문을 닫을 수 있어 세금신고나 위생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임페라토르처럼 쿠바에서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지난해 7월 5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5%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돈을 벌 수 있고, 정부도 안정적으로 세금을 확보할 수 있어 쿠바의 자영업자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세율은 업종과 규모 등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자영업 허용과 함께 획기적인 조치는 중고자동차와 주택 매매를 허용한 것입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자본주의식 소유권을 도입한 것입니다. 과거부터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물물교환식으로 집을 바꿀 수는 있었지만 매매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집을 사고 팔 수 있게 됐고, 이를 연결해주는 부동산업자도 생겨났습니다. 놀랍게도 쿠바 국민의 약 80%가 집을 갖고 있는데, 그만큼 부동산거래 허용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중고차 매매 허용으로 앞서 소개한 올드카들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연간 승용차도 5천대 정도를 수입하고 있어 차량 매매시장의 규모도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쿠바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길도 열려 2013년부터 쿠바인들이 출국할 때 필요했던 출국 비자를 없앴습니다. 

●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라"
내국인들을 향한 이런 개방조치뿐 아니라 해외자본 유치를 위한 일련의 경제조치도 이어졌습니다. 2014년 ‘신외국인 투자법’을 발표하면서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섰습니다. 핵심은 사업승인 절차 간소화, 외국인 투자자의 소유권 보장, 조세감면 혜택입니다. 특히 수도 아바나에서 45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리엘에 발전특구까지 만들어 이곳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는 추가적인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외국인 투자 통계는 쿠바 정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현재까지 투자자금의 절반 정도는 EU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들 자금은 광업과 에너지, 관광업에 집중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주석도 쿠바를 찾아 경제와 외교관계 증진을 위한 29개 MOU와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항구 공동개발, 니켈 등 자원 구매, 통신망 개발을 위한 차관 제공, 골프장 공동 건설 등입니다. 

● 미국의 제재완화
미국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아직 미국 의회가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정부차원에서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네차레예 걸쳐 완화했습니다.

가족방문이나 공무, 취재, 교육 등 12가지 조건에 해당되면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도 쿠바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미국 보험사가 쿠바 여행객에 대한 보험을 취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쿠바인의 미국 취업이 가능해졌고, 특정 상품은 쿠바 정부나 공기업에게 수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민간부문이지만 건설과 농업, 자영업을 상대로한 장비와 자재의수출, 신기기의 수출도 허용했습니다. 

● 주민 대부분 배급에 생계 의존 
이런 개혁개방조치로 관광객과 해외자금이 쿠바로 밀려들고 이들을 상대로 한 자영업자도 늘고 있지만, 쿠바는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공산국가입니다. 여전히 주요 산업은 정부나 공기업이 직영하고 있습니다. 쿠바인들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의 혜택을 받지만 대학을 나와도 평균 월급은 30달러 정도에 불과합니다.

수도 아바나 시내 곳곳에는 배급소가 있는데, 어렵사리 한 곳을 취재하게 됐습니다. 쿠바의 어두운 모습이라며 처음에는 취재를 거부했지만 취재비자를 보여주고 설득한 끝에 취재허락을 받았습니다.

쿠바 시민들은 모두 정부로부터 배급표를 받습니다. 이 것을 갖고 배급소에 가면 쌀과 기름,비누 등 생필품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양이 모자라다면 실비만 내고 싼 값에 물건을 더 사갈 수 있습니다.

저희가 찾은 배급소 직원은 하루 100명 정도가 와서 물건을 배급받고 추가로 사간다고 말했습니다. 생계를 배급에 의존하는 많은 쿠바인들에게 앞서 언급한 개인식당 같은 곳에 가서 외식하는 것은 남의 애기라고 합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비싼 개인식당과 배급소가 공존하는 곳, 현재 쿠바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젖은 발 VS 마른 발     

쿠바 보트피플이 미국에 가기위해 카리브해를 표류하다 잡히거나 어렵사리 미국 땅을 밟는 경우가 그동안 많이 보도돼 왔습니다. 이들을 처리하는 절차는 두 가지인데 여기서 나온 말이 ‘젖은 발 마른 발’입니다.

미국과 적성국가였던만큼 보트피플이 어렵사리 미국 땅을 밟으면 우리의 탈북자처럼 미국 정부는 이들을 망명자로 분류해 정착금을 지원하고 미국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반면 이들이 해상에서 미 국경수비대 등에 적발되면 다시 쿠바로 보내집니다. 

이처럼 육지에 도착한 쿠바인은 ‘마른 발’, 해상에서 적발돼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쿠바인은 ‘젖은 발’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미국과 국교 정상화로 조만간 ‘마른 발’도 없어지게 되는데, 이 때문에 법이 바뀌기 전에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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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의료수준은 서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의료인들은 쿠바에서 엘리트로 꼽힙니다. 의대를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을 만났는데, 이 학생도 기회가 있다면 졸업하고 쿠바에서 살기보다 해외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습니다. 많은 쿠바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쿠바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살기보다는 기회의 땅인 자본주의 국가, 그 중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미국으로 떠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 휴대폰은 늘었는데 

아바나 시내 주요 호텔 주변을 가보면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친 채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메일을 보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인데, 왜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냐고 묻자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기 때문에 이 곳에 나온 것이라고 답합니다.

통신망이 부족한데다 정부에서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고, 정부가 운영하는 일부 호텔이나 대학교 주변에서만 무선 인터넷인 와아파이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30% 가까이 되지만 이렇게 인터넷 사정이 나쁘다보니 휴대폰이 있다해도 통화 외에 다른 기능을 쓰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저희가 묵었던 호텔도 와이파이가 된다고 했지만, 속도는 형편없이 느리고 수시로 접속이 끊어져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미국에서 잘 되던 카톡은 아예 막아버렸습니다. 현지에서 찍은 동영상을 송출하려고 새벽에 호텔 3곳을 옮겨 다닌 끝에 한 호텔에서 임시 와이파이 카드를 사서 어렵사리 그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속도가 엄청 느려서 동영상 20초를 보내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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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대로 쿠바는 반세기 이상 유지해온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급격히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재하는 쿠바는 50여년 전 혁명당시처럼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 변화가 쿠바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쿠바인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 [월드리포트] 쿠바 르뽀 ① : 시가와 럼, 헤밍웨이의 나라…밀려드는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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