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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너희랑 같이 살기 싫어!"…분양·임대아파트의 불편한 동거

[리포트+] "너희랑 같이 살기 싫어!"…분양·임대아파트의 불편한 동거
한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습니다. 휴거란 임대아파트인 ‘휴○○○’에 사는 저소득층 거주자를 ‘거지’에 비유해 놀리는 단어였습니다. 

물론 철부지 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그런 차별적인 표현을 광범위하게 썼다는 것은 부모의 영향 때문이란 지적이 많았습니다. 단지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이됐다는 것입니다.
  
휴거는 임대아파트를 차별하는 현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현재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한 단지에 섞어 지은 이른바 ‘소셜믹스’ 주거지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갈등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 분양·임대 주택 같이 사는 ‘소셜믹스’…현실은?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 간 어떤 갈등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먼저, 아파트 시설 사용을 두고 갈등이 일어나는 유형입니다.

대전의 소셜믹스 아파트 단지에는 300여 미터 길이의 철조망이 있습니다. 휴전선 철조망이 남과 북을 가르듯, 이 철조망은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철조망을 쳐서 서로 간의 땅을 명확히 한 건 물론이고, 통행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분양아파트 측은 임대아파트와의 바닥 높이가 서로 달라서 통행할 때의 안전 위험을 방지하려고 철조망을 쳤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임대아파트 주민 생각은 다릅니다. 생활수준이 다르다는 이유로 통행이 막히는 등 차별받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나 헬스장 등 단지 내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놀이터 미끄럼틀 이용 대상자 공고문에 임대아파트 거주자만 쏙 빼놓는 곳도 있습니다.
학군 갈등으로 나타나는 유형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2곳이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유독 한 학교에만 학부모들이 위장전입도 불사해가며 자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반면, 다른 학교는 임대아파트 학생들이 있다보니 기피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녀가 임대아파트가 포함된 학군의 학교에 다니면 가난하다고 차별받거나 남들보다 뒤떨어져 보일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부동산 가치 하락을 우려한 갈등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 7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사회적 배려대상자를 그룹으로 묶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그룹홈’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그러자 기존 입주민들이 주차장 입구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새 입주자들의 이사를 막았습니다. 새 입주자들은 대부분은 탈북자와 독거노인, 저소득층이었습니다. 
● 소셜믹스 단지의 ‘동상이몽’

소셜믹스는 거주 지역별로 계층 구분이 뚜렷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입니다. 쉽게 말해서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한 지역에 섞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부촌과 빈민촌으로 양극화하고, 특히 빈민촌은 점점 슬럼화하고 범죄율이 높아질 거란 겁니다. 사회 전반을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고, 따라서 소셜믹스를 통해 양극화를 예방하자는 겁니다.

사회 통합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선 거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분양 입주민 처지에서는 열심히 번 돈 아껴서 번듯한 내 집을 마련했는데, 임대민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같은 공간에 산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종의 ‘역차별’ 이라는 거죠. 소설믹스 정책에 따라 원치 않는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니 재산권은 물론이고, 행복추구권까지도 침해받는다고 하소연합니다.

임대민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비록 정부가 집을 내주니까 살긴 하지만, 평생 차별받으면서 살 바엔 차라리 따로 사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죠. 과거 SH공사가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 입주민 3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임대주택끼리 사는 게 낫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태생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일반아파트는 주택법, 임대아파트는 임대주택법을 따릅니다. 주민 대표기구 선출·구성은 물론, 관리비 부과방식 등이 다르다 보니 한 공간에서 공동체를 꾸려나가기에 이래저래 갈등의 소지가 많을 수 있습니다.
● 인식 전환만이 답일까?

2000년대 초반부터 소셜믹스가 도입된 이후 10여 년이 흘렀지만, 갈등은 여전합니다. 생활 수준이 다른 주민을 거주 공간만 통합시킨다고 해서 효과를 거두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거주민들에게 ‘이웃사촌’이라는 인식을 가지라고 하기엔 무리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물리적 측면과 아울러, 사회적·심리적 측면 등 여러 방면에서 통합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려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입주민 간 교류의 장이 자주 마련돼야 하며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정책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소셜믹스 형태를 층·호수 구분 없이 완전하게 섞어서 누가 임대주택인지 전혀 모를 정도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통합해도 결국 한계가 있을 것이란 비관론도 있습니다. 개발이익 환수를 통한 저소득층 지원방법을 소셜믹스가 아닌, 다른 형태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개발이익과 기부채납분을 걷어서 별도의 부지에 임대주택을 건립한 뒤 그들끼리 살게 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갈등을 최소화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역별 계층 구분을 없애자는 차원에서 도입된 소셜믹스. 분양과 임대아파트 간의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획·구성: 임태우 기자, 김미화 작가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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