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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들에겐 너무 높은 치과 문턱

[취재파일] 그들에겐 너무 높은 치과 문턱
땀을 뻘뻘 흘리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환자가 치료대 위에 올랐습니다. 치과의사와 치위생사들이 환자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크고 두꺼운 천으로 둘렀습니다. 마치 신생아를 감싸는 속싸개와 비슷합니다. 치위생사 2~3명이 환자의 팔과 다리, 몸을 꽉 잡고 의사가 진료를 시작합니다. 작은 소리나 진료기기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환자는 몸을 움찔거리고, 그럴 때마다 치위생사와 의사도 긴장된 표정으로 손길에 신중함을 더합니다.

중증장애 환자의 치과 치료 모습입니다. 장애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간단한 발치나 스케일링 같은 치료에도 전신마취를 해야 합니다. 팔과 다리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일 수 있어 치료 도중 잘못하면 혀나 잇몸을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환자는 의사 한 명만 있어도 가능한 치료에 이들은 3~4명이 필요합니다. 팔과 다리 등을 붙잡고 있어야할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에는 마취 전후 시간을 포함해 전체 치료에 3~5시간이 걸립니다. 일반 치과에서 장애인 환자를 꺼리는 이유입니다.

비영리민간 단체인 스마일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장애인 치과를 찾았습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환자들은 경기도 남양주와 시흥에 사는 장애인들이었습니다. 가까운 치과를 두고 이곳을 찾은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동네 치과에서는 진료를 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조사 결과(보건복지부-스마일재단, ‘장애인 구강보건 실태조사 2015’) 치과 치료 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장애인들은 과민한 공포(27.7%)와 의사소통문제(25.1%), 행동조절문제(21.5%), 장애치과 시설부족(21.6%), 이동거리 문제(7.0%), 의료인 냉대(2.2%) 등을 꼽았습니다.

취재 중 만난 뇌병변 1급 장애가 있는 박헤리(56)씨도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차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장애인 치과를 찾아갔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잘못하면 치료 도중 혀를 다칠 수 있고, 전신마취도 해줄 수 없다며 다른 치과로 갈 것을 권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치아 관리의 어려움도 토로했습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평소 스스로 치아관리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다가, 아픈 곳이 생겼을 때 제때 표현을 하지 못해 병을 키운다는 겁니다.

실제 조사를 통해서도 장애인들은 일반인들보다 치아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고, 스스로도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의 15.5%가 자신의 전신건강이 나쁘다고 생각한 반면, 그보다 더 많은 22.1%는 구강건강이 나쁘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강 건강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데, 앞서 말했듯 찾아갈 치과도 마땅치 않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전국에 설립된 치과 병·의원 수는 만 5천여 곳입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민간 치과진료기관인데 장애인 진료를 진행하는 곳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공식적인인 통계이긴 하지만, 스마일재단에서 재작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진료 참여 치과 수는 406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 치과 진료 공급기관의 비율은 공공부문 치과 진료 기관 가운데 21.4%, 민간부문 치과 진료 기관 가운데 2.6%에 그쳐 나타나 민간부문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그 수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 결과(2014년) 중증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치과 치료가 필요한데도 진료를 받은 적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에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치과의 문턱이 그들에겐 너무 높은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선 'Special Needs(특별한 요구)'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치과 치료, 즉 ‘장애인 치과학’이 전문영역으로 인정받아 교육되고 있으며, 관련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습니다. 또 장애인 환자들은 가까운 지역사회에서 손쉽게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 구강보건의 날(6/9)이 첫 법정기념일이 됐습니다. 구강보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지난 1946년 처음 만들어진 날입니다. 이 날이 비장애인 환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날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민간에서 ‘특별한 요구’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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