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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6년 묵은 침낭'·'뚫리는 방탄복'은 없다

[취재파일] '36년 묵은 침낭'·'뚫리는 방탄복'은 없다
감사원은 최근 국방 분야 감사로 침낭과 방탄복을 들춰봤습니다. 지난 1일 감사원이 침낭 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신문 방송들은 “36년 된 구닥다리 ‘군용 침낭’ 또 방산비리” “군피아 탓…장병들 ‘30년 묵은 구형’ 침낭 쓴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지난 3월 감사원이 방탄복 감사 결과를 내놨을 때 신문 방송들은 “군, 로비 받고 북한 총탄에 뚫리는 방탄복 도입” “총알 못 막는 구형 방탄복…알고도 병사들 입힌 軍”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에 ‘36년 묵은 침낭’과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장병들은 36년 전 개발된 뒤 14번 개량한 침낭에서 자고 있습니다. 방탄복은 장병들의 임무에 따라 레벨-2에서 최고 등급인 레벨-4까지 보급되고 있습니다.

종종 감사원의 국방 감사는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웁니다. 비리만 색출해야 하는데 애꿎게 군의 신뢰까지 송두리째 흔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사원이 비리라고 규정한 행위도 검찰이 수사해 보면 무혐의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군은 방산비리 전력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도 못합니다. 과도하게 군을 흔드는 행위는 적을 이롭게 할 뿐입니다.
● 억울한 방탄복과 침낭

우리 군 방탄복 중 구형은 AK-47 방어용 레벨-2이고, 신형은 AK-74 소총탄까지 막을 수 있는 레벨-3입니다. 강철 장갑도 뚫는다는 북한의 철갑탄 방어용 레벨-4도 특수부대에 지급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레벨-2와 레벨-3에 철갑탄을 쏘면 뚫립니다. 모든 장병이 철갑탄까지 완벽하게 막아내는 레벨-4를 입는다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장병이 레벨-4를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립니다.

레벨-4는 가격도 비싸지만 무겁습니다. 방탄판을 앞뒤로 모두 대면 방판복의 무게는 10kg 안팎에 달합니다. 덩치 크고 힘 센 미군들이야 레벨-4를 입어도 뛰고 뒹굴며 총 쏘는데 무리가 없겠지만 우리 장병들은 다릅니다. 국방부 정보 본부에 따르면 레벨-4로만 막을 수 있다는 철갑탄은 북한군에 널리 보급돼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군은 장병들의 임무 위험도에 따라 레벨-4와 레벨-3, 레벨-2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침낭입니다. 군은 현재의 침낭을 36년 전에 개발했지만 그 동안 14번 개량했습니다. 감사원은 36년 전 개발 사실은 공개하면서 14번 개량 기록은 숨겼습니다. 그래서 장병들이 ‘아버지가 쓰던 침낭’을 덮고 잔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감사원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현재의 군 침낭이 아웃도어 제품처럼 얇고 가볍지는 않습니다. 군은 작년 상반기에 아웃도어 침낭 수십 세트를 사서 장병들이 야전에서 사용해 보도록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웃도어 제품은 군이 요구하는 내구성을 충족할 수 없었습니다. 군은 아웃도어 침낭처럼 가볍고 따뜻하면서도 군용으로서 내구성 있는 침낭 개발을 목표로 올 여름부터 본격 연구에 착수합니다.

● 방탄복 사건의 전모

감사원은 레벨-4 액체 방탄복이 개발됐는데도 군이 레벨-3 신형 방탄복을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마치 군인들이 돈을 받고 레벨-4 액체 방탄복과 레벨-3 신형 방탄복 중에 성능이 떨어지는 레벨-3 신형 방탄복을 고른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액체 방탄복은 군의 소요 제기가 없는 상황에서 국방과학연구소가 민간업체와 공동 개발했습니다. 방탄 성능은 레벨-4를 구현했습니다. 개발을 끝냈을 때의 가격은 방탄판을 앞뒤로 댄 경우 102만원, 앞쪽 방탄판만 댄 경우는 82만원이었습니다. 무게는 양쪽 방탄판 장착시 8.6kg, 앞쪽 방탄판 장착시 5.9kg.

당시 군이 액체 방탄복과 함께 검토한 방탄복은 감사원 주장과 달리 기존의 구형 레벨-2였습니다. 방탄판을 앞에만 대는 모델로 가격은 42만원이었습니다. 무게는 4.5kg입니다.

액체 방탄복은 레벨-4이긴 하지만 무겁고 비쌌습니다. 소총 견착시 사격이 불편하다는 심각한 단점도 있었습니다. 양산하려면 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새로 정립한 뒤, 액체 방탄복의 가격과 무게, 견착시 편의성 등을 개선해야 했습니다. 당장 도입할 수 있는 방탄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군은 지난 2012년 액체 방탄복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떤 비리도 없었고 “비리가 발생해 액체 방탄복을 버렸다”는 감사원의 주장도 맞지 않습니다. 이후 군은 곧바로 신형 레벨-3 방탄복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북한이 신형 AK-74를 두루 보급함에 따른 조치입니다.

비리는 신형 방탄복 사업의 국방부 책임자가 몇 년 후에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가 나온 것입니다. 이 관계자는 부인의 약사 자격증을 업체에 대여하고 대가를 받았습니다. 검찰이 그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은 지난 달 26일 “혐의를 둘러싸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습니다. 군 관계자는 “신형 방탄복도 레벨-4 방탄판을 넣으면 철갑탄에 뚫리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침낭 사건의 전모
감사원의 침낭 사건은 A라는 업체가 지난 2010년 1,000억원 규모의 신형 침낭 사업을 군에 제안하면서 벌어졌습니다. A 업체는 군을 상대로 로비를 했습니다. 관련 군인들을 만날 때 밥과 술을 샀습니다. 예비역 장군 측에게는 거액의 현금도 건넸습니다. 이 장군의 주특기는 무기 및 장비 획득이 아니라 인사 업무였습니다. A 업체는 사람을 잘 못 고른 것으로 보입니다.

군이 A 업체의 침낭을 본격적으로 검토하자 현재 침낭을 공급하는 B 업체가 발끈했습니다. B 업체는 A 업체를 비판하는 문건을 만들어 군에 제공했습니다. 군은 문건을 검토했고 A 업체의 침낭 사업을 접었습니다.

A 업체의 침낭이 어떤 제품인지는 감사원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로비가 벌어진 것으로 미뤄 덥석 사들여도 좋을 침낭 같지는 않습니다. 업체 간 이전 투구가 벌어진 상황에서 A 업체 침낭 사업이 무산된 것은 잘 된 일로 보입니다.

침낭과 방탄복 사건에서 군 관계자들이 업체의 로비에 초연하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그들 행동의 시비는 법원에서 준엄하게 가려질 것입니다. 동시에 군이 36년 묵은 침낭과 북한 소총탄에 뚫리는 방탄복을 장병들에게 지급하고 있다는 억울한 오명도 해소돼야 할 것입니다.

감사원은 비리만 솎아내야 하는데 성과 욕심에 과도하게 군 신뢰를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고군분투하는 대다수의 군인들은 툭하면 부풀려지는 방산 비리로 좌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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