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9-4 승강장 CCTV 화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6.05.30 11:44 수정 2016.05.30 19: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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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지점은 내가 맡은 출입처 중 한 곳인 서울동부지방검찰청으로 가기 위해 늘 내리던 곳이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은 그래서 승강장도 역무실도 복도도 모두 나에게 익숙했다.

사고가 난 다음 날인 어제(29일), 그 구의역을 다시 찾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최근 4년 새 벌써 ‘판박이 사고’가 세 차례나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사고 현장을 영상취재 기자와 함께 촬영한 뒤 여러 궁금증을 안고 역무실로 향했다.

역무실 안 한쪽 기둥에는 역사 내부를 살펴볼 수 있도록 이곳저곳을 촬영하고 있는 CCTV 화면들이 내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한 화면이 크게 확대돼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취재를 하고 돌아온 사고 현장인 9-4 승강장이 보이는 화면이었다. 촬영을 하고 있는 다른 방송사 영상 기자들과 현장 여기저기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취재기자들의 모습이 화면에 보였다. 기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뭘 하고 있는지 역무실에 생중계가 된 셈이다.

그러니까, 가능했다는 얘기다. 사고 당일에도 스크린 도어가 고장 난 승강장을 한 번이라도 이 CCTV로 비춰봤더라면, 점검을 위해 승강장으로 간 수리 직원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화면을 눈여겨봤더라면 사고는 없었을 거다.

● ‘안전 수칙’은 있으나마나

그제 오후 4시 58분, 서울메트로 관제소에 신고가 들어왔다. 구의역 잠실 방향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문 하나가 오작동을 해 열려 있다는 열차 기관사의 신고였다.

관제소는 운영실에 통보했고, 운영실은 스크린도어 수리를 맡은 협력업체에 문이 고장 났다고 통보했다. 업체 직원 20살 김 모 씨는 첫 신고 한 시간 뒤쯤 구의역에 도착했다. 승강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42분. 그리고 2분 뒤 스크린도어를 열고 선로 쪽으로 나갔다.

오후 5시 57분, 사고가 났다. 김 씨는 승강장으로 들어오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지난해 강남역, 3년 전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고장을 수리하던 직원이 들어오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진 사고와 정확히 같은 유형의 사고였다. 열차가 운행을 하고 있던 중 현장에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3년 전 발생한 성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는 첫 대책을 내놨다. 대책이라기보다는 수리 업무를 맡은 용역 업체에 내려진 지침에 가까웠다. ▲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 1조로 진행 할 것 ▲ 지하철 운행 시간에는 스크린도어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 것 ▲ 부득이 들어가야 할 때는 서울메트로에 알리고 운행을 멈춘 뒤에 들어갈 것, 3가지였다. 하지만 이 원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강남역 사고가 또 터졌다. 지하철 운행이 한창인 저녁 7시 반쯤 혼자서 스크린도어 바깥쪽으로 나가 작업을 하다 진입하는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협력업체 직원 29살 조 모 씨가 숨진 것이다.

강남역 사고 뒤 또 다시 특별안전대책이 수립됐다. ▲ 선로 측 작업 시 열차 감시자를 배치할 것(작업 시 전자운영실 통보 승인) ▲ 장애역사 출동 시 출동 사실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로 통보 ▲ 도착 즉시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통보 ▲ 작업 전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신고, 작업표지판 부착 등 4가지였다.

서울메트로가 만든 안전대책이지만, 성수역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대책을 실행해야 하는 주체는 모두 수리를 맡은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장애가 생긴 역으로 출동할 때, 도착할 때, 선로 측에서 작업을 시작할 때, 작업을 마무리했을 때, 수리 업체 직원에게 이를 모두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를 지웠다. 서울메트로가 만든 수칙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잘못이 없었다.

● 유명무실한 2인 1조 근무

의무를 고스란히 떠안았던 수리 업체 직원 김 씨는 왜 이를 다하지 못했을까. 왜 2인 1조가 아닌 혼자서 열차가 운행하고 있는 중에 그대로 일을 하게 된 것일까.

현재 서울메트로와 계약을 맺고 스크린도어 관리 업무를 맡은 업체는 2곳. 이 가운데 김 씨가 속한 업체는 직원 142명으로 지하철역 97개를 관리한다. 밤낮 없이 일어나는 고장과 사고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는 3교대로 이뤄진다. 휴무인 사람들을 빼면 대략 근무 때에 3~40명이 일을 하게 되는데, 2인 1조로 근무를 해야 한다면 결국 15~20개 조가 100개에 가까운 지하철역을 관리하게 된다.

사고 현장에 나왔던 업체 직원은 사고 당시 강북 권역에서 근무자가 5명(모두 6명이었지만 1명은 사무실에서 신고를 접수하는 일을 맡아 현장에 나올 수 없었다)이었다고 말했다. 이 5명이 49개 역을 도맡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업체의 한 직원은 고장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을 때 현장에 출동해 이를 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역을 돌면서 점검을 해야 하는 업무까지 더하면 현재 인력으로는 정상적인 점검과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 나갈 때 횟수를 따져보면, 절반 정도만 2인 1조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외주를 주는 서울메트로에서 충분한 비용을 주지 않아 인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인원 확충을 요구하는 업체 측에, 서울메트로는 수리 업무 계약 당시 업체 측도 현재의 비용이나 인력 등으로 충분히 안전한 업무가 가능하다며 계약 조건에 합의했다고 반박했다. 어찌됐든 ‘위험의 외주화’ 속에서, ‘2인 1조 근무 원칙’은 현장에서 이미 깨져 있었다.

● ‘수칙 잘 지켜지나’ 관리감독도 부실

특별안전대책을 지켜야 할 주체였던 협력업체 직원들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쏟아지는 업무 속에 ‘얼른 일을 끝내고 다음 현장으로 가자’는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 스크린도어 고장은 감지 센서 오작동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경우 센서 위에 묻은 오물만 닦아주면 고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유혹은 더 커졌다. 구조적인 유혹에 빠진 수리 업체 직원이 현장 상황, 예컨대 선로 쪽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열차가 지금 들어오는지 등을 혼자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대책을 지켜야 할 업체 직원이 원칙을 어겼을 때 사고를 막을 장치는 없었던 걸까.

구의역을 지나는 기관사에게서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를 받은 곳은 서울메트로 관제소다. 열차 운행을 관리하는 곳이다. 관제소는 전자운영실에 연락해 스크린도어가 고장났다는 신고가 들어왔음을 알렸고 운영실은 수리 업체를 불렀다.

수리 업체 직원이 구의역에 도착해 점검을 하러 갔고 수리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운영실은 다시 관제소나 해당 역인 구의역에 이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다. 구의역에서는 스크린도어가 고장났다는 사실도 몰랐다. 고장 신고가 들어와 수리 업체 직원이 현장에 나와 수리를 하기까지, 1시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역에서는 이를 알지 못했다는 거다.

더군다나 업체 직원 김 씨는 스크린도어를 열기 위해 열쇠를 가지러 역무실에 들렀다. 점검을 하겠다며 역무실 한 편에 걸려 있는 열쇠를 가지고 가는 김 씨를 보고 역무원이 왜 혼자 왔냐고 물었고, 김 씨가 나머지 한 명도 지금 오고 있다고 답했다는 게 역무원의 주장이다.

점검을 하러 왔다는 김 씨가 어디에 가서 무슨 점검을 어떻게 하는지, 지금 우리 역 스크린도어에 문제가 생긴 곳은 없는지 추가적인 확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 직후 있었던 간이 브리핑에서, 서울메트로 측은 숨진 김 씨가 운영실과 역무실에 좀 더 자세히 작업 내용을 말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 말뿐인 안전대책, 예고된 인재

인명사고 이후 세워진 원칙만 지켰어도, 원칙이 잘 지켜지는지 관리 감독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지난 두 번의 사고처럼 명백한 인재였다. 성수역, 그리고 강남역 사고 모두 사고의 원인을 수리 작업을 하는 업체 직원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도 관리감독자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울메트로는 이번 사고 이후 또 다시 대책을 내놨다. 스크린도어 수리를 더 이상 협력업체에 맡기지 않고 오는 8월부터 자회사 설립을 추진해 그곳에 맡기겠다는 내용이다. ‘인력 효율’을 높이고 ‘우수 인력’을 영입해 인적결함에 의한 유사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그리고 현재 수리요구가 잦은 스크린도어 센서가 선로 쪽 그러니까 스크린도어 바깥쪽에 달려 있는데, 이 센서의 설치위치를 바꿔 승강장 쪽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현재 전체 121개 역사 가운데 16개 역사에서 이 설비가 바뀐 상태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강남역 사고 이후 이미 발표됐던 ‘헌 대책’이다.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일하던 협력업체 직원들이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나섰는데, 고용 승계를 약속받기 위해 더 좋은 업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 이 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설비 교체 역시 올해 안에 모두 마무리하겠다며 앞당기려 했으나 예산 등의 문제로 오는 2018년까지는 완료가 어렵다는 게 서울메트로의 입장이다. 이 ‘헌 대책’이 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해도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에도 이런 ‘대책이 없어서’ 사고가 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리업체는 정해진 작업수칙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하고, 관리하는 기관은 그 수칙이 잘 지켜지는지 성실하게 관리 감독하고, 수칙을 지킬 수 없는 물리적인 여건은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없다면 사고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