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플라스틱 조각 떨어지는 '불량 지퍼락' 리콜 조치된 사연은?

[취재파일] 플라스틱 조각 떨어지는 '불량 지퍼락' 리콜 조치된 사연은?
 시민의 제보가 세상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시민들이 관공서나 시민단체, 수사기관에 먼저 문을 두드린 뒤 신통치 않은 답변을 받거나 반응이 없으면 방송사로 제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주는 ‘최후의 보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명 지퍼락 제품을 대량 리콜하게 만든 뉴스도 작은 제보에서 비롯됐습니다.

 주부 강모씨는 4살난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건강이 썩 안 좋았던 강씨는 아들만큼은 좋은 음식을 먹이려고 유명 수입제품인 ‘냉동용 지퍼락’에 이유식용 식재료를 넣어 보관했습니다. 각종 채소는 물론이고 다진 마늘, 생강, 고기, 갈아놓은 토마토 등을 냉동 보관해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사용한 기간이 3~4년이나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야채를 넣어둔 지퍼백에서 파란색 알갱이들이 보였습니다. 야채에서 떨어진 것이겠거니 했는데 알갱이들이 한두 개가 아니고 수십 개나 됐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채소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딱딱한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이었습니다. 

강씨는 그제야 다른 지퍼백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진 생강을 넣어둔 지퍼백 안에도 파란색 알갱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쳤던 알갱이들이 비로소 크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강씨는 알갱이의 출처를 알기보기 위해 지퍼백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지퍼백을 여닫는 지퍼 부분에서 같은 푸른색 알갱이를 발견했습니다. 지퍼백을 밀봉시키는 지퍼 부분이 알갱이 형태로 떨어져서 지퍼백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강씨는 순간 화가 치밀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수년 동안 이런 사실도 모르고 지퍼백에 넣어둔 야채, 과일을 갈아서 아들한테 먹여왔던 겁니다. 아들이 지퍼백에 넣어둔 식재료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면 설사를 자주하곤 했는데, 작은 푸른색 알갱이를 먹여서 그런지 엄마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강씨는 ‘냉동용 지퍼락’ 제품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곧바로 제품을 수입한 SC존슨코리아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지는 문제를 발견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습니다. 해당 수입 업체의 반응은 황당했습니다. 제품을 만든 태국 본사의 외국인 담당자와 연결해 줄 테니 영어로 상담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통역은 물론 없었습니다. 강씨는 유창한 영어는 아니지만 본사 직원에게 “아이에게 먹였는데 안전하냐?”와 “문제의 제품은 판매하지 말아 달라” 등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직원은 성의 없는 답변만 했습니다. 메디컬 어드바이저(의료 자문)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직원은 “인체에 해는 없지만 먹지는 마라. 제품 판매 중단은 나의 소관이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말만 늘어놨습니다.

 힘든 과정을 겪은 강씨는 SBS에 사진과 함께 관련 사실을 제보했습니다. 필자는 이 제보를 우연히 접했고 사진을 확인한 뒤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의 제품이 아직 남아있는지 물었습니다. 다행히 버리지 않고 남겨둔 제품이 있다는 답변을 듣고 곧바로 강씨가 사는 지역으로 카메라 기자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강씨의 사연을 듣고 불량 지퍼락 안에 파란색 알갱이를 확인한 기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음식물을 넣어둔 용기에서 플라스틱 조각들이 떨어지는데 자칫 음식물과 뒤섞여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마친 뒤 주부에게 식약처에 관련 사실을 신고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기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출입하기 때문에 신고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식약처 조사관들이 강씨를 직접 찾아가 제품을 살펴본 뒤 곧바로 결함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식약처가 식품위생감시원 20명에게 동일한 제품 190개를 냉동실에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하며 여닫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냉동실에서 처음으로 꺼내 열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두 번, 세 번 재사용할 때는 지퍼 부분의 알갱이들이 떨어지는 동일한 결함을 일부 제품에서 발견했습니다. 190개 제품 가운데 10개에서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았습니다. 불량률은 5.26%로 높은 편이었습니다. 불량 제품인 것을 확인한 식약처는 곧바로 잠정 판매 중단과 제품 회수를 SC존슨코리아측에 명령했습니다.  SC존슨코리아도 제품 결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식약처의 리콜 명령에 응했습니다. 평범한 주부의 작은 목소리는 귀담아 듣지 않던 유명 수입업체가 한국 식품당국의 명령에는 군소리 못하고 따른 겁니다. 식약처가 동일한 제품 190개를 테스트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방송 뉴스를 본 주부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주부 강씨 아니었으면 계속 사용할 뻔 했다’는 격려와 함께 일을 간만에 제대로 처리한 식약처에 대한 칭찬, ‘유명 수입제품이라고 해서 다 믿을 건 못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주부를 우습게 여긴 다국적 생활용품 판매 기업에 대한 비난의 글이 많았습니다. 해당 제품은 SC 존슨코리아가 태국 티이 그립테크에서 수입해 ‘지퍼락’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이 가운데 ‘냉동용 더블 지퍼락’입니다. 지난해에만 냉동, 냉장용 합쳐 790톤, 40억여 원 상당이 수입됐습니다. 이 제품을 구매했거나 사용하고 있는 주부들은 구입처에서 반품과 환불이 가능합니다. 소비자의 작은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못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