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취재진은 ‘실종 아동의 날’(5월25일)을 맞아 실종 아동의 아버지 김기석 씨를 만났습니다. ( ▶ 5월 25일 8시 뉴스 방송-30년 전 잃은 아이, '현재 모습' 몽타주로 찾는다 ) 이제라도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짧은 방송 뉴스에 담아내지 못한, 애끊는 그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인터뷰 기사가 자식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기자) 실종 당시의 상황을 말씀해주세요.
(김기석 씨) 저희가 사는 곳이 좀 외졌죠. 절이 있는 진입로에 있었어요. 아이는 평소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혼자 잘 노는 성격이었어요. 별걱정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애가 늦도록 안 들어오는 거예요. 이웃집을 가봤더니 이미 왔다 갔대요. 그래서 근처 의경 검문소를 찾아갔어요. 평소 의경들이 과자도 잘 사주고 하니까 애가 거기를 자주 갔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안 왔다는 거에요. 결국, 어디에도 없었죠.
(기자) 정말 놀라셨겠어요.
(김기석 씨)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죠. 가장 먼저 사람부터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집 근처 계곡에 흙이 볼록 올라와서 갈라진 부분이 보였어요. 그래서 설마 누가 죽여서 묻지 않았나 싶어서 무릎 꿇고서 그걸 맨손으로 마구 파봤죠. 이웃집 축사에서 돼지 죽은 걸 묻어놨더라고요.
(김기석 씨) 네, 당연히 그랬죠. 당시만 해도 실종 신고하면 “곧 돌아올 거다. 좀만 기다려봐라.” 이런 식이었어요. 마냥 기다리면 뭐 합니까? 돌아오긴커녕 벌써 30년이라는 세월만 흘렀는걸요.
(기자) 아이를 찾으러 다닐 때 막막하셨을 것 같아요.
(김기석 씨) 네, 처음엔 보육시설 위주로 돌아다녔죠. 아이가 실종된 지역이 대전이니까, 대전 시내를 중심으로 돌고, 충청남도를 돌고 그다음엔 충청북도로 넘어가고. 그러다가도 못 찾으니까 전국을 돌게 됐죠. 실제 실종 부모 가족 중에서는 정상 아동인데, 정신병원에서 아이를 찾은 사례도 있었어요.
(기자) 정신병원에서요?
(김기석 씨) 네, 간혹 그 일을 접하고부터는 병원 시설들도 돌아봤죠. 그런데 병원이 잘 협조해주지 않았어요.
(기자) 아이 찾는 일인데, 왜요?
(김기석 씨) 실종아동법에 병원 시설이 ‘협조할 수 있다’라고만 돼 있거든요. 심지어 경찰관하고 동행했을 때조차 협조가 의무 사항이 아니라며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병원들이 있어요. 그러면 결국, 다툼이 되고…. 저희는 아이 찾으러 거기까지 갔는데, 속이 얼마나 상하겠어요?
(기자) 병원들이 그렇게까지 비협조적일 줄 몰랐어요.
(김기석 씨) 법령에서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라고 해놨기 때문에 시설들이 조사를 거부할 수 있는 거죠. 만약 개인적으로 가면요? 시설에서 절대로 누가 있는지 파일을 보여주지 않아요.
(기자)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걸까요? 숨기는 것을 보면.
(김기석 씨) 기가 막힌 것도 알게 됐죠. 시설에서 아이들의 호적을 바꿔서 남으로 둔갑시켜 놓는다는 거죠. 그렇다 보니 자기의 본래 인적 사항대로 사는 실종 아동이 몇 없어요.다 바뀌어 있거든요.
(김기석 씨) 말이 아니죠. 일도 제대로 못 했고요. 가정도 순탄치 않았죠. 결국, 애 엄마하고도 멀어지게 됐고. 실종 아동을 둔 가정은 다 가슴 속에 멍을 갖고 살아요. 멍, 그 멍을 어떻게 풀어줄 수가 없어요. 평생 가도 풀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걸 풀려면 아이를 찾아야 하는데…. 전국을 다니는 게 찾아야겠다는 희망 하나 때문이지, 잘 될 거란 확신이 있어서 다니는 게 아니거든요. 시간 내버려, 돈 내버려 가면서 그래도 아이를 찾아 나서는 이유는 후에라도 우리 아이가 거기를 거쳐 갔던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기자) 그럼 이사를 다니기도 쉽지는 않으시겠어요?
(김기석 씨) 네, 어떤 부모들은 집을 못 비우고 그 집에서 쭉 사는 사람도 봤어요. 그러나 동네가 전부 다 개발되면 안 떠날 수가 없어요. 그럼 아이가 거길 다시 찾아와도 모르겠죠. 수십 년 전 기억이기 때문에 저도 늙었고, 그 기억을 더듬어도 저조차 실종 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요. 이제 서울에 와서는 전국을 찾아다니는 그런 신세가 됐죠.
(기자) 실종 아동을 찾는 데 제도나 시스템이 좀 도움이 되던가요?
(김기석 씨) 당시만 해도 법률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죠. 심지어 아이들이 14세가 되면 실종 아동이 아니고, 가출 청소년으로 변경돼 수사 선상에서 제외시켰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실종이 가출이 될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니라고 많은 실종 아동 가족들이 항의해서 지금은 그나마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아요.
(기자) 또,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김기석 씨) 남자애들은 실종 상태여도 군대 갈 나이가 되면 병무청에서 병역통지서가 날아와요. 그런데 주민번호를 말소시키지 않는 이상 경찰에서 실종신고 확인서를 떼다 줘도 증명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태료 300만 원을 내야 해요. 그래서 실종된 남자애들 대부분은 주민번호가 말소돼 있어요. 제 아들도 마찬가지고요.
(김기석 씨)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저희가 전단을 돌리고 이렇게 하잖아요. 안 받는 부모들도 많고 받았다가도, 금방 팍 버리고 심지어 발로 밟고 갑니다. 그러면 제 가슴이 얼마나 터지겠어요. 그분들은 이런 심정을 몰라서 그러시겠지만, 실종자 가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는 할 수 없잖아요.
(기자) 지금 어떤 모습이 기억이 나세요?
(김기석 씨) 제가 옛날에 아이한테 꿀밤 하나 콩 때렸는데, “아빠 때리지 말고 말로 해.” 이 말이 지금도 가슴 속에 콱 박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까, 지금도 가슴이 콱 막혀요.
(기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하는지?
(김기석 씨)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 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저는 그 아이를 찾는 게, 그 아이한테 뭘 바란다든가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 아이가 건강하고 사람답게, 자기 도리하면서 사는 아이로 성장해있다면 바랄 게 없어요.
▼ 아래는 김기석 씨의 실종아동 김호 군입니다. 왼쪽은 실종 당시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현재 얼굴로 추정되는 몽타주 사진입니다. 김호 군을 보신 분이 있다면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국번없이182)로 신고해주세요. 30년째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버지의 가슴 속 멍을 풀어주세요.
http://nadofunding.sbs.co.kr/project/46
* 취재 : 권란 기자 / 기획·구성 : 임태우 기자, 김미화 작가 / 디자인 :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