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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군 세균 살포실험이 부산에서 이뤄진 이유

일본군의 극비 '노보리토 연구소'를 가다(2/3)

[월드리포트] 일본군 세균 살포실험이 부산에서 이뤄진 이유
2차 대전 당시 일본 육군의 비밀 연구소, '노보리토 연구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1편 ▶ [월드리포트] 옛 일본군이 개발한 '살인 전파'의 정체는? 에서는 노보리토 연구소가 개발한 일부 비밀병기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2편에선 노보리토 연구소가 '제2의 731부대'로 불리게 된 세균전 및 독극물 연구와, 그 연구에 휘말린 우리나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메이지대학 평화교육 노보리토연구소 자료관(이하 자료관)과 다큐멘터리 '육군 노보리토 연구소'의 쿠스야마 타리유키 감독의 적극적인 취재협조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노메이지 연구소는 1940년 전후 세균전 및 독극물 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41년부터는 중국에 있던 731부대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당연히 인체 실험도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인 1948년 누군가 도쿄 제국은행에서 은행원 10여 명을 독극물로 살해하고 돈을 빼돌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일본 경찰은 노보리토 연구소의 전 연구원을 불러 독극물에 대해 조사를 합니다. 이 연구원은 자신의 독극물 연구 과정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취미처럼 돼버렸다. 상대는 중국인 포로였다. 반시뱀의 독을 침에 넣어 옷 위에 찌르니 곧바로 쓰러진다. 시체는 곧바로 해부해 연구에 썼다."
이런 세균전 무기는 인명 살상용뿐 아니라 동식물을 죽이는 용도로도 개발됐습니다. 적국의 식량 생산량에 타격을 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자료관 측은 "일본 전국에서 각종 독성 세균을 수집해 보리와 벼를 말려 죽이는 생물병기를 개발했고, 해충을 대량 살포하는 무기도 개발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독성 세균과 해충을 실제로 '살포'하는 실험은 우리나라에서 이뤄졌습니다.
위 자료는 노보리토 연구소의 연구원을 부산에 있는 조선총독부 가축위생연구소에 파견해 가축 전염병 세균 살포 실험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자료관의 야마다 아키라 관장은 "살포 시험 과정에서 독성 세균이 다른 곳으로 퍼질 경우 굉장히 위험하다. 이런 위험 때문에 일본 본토 대신 일부러 부산에서 살포 실험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위 명령서의 작성 시기는 1943년 12월9일입니다. 세균의 활동이 둔화되는 겨울이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당시의 실험 내용을 담은 구체적인 지도도 남아 있습니다.
지도에는 '가축전염병 야외 감염실험장 : 낙동강 하구 삼각주-감천지역'(현재 경북 예천군 감천면)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소 10마리를 가로 30미터, 세로 50미터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묶어놓고, 공중에서 독성 세균을 살포했습니다. 결과는 소 10마리가 모두 죽어 성공했다고 합니다.
일본군은 이렇게 개발한 가축 전염병 세균을 이른바 '풍선 폭탄'에 실어 미국 본토까지 보내려고 했습니다. 풍선 폭탄의 개발도 노보리토 연구소가 맡았습니다. 

1942년 과달카날 전투 이후 사실상 태평양의 제해권을 잃은 일본군은 전세를 뒤집을 묘안이 필요했습니다. 항공모함도 전투기도 부족한 상황.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열기구 모양의 풍선에 폭탄을 실어 미국 본토까지 띄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15kg의 일반 폭탄과 불을 일으키는 1개의 소이탄 정도를 싣기로 했습니다. 1943년 제작된 열기구의 크기는 대략 아래 사진 정도입니다.
1944년 11월부터 1945년 4월까지 6개월간 무려 9,300개의 풍선 폭탄이 띄어졌는데, 이 가운데 불과 300여 개가 미국 본토에서 관측됐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는 딱 한 건이 있었습니다. 소풍을 나왔던 목사와 임신한 아내, 그리고 교회 어린이들이 딸에 떨어진 풍선 폭탄을 건드렸다가 6명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1996년 풍선 폭탄 제작에 참여했던 일본인들이 해당 지역을 방문해 사망자 묘비에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풍선 폭탄은 원자폭탄을 제조중이던 미국 워싱턴 주 핸포드 핵연구소에도 떨어져 원자폭탄 완성이 사흘 정도 늦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우리나라에서 실험한 가축 전염병 세균을 풍선 폭탄에 탑재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뭘까요? 자료관 측에 따르면 육군 수뇌부 내부에서 "이미 전황이 기운 상황에서 세균전 공격으로 인해 자칫 미군의 강력한 보복 공격에 직면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 풍선 폭탄도 실패하고, 이제 일본의 패망이 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노보리토 연구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메이지대학 내 노보리토 연구소 자료관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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