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보리토 연구소'가 개발한 전파 병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27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사죄냐, 아니냐를 놓고 아직도 말이 많죠.
일본 정부와 일본 교과서 내 자료들에 따르면 2차 대전 당시 일본인 사망자는 군인 230만 명, 민간인 80만 명입니다. 원폭 사망자는 21만 명 정도입니다. (일부는 군인, 일부는 민간인이고, 원폭 투하지에 있던 한국인, 대만인, 중국인, 미국인 포로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단 2발의 원폭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원폭 투하 전까지 아시아에서는 중국 1000만 명, 인도네시아 400만 명, 베트남 200만 명, 한국 40만 명 이상이 희생당했습니다. 일본이 자신들을 원폭 피해국가로만 선전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위 사진은 저희 집에서 받아보는 아사히 소학생 신문 5월13일자입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소식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의 대통령은 핵보유 대국의 리더로, 전쟁에서 핵병기를 사용했던 유일한 국가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반면, 기사 어디에도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일본 육군은 기존의 '육군과학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비밀 연구소 '노보리토 연구소'를 설립합니다. 노보리토는 이 연구소가 있던 동네 이름입니다. 노보리토 연구소의 개발 분야는 1) 전파병기 2) 생물화학병기 3) 풍선 폭탄 4) 위조지폐 5) 암살 첩보 기술 등이었습니다.
얼마 전 위 사진에 있는 '메이지대학 평화교육 노보리토 연구소 자료관(가와사키 소재)'을 찾았습니다.
**이하 글은 메이지대학 평화교육 노보리토 연구소 자료관 측의 취재협조로 이뤄졌습니다. [일본어 홈페이지 클릭]
"오늘날 전자렌지 같은 원리로 적을 죽이는 것인데, 토끼 등 작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감전 사고 등이 나면서 추가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연구 내용이 극비였기 때문에, 메모 정도를 제외하고는 논문 등 자료로 남기지 못 하게 했다." 실제로 성공했다면 아래 일본 육군의 홍보영상처럼 됐겠죠. 일본 기지에서 '괴력선'를 쏘면 날아오던 적기가 추락합니다.
중일 전쟁 이후 중국 정부가 스스로 공식 지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 일본의 위조지폐 작전을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 연구한 위조 기술은 여권 등 다른 공문서 위조에도 적용됩니다.
이 기술은 세계 최초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청산가리 주입 후 얼마만에 숨지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동물 실험을 했다는데요, 실험 대상 가운데 실제 사람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아래는 노보리토 연구소가 개발한 통조림형 시한폭탄, 라이타형 카메라, 가방형 카메라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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