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마부작침] "北 특수군" 사진 분석…과학을 가장한 왜곡

[마부작침] "北 특수군" 사진 분석…과학을 가장한 왜곡
5·18을 '폭동'이나 '소요사태'라고 규정하거나 북한이 배후에 있었다는 식의 왜곡 담론은 5·18이 있었던 1980년부터 시작됐다. 대부분 전두환 씨 등 신군부가 생산, 유포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이는 광주 청문회(1988), 5·18 특별법(1995)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수차례 확인됐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새로운 왜곡이 시작됐다. 5·18에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육군 대령 출신으로 '시스템클럽'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지만원 씨가 이런 왜곡을 주도하고 있다. 5.18항쟁 당시 사진 속 광주 시민을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하는 '막가파'식이다. 이를 토대로 5.18항쟁은 북한 특수군이 기획 연출한 사건으로, 북 특수군이 잠입해 폭동을 수행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5.18항쟁 당시 광주 시민 사진과 북한 간부를 연결시켜 마치 '근거'가 있는 것처럼 호도해 왜곡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SBS마부작침>은 사진 속 인물을 추적했고, 취재 결과 해당 주장은 1% 근거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5.18항쟁기념재단'의 협조를 얻어 사진 속 실제 인물을 찾아냈고, 안면 분석 의뢰 및 국가 발급 증명서 확인을 통해 당시 촬영된 사진과 동일 인물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왜곡 세력이 주장한 북한 특수군과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이다.
우선 지 씨 등이 북한 김정일의 첫 부인인 홍일천과 동일인물로, 광주 북한 특수군의 줄임말인 ‘광수’ 중 139번 째 라고 지칭한 사진 속 인물은 광주 시민 심복례(73) 씨였다. <SBS마부작침>은 심 씨의 사진, 5.18항쟁 항쟁 당시 사진, 홍일천의 사진을 경찰청 몽타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국내 최고 얼굴 분석 전문가로 꼽히는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학과 교수에게 분석 의뢰했다. 최 교수는 "사진 속 인물은 양쪽 눈의 위치가 수평하고 홍일천은 오른쪽 눈의 위치가 높고 왼쪽 눈이 낮다"며 "두 사진 속 인물은 발제선(이마와 머리털 부위 경계선)과 귀밑에서 턱까지의 윤곽선이 상이한 점 등을 볼 때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최창석 교수는 5.18항쟁 당시 사진과 심 씨에 대해선 "발제선, 광대뼈, 눈썹, 두 눈의 위치 등을 볼 때 동일 인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왜곡 세력이 항쟁으로 남편을 희생당해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심 씨를 북한군으로 악의적으로 날조했다는 것이다.
안면분석 결과만으로도 사진 속 인물은 심 씨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그간의 왜곡 과정을 볼 때 이번엔 '북한 특수군이 아니더라도 북한과 연관성이 있다'는 방식으로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SBS마부작침>은 심복례 씨의 동의를 얻어 심 씨 주민등록초본과 제적등본(옛 호적등본)을 확인했다. 등본엔 심 씨의 본(本)은 청송, 전 호적은 '해남군 산이면, 심00 자녀'라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또 1972년에 남편과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 특수군은 물론, 북한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뜻이다.
왜곡세력이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이라며 '광주 북한 특수군(71광수)'으로 지목한 사진 속 실제 인물은 광주 시민 박남선(52) 씨였다. 박 씨와 5.18항쟁 당시 사진에 대해 최창석 교수는 "얼굴자세는 달라도 얼굴 부위 간 세로비율은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양쪽 눈꼬리가 처진 모양, 1자형으로 두툼한 입, 납작한 두상모양, 양쪽이 모두 1자형으로 왼쪽 눈썹 끝이 처진 점이 동일하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최 교수는 "발제선, 눈썹, 눈 코밑, 턱 끝의 간격이 모두 일치 한다"며 "사진 속 인물과 박 씨는 상이한 곳을 찾을 수 없는 동일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사진 속 인물은 황장엽이 아닌 광주시민 박남선 씨라는 뜻이다. 또 다른 왜곡을 예상해 박 씨의 동의를 얻어 주민등록초본, 제적등본도 확인했다. 그 결과 박남선 씨의 출생 장소는 '전남 화순군, 박00씨의 자녀'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심복례 씨와 마찬가지로 북한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이다.
박남선 씨는 왜곡세력이 문제 삼은 사진에 대해 "1980년 5월 24일 또는 25일경 촬영된 걸로 보이는데,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거동수상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이 찍힌 것 같다"고 사진 속 인물은 본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박 씨는 항쟁에 참여한 혐의로 기소돼 하급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뒤, 뒤늦게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됐다. 그런 그를 두고 왜곡세력은 이번엔 북한 특수군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씌운 것이다. 박 씨는 "지인을 통해 나를 두고 북한 특수군이라는 사진이 떠돈다는 얘기를 처음 접하곤 황당했다"고 운을 뗀 뒤, "마치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며 우기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탄식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5.18항쟁 민주화 항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은 '진짜로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내려왔어'라고 오해하는 현실이고, 이런 잘못된 내용들이 5.18항쟁 항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계속 전파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된 인물은 박남선, 심복례 씨 외에도 더 있다. 왜곡세력은 5.18항쟁을 기록한 영상에 나온 인물도 특수군으로 지목했다. 실제 인물은 확인 결과 망인이 된 백용수 신부였다. <SBS마부작침>은 당시 영상과 백 신부의 생전 사진도 분석 의뢰했다. 최창석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중력에 의해 눈이 더 작아지고 눈꼬리는 더 처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두 사진 속 인물의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처진 형태로 동일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중은 오른쪽으로 휜 형, 밑이 깊게 파인 형태의 다크서클, 아래 입술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각도 등을 볼 때 영상 속 인물과 백 신부의 상이한 점을 찾을 수 없고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광주천주교재단이 제출한 백용수 신부의 이력서를 통해 1938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 1980년 항쟁 당시 광주에서 사목활동을 한 사실도 확인했다. 백 신부의 제적등본에도 본적이 전남 신안군이라고 명시돼 있다. 백 신부 역시 북한 특수군은 물론 북한과는 어떠한 관련성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1966년 사제가 된 백 신부는 5.18항쟁 당시 광주 월산동성당 주임 사제였고, 지난 2004년 선종했다. 백 신부의 조카는 "삼촌이 북한 특수군으로 폄훼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정말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며 "며 "근거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때문에 신부님의 명예만 훼손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 괴벨스 답습한 5.18 왜곡…'망각과의 투쟁' 필요

날조로 인해 피해가 커지면서 피해자들은 형사 고소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악의적 왜곡으로 박남선 심복례 씨, 고 백남선 신부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최근 지만원 씨를 기소했다. 검찰도 사진 속 인물과 박 씨 등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북한 특수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5.18 기념재단은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된 사진의 또 다른 실제 인물을 찾아내 왜곡 세력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이어가고 있지만, 왜곡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위장 침투했다는 허위 주장을 계속 반복해 5.18 민주항쟁의 의미와 진실을 지속적으로 퇴색시키려는 이유에서다.

나치 선동가 괴벨스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지만, 두 번째는 의심을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다보면 결국에는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고 했다. 5.18 항쟁 왜곡방법은 괴벨스를 그대로 답습한 형태다. 왜곡 단계가 더 커지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이고, 이를 위해선 5.18 민주항쟁을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왜곡이 일어나게 된 이유도 분명히 밝혀내야한다.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는 바로 세울 수 없다. 역사의 진실은 끊임없는 기록과 교육, 즉 망각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지속될 수 있다.

전체 기사보기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 [마부작침] 36년 전 반박 된 '5·18 북한 개입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