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인 2008년9월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신청과 함께 미국은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빠졌다. 주요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지급불능 위기를 맞으면서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의 경제 기반은 흔들렸다.
다우지수는 한때 7천선이 무너지면서 펀드나 주식에 노후자금을 투자했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였다. 주택담보대출인 모기지 대출의 부실이 확산하면서 패니매나 프레디맥 같은 주택 모기지 회사들도 지급불능 사태를 맞았다. 주식시장은 물론 채권시장도 공황상태가 된 것이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는 감기에 걸린다고 했던가. 미국에서 발생한 위기는 신흥국은 물론 유럽 선진국으로까지 확산했다. 각국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며 위기극복에 안간힘을 썼지만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하기에는 미국에서 터진 부동산 버블의 여파는 너무 컸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를 제로수준까지 낮추고, 시중에 돈을 무제한 방출하며 위기극복의 선봉에 나섰다. 미국 연준(FED)에서 시작된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는 영국중앙은행(BOE)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중앙은행(BOJ)으로 확산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돈을 풀며 자국의 화폐가치를 낮추는 말 그대로 '쩐(錢)의 전쟁‘을 일사 분란하게 펼쳤다.
이런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융통화정책으로 미국 다우지수가 다시 1만8천선을 오르내리는 등 세계금융시장은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돈을 풀어 자산 가격을 올리고, 이를 통해 소비를 진작함으로써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각국 중앙은행의 의도와는 달리 실물경기는 제때 회복되지 않았고,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계속되면서 이제 유럽과 일본의 기준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하락했다.
● 세계경제는 T자형 갈림길 앞…차별화 시작됐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이 디플레이션과 경제공황을 막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부작용이 심화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미 미국 연준과 영국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에서 탈피해, 양적완화를 계속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중앙은행과는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엘-에리언이 중앙은행 주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부작용은 자산 가격의 왜곡과 부의 불균형 심화이다.
중앙은행이 무작정 시장 부양에 나서면서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자산 간의 가격 차별화가 사라지고, 위험을 고려하지 않는 ‘묻지마 투자’가 확산하는 잘못된 관행이 정착됐다는 얘기다.
중앙은행의 부양정책 지속 여부가 시장의 움직임을 좌우하면서 경제지표가 좋으면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고, 지표가 나쁘면 주가가 오르는 이상한 현상도 계속됐다. 경제지표가 나빠야 부양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움직임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고 소득이 늘었다지만 상위 1% 계층이 늘어난 소득의 95%를 가져갔고, 일부 주에서는 소득 증가분을 상위 1%가 전부 가져갔다는 것이다. 소득 상위 10% 계층이 미국 국가 재산의 75%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결국 초저금리 정책은 일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물경제(Main Street)는 살리지 못하고 금융가(Wall Street)만 살찌우는 정책이었다는 분석이다.
엘-에리언은 초저금리 지속에 따른 이런 부의 불균형 심화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돼 왔던 자본주의 시스템의 역동성에 대한 회의와 사회적 불신을 조장해 미국의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Donald John Trump)같은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대중의 지지가 몰리는 현상을 낳고 있다고 진단한다.
● 한국은 와일드카드 국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극단주의 세력들이 부상하면서 한 국가 안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질서를 잡아나갈 주도 세력이 없는 ‘G0(무정부) 시대‘,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엘-에리언은 세계 각국의 앞으로 경제 상황을 네 부류로 나눈다.
우선 상황이 개선(Improving)되는 국가이다. 미국의 경우 성장률은 크게 높지 않겠지만 지속성장하면서 경제사정이 점차 나아질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인도는 연간 6-8% 정도 성장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견실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두 번째, 안정(Stabilizing)을 찾아가는 국가로 중국을 꼽는다.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간헐적인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5-6%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 번째, 침체(Stagnating)가 계속되는 국가로 일본과 유럽연합 국가들을 꼽았다. 저성장과 고실업, 낮은 물가가 계속되면서 중앙은행이 갖은 노력을 하겠지만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네 번째,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와일드카드(Wildcard) 국가로 러시아, 브라질, 그리스, 터키, 베네수엘라 등이 꼽혔다.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에 빠질 국가다.
국내 금융기관이 조선과 해운업에 대출한 돈은 90조원 가까이로 추산된다. 특히 수출입은행의 경우 조선업에 대한 대출과 지급보증 등이 3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부실이 가시화되고 있다. 해운과 조선 이외에 다른 업종의 한계기업들도 널려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돼 실직자가 늘어나면 가계부실과 금융부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이제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득은 주는데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물가가 오르고, 금리마저 오른다면 한계기업은 물론 한계가정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고, 교육시스템의 개혁, 인프라 개발, 성장을 저해하는 재정 왜곡 등을 바로잡아 경쟁력을 갖춘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조금만 늘어도 소비가 바로 늘어날 수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부담이 좀 늘어도 소비여력에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부유층의 부담 확대, 비과세나 세금감면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세제와 재정정책을 펴서 정부정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채무 재조정 등을 통해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상하좌우 모든 방향에서 거센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는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비전통적인 다양한 계층의 아이디어를 수렴해 어떤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과 내성,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엘-에리언은 주문하고 있다.